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의 소리를 듣는 일"
하나의 상담을 시작하는 상담자에게 있어 내담자는 반드시 '사물'이어야 한다.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내담자는 아직 '사람'이어서는 안된다.
개인을 하나의 우주라고 비유해보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가 분명해질 것이다. 이 경우 내.담.자.는. 다.른.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다. 그런데 이 외계인을 상담자가 자.기.에.게. 익.숙.한. 사.람.의. 범.주.에 넣고 있다면, 여기에는 분명한 기만이 있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내담자를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념을 만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 보는 내담자에 대해 대체 무엇을 안다고 상담자가 그를 자기의 범주 안으로 바로 포섭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오.히.려. 내.담.자.를. 사.람.으.로. 대.하.는. 척.함.으.로.써. 그.를. 영.구.하.게. 사.물.화.시.키.는. 소.외.의. 현.상.을. 낳.는.다.
자기가 과거로부터 누적해온 지식과 경험을 신봉하는 이들이 이 소외를 자주 야기한다. 우리는 왜 이처럼 과거에 의존하는가? 현재가 두렵게 경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그림을 자꾸만 소환해 현재에 덧입히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행위할수록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감수성이 둔감해진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해.야. 한.다.
사람이 두려워야 정상이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대로 만만하게 함부로 굴릴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어디 '사람님'에 대해 오만한 행패를 부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와 같이 사람이 두려워질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의 '사물성'에 있다. 언제나 모든 장면에서 낯선 것으로 이탈될 수 있는 이방인으로서의 사람의 면모에 있다.
실존주의 문학은 사람의 사물성이라는 이 기이하면서도 흥미로운 주제를 자주 묘사해왔다. 카프카는 감각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성공한 작가다. 이것은 분명한 감각이다. 사물은 감각으로 포착된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규.정.되.기. 이.전.에. 그.것.은. 이.미. 거.기.에. 있.다. 우리는 '그것의 거기 있음'을 먼저 지각한다. 이것은 실존주의에 대해 잘 알려진 사르트르의 선언이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있다는 사실에 먼저 동의해야 한다. 실.존.은. 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사.실.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것.은. 다. 환.상.이.다. 오늘날의 반지성주의는 사실이 아닌 환상에서 출발한다. 환상 위에 사실을 끼워 맞추기 위해 획책한다. 반지성주의는 개인의 실제적인 지적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자기의 삶을 이야기로 잘 조립해낼 수 있는 훌륭한 지성을 가진 이들이 매우 자주 반지성주의가 된다. 이것은 내담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머리가 좋고 판단력도 좋은 내담자들이 상담소를 찾는 많은 이유는 그들의 반지성주의 때문이다. 이러한 내담자들은 거의 모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다 알겠는데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겠어요."
반지성주의의 문제는 딱 하나다. 환.상.을. 믿.고. 있.다.는. 것.뿐.이.다. 환상을 주춧돌로 놓고 있기에 그 위에 아무리 사실적인 것들을 쌓아도 사상누각처럼 늘 불안하고 두려우며, 결과적으로 걱정거리가 많아지는 것이다. 반지성주의의 대표적 표현인 음모론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음모론은 그 서사가 아주 정교하다.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합리성의 차원에서 음모론을 검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니체는 이러한 환상을 해체하기 위해 문헌학적 방법론을 도입했다. 그것은 그 서사의 시작점이 어디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갈등이 세계적인 유태계 재벌들과 연루된 국지적 사건임을 폭로하는 음모론이 있다고 하자. 정황들이 그럴 듯하고, 증인들도 다수 속출한다. 신빙성이 있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작점은 어디였는가? 외계에서 온 렙틸리언이다. 이 파충류 외계인들이 먼저 유태인 사회에 침투해 전세계의 부를 거머쥐고, 이를 바탕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펼치고 있던 것이다.
낙.관.적.인. 유.토.피.아.론.도. 반.지.성.주.의.적. 음.모.론.의. 일.종.이.다. 이를테면 무한동력이 벌써 개발되어 있고, 이를 사용하기만 하면 인류가 경험하는 빈부의 격차로 인한 고통은 사라질 것이며,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아주 진중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악한 권력층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이 무한동력의 실제를 대중들에게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무한동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드.래.곤.볼.이.다. 전세계에 흩어진 드래곤볼을 인류가 합심해서 찾아내면 신룡을 불러내 무한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빨리 전쟁을 멈추고, 남한과 북한도 빨리 주체사상으로 통일하며, 일본은 빨리 자기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영원히 무릎을 꿇어야, 전 인류가 드래곤볼을 모으기 위한 위대한 협력체계를 이룰 수 있을텐데, 음모론자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올.바.른.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 답.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고.통.스.럽.다.
