"거의 모든 것을 위한 묘사: 자신만의 리듬을 만드는 일"
상담을 리듬(rhythm)의 문제로 말해보자.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들이 문제라고 여기는 상황에 대해 느끼는 감각은 언제나 이러하다.
"답답하다."
이것은 벽에 막혀 답답한 것이다. 더는 흐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를, 그.의. 삶.의. 리.듬.이. 깨.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리듬의 어원적 의미는 바로 '흐르다'인 까닭이다.
인.간.은. 진.동.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동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파동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파동은 진동이 퍼져 나아가는 것이다. 곧, 진.동.체.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를. 알.리.는. 일.이.다.
우리가 '느낌'이라고 부르는 것은 파동을 지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느낌은 언제나 '공명현상'이다. 우.리.는. 같.이. 느.낀.다. 세계 및 타자를 느끼는 것은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몸을 같이 느끼는 것이다. 모.든. 심.리.상.담.은 이 대전제 위에서만 활동이 가능하다.
포유류의 일생 동안의 평균 심장진동수는 약 15억 번이다. 그러나 그 진동폭은, 즉 빠르기는 각기 다르다. 이를테면 쥐는 심장이 더 빨리 뛰며 코끼리는 심장이 더 늦게 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쥐는 코끼리보다 더 빨리 죽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내적 시간'의 총량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내적 시간'을 '심리적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마음의 시간'이라고도 또 '실존적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들에게 이 심리적 시간은 각기 다른 속도로 흐르기에, 우리는 저마다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세.계.는. 그. 자.신.의. 시.간.이. 펼.쳐.진. 것.이.다.
여기에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일상적인 표현으로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개인이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열.어.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심리적 시간의 흐름은 막힘없이 유연하게 잘 흘러갈 때 반드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창조'라는 것은 무엇인가? 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레고블록이 혼돈 속에 널려 있다. 개인이 그 무의미한 블록들을 그. 자.신.에.게. 의.미.있.는. 형.태.로. 조형해낸다. 그러면 '아름다운 질서'가 생겨난다. 그 개인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다. 이것이 '의미'다. 창조는 '의미현상'이다.
우리는 왜 매우 자주 이 모든 것이 의미없게 느껴지는가? 왜 태어나서 죄송하기만 한가? 왜 지루한 권태 속에서 끝없이 "왜?"를 외치는가?
창.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의.미.로.운. 질.서.를.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간.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느.낌.을. 잃.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라고 말할 수 있다.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이. 현.재. 깨.져.있.다.는. 것.이.다.
리듬이 흐르지 못한다. 막힌 길에 갇혔다. 그러니 "답답하다." 이것은 죽어 있는 것과 같은 상태다.
삶에 여유로운 이들이 이색적인 재밋거리를 찾아 상담소를 찾는 것이 아니다. 내담자들은 정.말.로. 살.고. 싶.어.서. 상담소를 찾는다. 이것은 단지 '고통의 감소'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정말로 사는 일은 반드시 '창조의 자각'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문제까지 다루어야 상담은 본업을 다하는 것이다.
무의식 이야기, 마음의 원리 이야기 등을 백날 하고 있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상황은 그보다 훨씬 나쁘다.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모종의 '보편적 알고리즘'처럼 다루려는 방식이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리듬을 상실하게 만드는 그 핵심적 원인이다.
비단 이러한 류의 '심리학 이야기'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우리는 다방면에서 집단주의의 정신이 '권장하는' 리듬으로 살아가도록 거의 매일 강압된다.
빅데이터의 알고리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안다며 우리를 위해서라는 명목의 임의적 리듬을 제시한다. 이것을 받아들여 우리는 "나는 ISFJ 유형이니까 '이렇게' 느끼면 안되고 '저렇게' 느끼며 살아야지."라는 식으로 자신을 거푸집에 넣어 조형한다. 또한 집단지성 등의 이름으로 대중에게 '부드러운 먹이'를 제공해주는 이들은 SNS 인플루언서가 되고,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그들 자신과 대중이 야합해 조형해낸 '보편적 리듬'을 홍익인간의 이념처럼 널리 전파시키며 우리 또한 그 고객이 된다. 이 '붙여넣기'의 복사 및 모방의 과정을 정당하게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지배극은 아주 은밀한 언어적 전략으로 이루어진다.
