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보면 배워지는 한국형 실존상담 교과서 #50

"경계의 중요성: 표절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인간"

by 깨닫는마음씨




관계에서의 갈등은 전부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생겨난다. 경계는 이 질문만 떠올려봐도 분명해진다.


"이것은 누구의 공인가?"


헷갈릴 수가 없다.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이는 그.것.이. 누.구.의. 공.인.지.를. 실.은. 안.다.


그럼에도 공을 가로챈다. 자기의 공인 것처럼 만든다. 남의 공(功)을 통해 자기가 권위와 권력을 얻으려 하며, 그 일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관계에서는 언제나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 왜인가?


관.계.는. 경.계.를. 무.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공을 가로채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싸우지 말자. 우리는 좋은 관계잖아. 행복한 일은 함께 키우고, 불행한 일은 함께 돌보며, 더불어 함께 가보자꾸나. 혼자 살 수 없는 우리 약한 인간들끼리 서로 사랑하며 한번 멋지게 살아보자꾸나."


우리는 사회주의가 패망한 그 이유를 지금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너무 단순하게 말하는 일은 폭력적일 수 있으니, 표현을 고쳐 '사이비 사회주의'라고 말해보자. 관계의 논법이 궁극화되면 그것은 반드시 '사이비 사회주의'가 된다. 사.이.비. 사.회.주.의.는. 곧. 관.계.의. 종.교.다. 관계론이 제도종교화된 것이다.


이 '관계의 종교'는 개인이 관계를 통해 성장하거나 치유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개인은 관계에 의해 퇴행하거나 착취된다. 단순하게만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이 아무리 잘하더라도 그것은 '남의 공'이 된다. 하면 할수록 '남의 영광'이 된다. 그.렇.다.면. 대.체. 왜. 하.고. 싶.어.지.겠.는.가?


여기에서는 하지 않을수록 이득이다. 남이 좋은 것을 이루어내면, 생글생글 웃으면서 "자 우리 관계의 것이 잘 만들어졌네."라고 말하며 냉큼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이 훨씬 효율좋은 일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누구도 '어리석게' 창조하려고 하지 않는다. 약탈자로 사는 일이 '현명하게' 권장된다.


실제적으로 NLP나 최면, 분석심리학 등의 관계론적 소재로 이 '현명함'을 팔아먹는 오컬트상인들은 그들의 구매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당당하게 모방을 하세요. 좋은 것을 더 많이 자신에게 붙여넣기 하세요. 그것들은 원래 다 여러분의 것들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정당한 권리가 있습니다. 소수의 탐욕적인 권력층들이 독점해왔던 마음의 비밀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세요. 이것이 민주주의의 실현입니다. 더러운 놈들의 곳간에서 여러분의 것을 당당하게 찾아오도록 하십시오."


사이비 사회주의의 행동강령인 '약탈론'과 완벽하게 동일한 주장이다. 있지도 않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어 자기들의 약탈행위를 정당화하는 이 사고방식은 그대로 '관계의 종교'의 실천론이기도 하다. 광기어린 광신의 행위다.


광.신.은. 비.겁.함.의. 표.현.이.다. 가장 비겁한 이들이 광신한다. 왜인가?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이득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자기계발강사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여기저기에서 주워모은 '좋은 글귀'를 마치 자기가 생각해낸 말처럼 해서 인기를 얻는다. 누군가의 정성어린 노력의 결과물들을 자기의 공으로 돌린다. 이러한 일이 심화됨에 따라, 실제로 그 말을 한 이는 더욱 은폐된다. 오히려 그 오리지널리티의 창조자가 역으로 자기계발강사를 표절하는 이처럼 인식되기까지도 한다.


이것은 아주 의도적인 것이다. 이러한 자기계발강사는 분명하게 '원본'을 말살하려는 의도 속에 있다. 그래야 자기가 약탈로 얻은 권위와 권력이 공고하게 사유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살의 의도는 그가 영광을 누릴 때뿐만이 아니라 그가 비난을 받게 될 때도 집행된다. 이는 표절한 말로 인해 비판받게 될 때 표절자가 이렇게 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사실 저의 말이 아니라 아무개의 말입니다. 여러분이 지적하셨듯이 문제가 많은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이 말의 유용한 측면만을 선별해서 온전한 형태로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표절자는 표절을 통한 이득은 최대치로 취하면서 책임에서는 벗어난다. 동시에 그.는. 원.본.을. 선.별.해.서. 더. 좋.은. 것.으.로. 만.들. 수.도. 있.는. 원.본. 이.상.의. 권.위.를. 자.기.에.게.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관계의 종교' 뒤에 숨어 이처럼 이들은 사유(私有)의 이득만을 꾀한다. 사이비 사회주의가 하는 일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문제는 관계에게 돌리면서도, 관계를 빙자하여 사익을 얻는 정당성은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계의 다른 표현이 '구조'다. 늘 구조가 문제이니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구조를 활용해 자기 재산만은 열심히 축적하는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리고 관.계.는. 바.로. 이.러.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사건은 있는데 책임져야 할 이는 어느 곳에도 없다. 이것은 관계의 마법이다. 또 역으로 말하면, 사익을 얻고 있는 이는 분명하게 존재하는데도 그 당사자는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며 자기의 순수한 무오성을 주장한다. 단지 구조적 모순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고 말한다. 진짜로 마법과 같다.