이것이 바로 내담자들이 호소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답'의 도출과정이 논리적이라 그것은 충분한 합리적 타당성을 갖춘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작동하지 않는다. '과정'이 지.적.으.로. 보.인.다.고. 그것이 지성의 결과는 아닌 까닭이다. 반지성주의의 문제는 이처럼 '가짜 답'을 고집하는 일에 있다. '가짜 답'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모든 것의 전제가 되어 있는 '가짜 사실'이다. 즉 '환상'이다.
이처럼 반지성주의는 '머리만 큰 어린아이'가 곧잘 빠져드는 함정이다. 방향성을 잃고 남용되는 지성의 문제라고 해도 좋다. 머리는 좋지 않아도 어른인 편이 우리에게는 언제나 낫다. 여기에서 '어른'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위.에.서. 살.아.가.는. 이.를. 지.칭.한.다.
어.른.은. 꿈.을. 꾸.더.라.도. 사.실. 위.에.서. 꾼.다. 그러니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그 손에 쥐는 일이 가능하다. 실.현.되.지. 않.은. 것.은. 시.련.이. 된.다. 이상심리학에서 규정하는 성격장애들은 어른으로 사는 일에 실패하거나 좌절한 그 시련의 징후들이다. 그런 즉, 상담소는 이 '성장통'을 넘어서서 어른이 되고 싶은 이들이 찾게 되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일의 첫 걸음은 모든 것을 사물로 다시 알아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사물성을 포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주 쉽게 '낯설게 보기'의 방법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물에서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물.들.이.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물들을 만나가는 과정이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세계'라고 하는 것은 펼쳐진다. 그동안 우리가 살고 있던 것은 아직 진짜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환상이 만들어낸 가상세계다. 우리에게 익숙한 가상의 '답'으로만 이루어진 인형의 집 같은 것이다. 우리는 사실에 접촉함으로서 이 조잡한 가상세계를 무너뜨리고 우리 자신을 위한 진짜 세계를 열어갈 수 있게 된다.
사.실. 위.에. 서.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사.물.들.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은 하나같이 사실을 말한다. 이 사물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환경'이 조성된다. 생명체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적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다. 혼자 잘났다며 환경을 무시하는 생명체의 운명은 도태와 멸종뿐이다.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것은 환경과 공속되어 있는 생명체 자신의 '생태'를 묻는 총체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사물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 고층건물: 높을게
- 옥상: 휑할게
- 불빛: 화려할게
- 휴대폰: 시계일게
- 바람: 차가울게
- 난간: 낮을게
- 중력: 떨어질게
- 바닥: 딱딱할게
사물들의 목소리에 둘러싸여 지금 한 생명체는 그 생태를 하나의 장면 속에 이루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이 경우 이 일을 총체적으로 알리는 것을 우리는 마음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마.음.도. 사.물.이.다. 이것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마음: 아플게
그는 지금 아픈 것이다. 마음이 아파서, 고충건물에서 떨어져 몸도 아픈 현실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러나 이 사물의 소리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즉 현재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는 이제 몸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아픔을 더 크게 만들어 가시화하지 않아도, 이.미. 아.프.기. 때.문.이.다.
이 생명체가 울면서 옥상의 문을 되열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사물들의 목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 계단: 길게
- 통로: 조용할게
- 전등: 비출게
- 공기: 따듯할게
- 난간: 받쳐줄게
- 바닥: 든든할게
- 마음: 살아볼게
왜인지는 몰라도, 사.물.들.의. 소.리.가. 그.를. 위.로.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가 사실을 받아들여, 사실을 그의 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사.실.이. 우.리.를. 구.원.한.다.
사실에 뿌리내려 출현한 세계 속에서는 사물들이 한결같이 우리에게 이처럼 작용한다. 우리가 그 소리를 들으며 접촉한 사물들은 반드시 우리를 위해 유용한 것이 된다. 자신의 세계를 산다는 것은 이렇게 환경을 자기의 편으로 삼아 성공적인 생태를 이루어간다는 의미와 같다. 이것을 바로 '조화'라고 말한다.
