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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Aug 13. 2019

생각이 많아 어지러운 그대에게

"엄마의 도시락"



  그대는 미로에 빠져 있다. 그대를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그대 혼자 힘으로 이 미로를 빠져나와야 한다.


  그대는 정말로 답을 찾아야 한다. 미로의 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그대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어떤 선택이 대체 올바른 답으로 이끌어주는 선택일지를, 무수한 정보들과 의견들 사이에서 그대는 끝없이 고민해야 한다. 행여나 발을 잘못 내딛기라도 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아마도 그대는 인생 전체를 망치게 될 것이고, 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혹시나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언제든 그에 대한 백업이 준비된 금수저들과 그대는 다르다. 그대에게는 세이브 포인트가 없다. 그대의 라이프는 단 하나뿐이다. 한 번이라도 틀리면 그것으로 게임오버다. 몇 백 번이라도 동전을 투입해 컨티뉴를 할 수 있는 팔자 좋은 입장이 아니다.


  그래서 그대는 정말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생각이라도 하고 있으면, 그래도 그대는 답을 얻기 위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생각마저도 멈춘다면 그대는 저 바다 깊은 곳으로 무참히 가라앉을 것만 같다. 그렇게 가라앉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손발을 열심히 움직이며 모든 최선을 다하는 그 처절한 모습이 바로 생각이 많은 그대의 모습이다.


  그 결과, 그대는 언제나 어지러워진다. 익사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뇌헤엄을 치는 그대에게는 산소가 부족한 까닭이다. 산소가 부족하면 그대는 졸려진다. 잠들고 싶어진다.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익사해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그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몇 번이라도 생각한다. 그렇게 또 생각한다. 생각은 끝이 없다. 불면의 밤, 그대의 뇌만이 낡은 선풍기처럼 삐걱거리며 돌아간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운동장을 도는 일을 잠시만 멈춰보라.


  적어도, 이 말만은 한번 들어본 뒤 다시 뛰어보라.


  그대여, 그대는 지금 답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로의 출구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무수한 생각은, 그만큼 그대가 답을 찾기 위한 해법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대여, 그대는 그저 쫓기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그저 답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인생의 정답이라고 간주하는 가상의 답에 의해 쫓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대를 쫓고 있는 답을 들고 있는 것과 같은 대상이 있다. 그 대상에게 그대는 쫓긴다. 인생의 정답이라는 흉기를 들고 있는 연쇄살인마에게 그대는 쫓긴다.


  이를테면, "늘 최고로 잘해줘야 해."라는 말이 인생의 정답처럼 그대를 압박하며 쫓고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늘 최고로 잘해줘야 해."라고 발화하며 그대를 쫓고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 있다.


  그러나 그대가 쫓기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안나온다. 답은 이미 저쪽에 있다. 그대는 그저, 하도 뜀박질을 하다 보니 산소가 부족해서 머리만 어지러울 뿐이다.


  이러한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의심뿐이다.


  '대체 내가 왜 쫓겨야 하는가?'


  그대는 모른다. 그대가 왜 쫓겨야 하는지를 모른다. 인생의 정답에 대한 의심의 물음을 통해, 그렇게 그대는 그대가 왜 쫓겨야 하는지를 몰라야 한다.


  왜 쫓기는지도 모르는 그대를 누가 쫓고 있는가? 왜 쫓고 있는가?


  그대여, 그러면 그대는 이해하게 된다.


  그대를 쫓고 있는 이도, 자기가 그대를 왜 쫓고 있는지를 모른다.


  누구도 이 추격전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추격전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다.


  때문에 왜 쫓고 있는지, 왜 쫓기고 있는지의 그 이유가 알려질 때, 추격전은 멈춘다. 쫓김은 끝난다. 그대의 생각은 멎는다.


  따라서 그대에게 필요한 일은 오직 하나뿐이다.


  멈춰서 뒤를 돌아보며 그대를 쫓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이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대체 나를 왜 쫓고 있는 거야?"


  이를테면 그 이는 아마도 그대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침도 안 먹고 그렇게 서둘러 가면 어떻게 해. 엄마가 도시락이라도 전해주려고 뛰어왔어."


  그대는 이제 이해한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인지를.


  그대는 분명 한상 거하게 차려진 갈비찜을 아침부터 배터지게 먹고 나온 길이었다. 그러나 그대의 엄마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서, 그대가 굶고 있다고 생각하며 갈비찜을 도시락통에 넣어 부랴부랴 그대를 쫓아온 것이다. '늘 최고로 잘해줘야 해.'라는 인생의 도시락을 들고 그대를 처절하게 쫓아온 것이다.