"네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라는 이름으로 '보편적 리듬'이 윤.리.적. 외.연.으.로. 보.급.되.는. 까.닭.에. 우리는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명백해진다. 이러한 전략을 행사하는 이만큼 '카피캣'으로 드러나는 이도 달리 없다. 좋아 보이는 남의 것은 다 훔쳐다가 자기 음악처럼, 자기 영화처럼, 자기 책처럼, 자기 말처럼, 자기 생각처럼 만든 뒤, "저는 제 자신의 리듬으로 바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며 다소 쑥스러운 듯 부드럽게 미소짓는 일이 이들이 하는 유일한 일이다.
이들은 다양한 정보 속에서 가장 최상의 것을 선별하고, 취합해서, 통합하는 '창조적 작업'을 자기들 또한 하고 있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창조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는 상투어조차도 여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밀키트를 사서 데우는 일이 요리문화의 창조인가? 유튜브를 보고 드립커피를 내리는 일이 커피문화의 창조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냥 소비활동이다.
좋.아.보.이.는. 남.의. 것.을. 따.라.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자.신.만.의. 리.듬.을. 이.룰. 수. 없.다.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는 크게는 두 유형이다.
한 유형은 일종의 세뇌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보편적 리듬'의 내재화로 인해, 그 '보편적 리듬'을 '자기의 리듬'으로 착각하게 됨으로써 고통받아 오는 유형이다. 또 다른 유형은 아예 '상담자의 리듬'을 '자기의 리듬'으로 삼고자 오는 유형이다. 상담자를 마치 '스승' '심리마스터' '마음의 연금술사' 등으로 보며, 이러한 '위대한 상담자'에게 자발적으로 가스라이팅되고자 하는 이들이 이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리듬을 어떻게 잃게 되는지의 두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중에게 휘둘리거나, 아니면 대중보다 우월하다고 간주되는 엘리트에게 휘둘리거나 하는 일들이다. 여기에는 무.엇.인.가. 진.짜.로. 올.바.른. 것.이. 있.다.고. 믿고 싶은 신앙의 의지가 작용한다. 즉, 윤.리.적. 의.지.가. 작.용.한.다.
보.편.적. 리.듬.은. 윤.리.적. 리.듬.이.다. 보편성은 윤리적 목적으로 구성되며, 그렇게 구성된 보편성 자체가 윤리성을 담보하게 된다. 이것이 실은 "나는 올바른 사람이야. 왜? 나는 올바른 사람이라는 올바른 생각을 하니까."라는 동어반복의 기만극이라는 사실을 니체는 일찌감치 폭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윤리적 리듬'의 권위 앞에 자꾸만 무릎을 꿇게 된다. 왜일까? 진.짜.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로 살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삶이 두려워지며, 그래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올바르면 최소 누가 혼내서 더 두렵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서다.
이것은 마치 어떠한 이가 늘 자신의 편이었던 '삶'이라는 아이를 자기 생각대로 희롱하다가 문득 그 아이의 슬픈 눈빛이 두려워져서, 이내 늘 자기를 괴롭히던 '윤리'라고 하는 이름의 일진 아이에게 몸을 위탁하고자 하는 일과도 같다.
이것이 '막힌 길'이다.
자신의 삶을 배신하면 흐름이 막힐 수밖에 없다. '윤리적 리듬'은 리듬으로 위장한 주문이다. 사이비의 세력들이 가스라이팅을 위해 피험자의 귀에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그 무미건조의 주문이다. 이.런. 것.을. 듣.고. 있.으.면. 우.리.는. 정.신.이. 나.간.다.
반지성주의는 언제나 지성으로 위장하고, 사이비는 언제나 진짜로 위장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윤리에 대한 강조'다. 윤리적이니까 지성적이고, 윤리적이니까 진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초.논.리.학.적. 오.류.다. 지성적인 이는 윤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윤리적이라고 지성적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진짜인 것은 윤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윤리적이라고 그것이 진짜인 것은 아니다.