사.물.들.의. 소.리.를. 듣.는. 일.은. 조.화.로.운. 삶.을. 사.는. 일.이.다.
사.람.은. 이. 조.화.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를. 일.컫.는. 표.현.이.다.
사.물.로. 말.미.암.아. 사.람.이. 꽃.피.어.나.는. 현.실.이.다.
우리가 사물과 분리되어 먼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러한 '사람'은 환상의 개념이다. '사람에 대한 환상'을 추구하면 가장 사람과 사실적으로 멀어지게 된다. 이 사람에 대한 환상을 가장 최대치로 추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자아'다.
자아는 사물들로 가득 차있는 현실을 극도로 혐오한다. 왜일까? 그만큼 자기가 통제해야 할 것이 많아지는 까닭이다. 자아에게는 자기에게 익숙한, 그럼으로써 통제가능한 환상들로 그 자신을 에워싸는 일이 중요하다. 자.아.는. 환.상.으.로. 무.장.한.다. 그러기 위해 사물성이 얼핏 눈에 들어와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그 위에 환상을 덧칠한다. 이것은 마치 모든 것 위에 '내 꺼'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일과 같다. 자아의 목소리는 이러하다.
- 자아: 지배할게
자아와 대비되는 사물들의 목소리도 들어보자.
- 몸: 살게
- 나: 있을게
그러니 몸에 대한 자아의 태도는 삶을 지배하려는 일이 되고, 나에 대한 자아의 태도는 모든 존재를 지배하려는 일이 된다.
"있을게."라고 말하는 '나'는 지배하지 않는다. 그냥 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
'나'는 본원적 사물성의 인격화된 형태다. 무인격성의 인격성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냥 존재하는 것이 그냥 사랑하는 것의 그 표현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나, 그 존재 자체가 사랑의 현시다. 이것은 사람의 궁극이다, 이렇게 말하기에는 조금 어색하다. 오히려 사람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사.람.의. 본.성.은. 분.명. 듣.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중한 당신의 이야기, 내가 들어드릴게요!"가 아니다. '들어주는 일'이 아니라 '들리는 일'이다. 그러나 또한 이 '들리는 일'은 일이 아니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있으면 이루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그. 결.과.일. 뿐.이.다.
"상담의 유일한 도구는 상담자 자신이다."라고 하는 상담계에서 잘 알려진 표현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담자의 지성과, 공감능력, 경험, 배경지식 등이 도구라고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상.담.자.의. 존.재. 자.체.만.이. 상.담.에.서.의. 유.일.한. 활.용.재.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상담자가 가만히 앉아 '존재하는 척'을 한 다음, 그 몸에서 느껴지는 것을 안테나처럼 잡아내 "아하! 이런 마음이 있으시군요!"라며 족집게 도사놀이를 하는 것이 상담이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것은 도구의 남용이다. 도구가 남용되는 현상은 그것의 사물성이 소외되었을 때 생겨난다. 사물성이 소외되면 그 대신에 '사람에 대한 환상'이 추구된다. 당연하다. 사물성이 소외되면 사람도 사실적으로 소외된다. 그러니 그 공백의 자리를 대신 환상으로 메우려는 것이다.
환상을 갈망하는 동안 우리의 일상은 침전된다. 쉽게 말해, 다 뻔하고 재미가 없어진다. 오직 '사람'을 만나 '마음 맞추기 게임'을 할 때만 의욕이 생기고 인생이 빛나는 순간처럼 경험된다. 이것은 이미 상담이 아니라 '내담자 착취'다. 자기 환상의 충족을 위해 내담자를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당연하다. 자신의 남용은 타자의 남용이 된다. 실존이 무시된 결과는 언제나 이 자타남용의 현실이다.
자신의 세계가 있는 이는 그 세계를 귀하게 아껴 쓴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 꺼'라는 스티커를 붙일 이유도 없다. 매대에 놓인 명품가방이 자석처럼 그 소유자가 될 이에게 다가오듯이, 사물들이 자신을 향해 스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에서의 여우와 장미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역설적인 제목이다. 그것은 '당신을 너무나 아끼던 나무'이다. 동시에 '당신이 너무나 아끼던 나무'이다.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을 아끼고 또 아끼는 이, 그렇게 자기의 세계를 소중하게 사랑하는 이, 그가 바로 어른이다. 모든 상담자와 내담자가 실현하고 싶어하는 그 모습이다.