  그 처절함이 무서워 그대는 쫓김을 경험한 것이다. 자신이 왜 쫓기는지도 모르면서 쫓겼던 것이다.


  인생의 정답은 언제나 우리에게 처절함을 낳는다. 그것이 인생의 정답인 까닭에 우리는 그 앞에서 늘 경직된다. 절대로 틀리면 안되는 까닭에 우리에게는 강박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경직과 강박은 우리를 자기 안에 갇히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자기가 틀리지 않도록 하는 일에만 모든 신경은 집중되고, 상대는 보이지 않게 된다. 곧, 상대는 망각된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에게서 망각되었던 것이다. 아니 우리만이 아니다. 인생의 정답을 들고 있던 엄마는 그 정답으로 인해 모든 것을 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위장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우리를 이토록 오래 달리게 해준 양분이 되었던 갈비찜 500g도,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그 갈비찜을 만들었던 그 모든 자신의 정성도, 엄마는 모두 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늘 최고로 잘해줘야 해.'라는 인생의 정답이, 이미 최고로 잘해준 현실을 망각하게 만든 것이다. 엄마가 줄 수 있는 것을 이미 최고로 다 주었다는 현실을 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여전히 최고로 잘해주지 못한 자로서, 그렇게 인생의 정답 앞에 턱없이 부족한 자로서 스스로를 생각하며, 인생의 도시락을 들고 우리를 처절하게 쫓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여, 정말로 이해하겠는가?


  그대를 쫓고 있던 대상도, 그 대상에게 쫓기고 있던 그대도, 답을 찾고 있던 것이 아니다. 둘 다 똑같이 답에 쫓기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이미 결승점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정답을 상시 작동해야 하는 절대적 진리로 만들어놓은 결과, 이미 통과해버린 결승점을 망각하고, 아직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최종의 결승점을 처절하게 희구하는 그 생각에 의해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왜 쫓고 있는지 모르면서 쫓고, 왜 쫓기고 있는지 모르면서 쫓긴다. 쫓김의 유일한 이유는 모름이다. 계속 모르기 때문에 계속 추격전이 발생한다. 업이라고도 말한다. 인생의 정답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모르게 된다.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악순환이다. 마치 미로와 같다.


  그러나 그대가 자신이 왜 쫓기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동시에 그대를 쫓는 대상과 마주하여 물음으로써, 이제 그 추격전의 이유를 정말로 알게 되었다면, 그대는 단순하게 그 이유를 알리면 된다. 그대가 알게 된 것을 상대에게도 알리면 된다. 이로 인해 함께 알게 된 바로 그 자리에서 추격전은 멎는다. 그대는 더는 쫓기지 않게 된다.


  "아, 엄마. 나 아침에 갈비찜이랑 밥 세 공기나 먹고 나왔잖아. 기억해봐. 엄마는 나에게 아침 잘 차려줬어. 나에게 이미 최고로 잘해줬어. 부족한 것 없이 이미 다 해줬어. 모든 것을 이미 다 줬어. 이미 최고의 엄마였어."


  그대는 그렇게, 상대가 이미 결승점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이미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미 결승점을 통과한 이는 이제 뛸 필요가 없어진다. 이미 완성한 이는 더 완성할 것이 없어진다.


  쫓음도, 쫓김도 사라진다. 미로도, 출구도 사라진다. 생각도, 어지러움도 사라진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안심의 평화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와, 그대 앞으로 선명하게 뻗어 있는 고요한 오솔길의 산새소리만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그대의 손에 들린 엄마의 도시락.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든든한 그대의 편이 되어줄 그 역사를 이미 완성한 엄마의 도시락만이, 그대의 손 위에 영원히 잊지 못할 무게로 남을 뿐이다.






안녕하신가영 - 숨비소리
어김없이 해가 떠오르면
오늘도 물질이 시작된다
어제는 여름이었을 텐데
매일매일은 겨울이어라
섬을 떠난 많은 소식들을
불턱에 둘러앉아
짐작한다, 짐작한다, 걱정한다
이렇게 잠깐 몸을 누일 때면
이곳은 아무 일이 없단다, 없단다
걱정하지 말아라
호오이 호오이
어떤 울부짖음 같기도
호오이 호오이
안도하는 한숨 같기도
고요한 수면 위로 내뿜던
어머니의 숨비소리는
닿은 적 없는 뭍을 향한
아들딸의 이름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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