무식한 사이비여도 윤리를 내세우면 '선비'로 대접받을 수 있는 이 '마법'은 한국 유교사회에서 대대로 전래되어 온 토착주술이다. 우리는 게르만족의 룬 문자를 부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조선에는 진정한 고대의 지혜인 '윤리적 리듬'이 있다고 자랑스러워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법.을. 쓰.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막.힌.다.는. 사.실.이.다.
마법을 쓰려고 하는 이는 마법을 필요로 하는 이다. 동의되는가? 마법을 필요로 하는 이는 지금 마법이 없는 이다. 여기에도 동의되는가?
그렇기에 삶이 막힌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바.로. 마.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 마법이 없다고 간주하며 마법을 필요로 하는 이는 결국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과도 같다. 이처럼 존.재.를. 부.정.하.는.데. 존.재.의. 시.간.인. 삶.이. 펼.쳐.질. 수. 있.을.리.가. 없.다. 필연적으로 그 흐름이 끊겨 막히게 된다.
인간이라고 하는 이 진동체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연스럽게 알리는 바로 그 창조의 일을 한다는 것,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창조함으로써 이 모든 것을 의미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나라고 하는 인간은 바로 이러한 초특급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마법이라는 비유를 계속 활용해보자. 자신만의 리듬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진짜 마법사'가 되는 일이다. 이것은 조잡한 언어술이 아니며, 아무 효용도 없는 삼류의 주술이 아니다. 이러한 주술에 기대하는 임상적 효용이 정말로 필요하다면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 것이 무조건 낫다. 돈도 시간도 절약된다. 만약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위대한 권위를 얻고 싶은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권위에 고착되는 이유 또한 삶이 막혀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그들만의 리듬으로 열심히 노력할 때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던 이들이 언제나 그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로 권위를 부르짖는다. 그렇게 "나는 잘못살지 않았어!"를 주장하고 있는 동안 실시간으로 또 지금의 시간은 거듭 상실되어만 간다.
시.작.하.는. 지.점.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뛰고 있는 이 심장의 진동은, 과거에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를 계산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라고 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살.라.고. 뛰.고. 있.는. 것.이.다. 15억 번의 진동수 중 14억 번을 부질없이 흘려보냈다고 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10000개의 블록을 가진 이보다도 100개의 블럭만 가진 이는 더 창조적일 수 있다.
당.신.은. 할.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대.체. 누.구.인.지.가. 문.제.다.
당신이 도무지 누구인지를 모를 정도로, 당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수한 보편적 리듬들에 시달리고 있다면, 잠깐 멈추어 귀를 기울여봐도 좋다.
지나가는 일상의 소리를 듣고, 당신의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호흡을 들으며, 삶이 당신에게 지금 말을 걸고 있는 가슴속의 느낌을 들어보라. 그.러.면. 창.조.는. 이.미. 시.작.된.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또 힘들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저 파동들에 공명하고 있을 때, 그것들은 알아서 조화로운 질서를 이룬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존재에게 원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다가 노래가 되어 흘러나올 것이다. 가사가 없어도 된다. 흥얼거려보라. 당신은 지금 당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리듬이 당신을 위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당신을 지켜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당신은 그저 그 고유한 리듬으로만 살면 된다. 당.신.이. 당.신. 자.신.이.기.만. 하.면. 당.신.은. 언.제.나. 올.바.르.다.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 바로 당신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떤가?
아직 아무 것도 늦지 않았다. 당신의 심장이 단 한 번의 진동만을 남겨 놓고 있다 할지라도, 그 한 번으로 마법처럼 당신은 반드시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았.다.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순간 당신을 에워싼 모든 벽은 이미 여리고성처럼 무너져내렸고, 당신은 영원의 순간을 향해 또 흐르게 될 것이다. 이 우주에 당신이 창조한 당신만의 리듬이 선명히 울려퍼질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귀에 닿는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당.신.이. 태.어.나. 살.아.줘.서. 모.두.가. 기.쁘.다.
당신은 감동이다. 당신이라는 진동은 모든 것을 위한 감동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전해진 이 감동이 이제 당신에게도 공명된다. 당신이 감동한다.
자.신.에.게. 감.동.받.고. 싶.어.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거의 모든 것인 이것을, 당.신.은. 정.말.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