이.러.한. 이.가. 사.랑.받.는.다.
사물들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가 사랑의 품속에 언제나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다. 역으로 그가, 자신이 무척이나 아낌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물들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어린아이일 때 누구나 쉽게 사물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성의 발달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이 감각을 많은 부분 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깨우는 것이다. 다른 장에서도 말했듯이, 실.존.상.담.은. 정.말.로. 감.각.의. 문.제.다. 그것은 실존주의 심리학과 철학 및 문학을 통해 특정한 정보를 취득함으로써 잘 할 수 있게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텍스트들은 우리의 감각을 일깨워주기 위해 활용되는 방향성을 갖는 것들이다. 이 책의 용도와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이 되는 일이며, 그것은 역설적으로 어린아이의 감각을 회복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어린아이의 감각은 환상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낯선 사물성을 두려워하면서도 거기에 다가가 친해질 수 있는 그 호기심이다. 곧, '관심의 힘'이다. '낯설게 보기'란 '어린아이처럼 보기'를 의미한다.
'머리만 큰 어린아이'가 자라나 '죽어가는 눈빛의 어른'이 된다. 이 운명을 직감하기에 이 '머리만 큰 어린아이'는 세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환상의 가치를 설파한다. 그렇게 열렬히 주장하면 자기는 '죽어가는 눈빛의 어른'이 되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러한 '어른'이기에 이들은 환상에 대해 강박적인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하는 대신에, 살 수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이 마치 '가구처럼' 정합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뻔한 소품인 양 언어로 생각하는 대신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다. 말.도. 안.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살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우리가 위치한 곳이 대한민국의 어떤 지역에 위치한 주택의 방 안이 아니라, 지금 여기가 우주라는 실감을 돌연히 얻게 된다. 익숙한 책상과, 침대와, 컴퓨터가 있다고 여기가 우주와는 관계없는 모종의 시공간인가?
그렇지 않다. 여.기.가. 우.주.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인.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 넓은 우주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에 비교적 낙관적인 입장을 갖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 우주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금 말하게 될 이 사실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인.간.은. 우.주.로.부.터. 상.당.히. 아.낌.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무엇을 한다고 할 때 방해하는 우주적 세력이 없다.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은 다해왔다. 안에서는 무엇이든 다 갖고 놀아도 되지만 나오면 혼난다고, 엄마가 그 자유를 제한해둔 놀이방의 현실과는 다르다. 슬금슬금 지구 밖으로 기어나와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대기권 밖으로 나오는 로켓을 성스러운 은하함대가 요격하고 있지 않다. 먼 우주까지 나가 이것저것 허락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도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더 실증적인 것은, 당신이 지금 방의 침대에 크게 두 팔을 벌리고 누우면 당신은 아주 안심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주에서 이토록 안심될 곳이 또 있을까? 진짜로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당.신.이. 있.는. 곳.에.서.는. 사.물.들.이. 당.신.에.게. 유.독. 친.근.한.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사.물.들.에.게. 친.근.한. 까.닭.일. 것.이.다.
당신은, 아마도 너무나 거대한 사건이라 상상도 안해봤을 수 있지만, 실은 우주를 아주 아끼는 사람이다. 숨을 쉬며 우주의 입자를 들이마시고, 방청소를 하며 우주를 재배치하고, 고양이 사료를 사기 위해 돈을 벌며 우주의 아이들을 먹여 살린다. 당.신.이. 산.다.는. 것.은. 너.무.나. 우.주.적.인. 일.이.다. 그렇게 당신은 우주와 서로 사랑하고 있다.
- 우주: 기쁠게
- 당신: 기쁠게
당신이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소망은 어쩌면 이러할 것이다.
"내가 태어나 사는 일이 모두의 기쁨이 되고 싶다."
이것은 가장 사람다운 소망이다. 이 소망을 품을 때 우리는 자신이 어른이 되었음을 안다.
이 소망은 당신에게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신이 태어나 사는 일이 우주의 기쁨이라고, 우주의 사물들의 소리가 그렇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