마.법.은. 경.계.를. 임.의.로. 넘.나.들.고.자. 하.는. 기.제.다. 즉, 가장 경계를 무시하고 있는 무책임한 이들만이 마법사를 꿈꾼다. 그래서 이러한 마법사의 귀결은 대개 '자기상실'이 된다. 왜 그런가? 경계를 흐리다보면 결국 자기 자신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실.존.적. 책.임.의. 의.미.는. 곧. 자.기. 자.신.일. 책.임.이.다. 경계에 대한 마법사들의 무책임성은 그대로 실존적 무책임성이 된다. '실존적 부정직성'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허공에 부유하는 허깨비가 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허깨비로 있다보면 불안해진다. 그러니 이들은 자기를 땅에 묶어둘 안정적인 '중력'을 얻기 위해 이내 사유재산에 집착하게 된다. 재산의 무게로 '유사중력'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벌써 약 50년 전에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 현대인의 이러한 '자기상실'의 사태를 진단한 바 있다. 자신의 '존재'로부터 도망치는 이는 필연적으로 '소유'에 집착하게 되며, 그렇게 '소유된 것'으로 그 자신을 대체하게 됨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을 잃고야 만다는 명쾌한 분석이다.


표절은 정확하게 프롬이 말한 '소유양식'의 행위다. 이 모방과 복제를 통한 약탈의 일을 하다보면 자.기. 자.신.이. 약.탈.된.다. 자기가 지금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지 남의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것은 전술한 것처럼 경계의 문제다. 내담자들은 이 경계의 문제를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다. 내담자들에게는 왜 이러한 문제가 생겼는가? 그.들.이. 무.작.정. 썰.을. 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등의 고등교육 과정으로 올라갈수록 면밀하게 훈련되는 것은 '자신의 말'과 '타인의 말'을 정확하게 분리해내는 작업이다. 보통 석사과정에서는 이 훈련만으로 전체의 과정이 구성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학위논문의 지도교수나 심사위원들이 항시 학생에게 주문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썰'을 풀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자신의 경계도 모르면서 남의 '좋은 말'을 자기 말처럼 삼아 풀어내는 썰은 단순한 도둑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논문'이 아니다. 실제로 '주장'과 '인용'의 형식을 지켜가며, '자신의 말'과 '타인의 말'의 경계를 분명히 해본 이들은 실감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 현.재. 얼.마.나. 가.난.한. 상.태.인.지.를.


남의 '좋은 말'을 빼고 나면 할 말이 없다. 이처럼 대학원생들은 논문을 쓰며 자신에게 얼마나 공부가 필요한지를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논문세미나 등의 시간에 현란하게 '썰'을 풀어내지만 몇 년이 지나도 석사논문조차 쓰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지금 '좌절감'을 맛보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도망치는 중이다. 논문작업에 정직하게 착수해보면 자신의 '실체'가 그대로 노출된다. 잘난듯이 남들에게 '썰'을 풀어낸 만큼 그 실체의 빈약함은 견디기 힘든 것이 된다.


초등학교 교문 앞의 무수한 약장수들은 이 도망자들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썰'을 풀며 자신이 괜찮은 것처럼 체면치레를 해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존적 부정직성은 그저 자기 자신을 상실하게 되는 지름길일 뿐이다.


많.은. 내.담.자.들.이. 바.로. 이. 약.장.수.로.서. 상.담.소.를. 방.문.한.다. 그들은 상담자를 자기에게 귀기울여줄 초등학생으로 상정하여 썰을 풀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상담자는 차라리 논문작성도우미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말에서 어떠한 것이 그의 말이고 또 그의 말이 아닌지를 탐색한다.


이것은 흥미로운 주제인데, 아주 많은 경우 내.담.자.들.은.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이.의. 말.을. 자.신.의. 말.처.럼. 삼.고. 있.다. 그러니 그 말을 할수록 실은 내담자는 고통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고통을 지속한다.


그가 '실제의 자신'에 접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생겨난다. 어떠한 말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든지 '실제의 자신'과 충돌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말'이라고 간주되는 까닭에 맹목적으로 모방되고, 복제되며, 표절된다. 그리고는 그 말을 소유한 만큼 소유자 자신도 '좋은 존재'가 된 것처럼 여기게 된다.


보통 이러한 경우, 해당의 말을 발화하는 내담자의 태도는 매우 고집스럽게 드러난다. 이처럼 내담자가 고집스러울 때,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그 말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묻는다. 대체 어떠한 '참고문헌'에서 인용해온 말인지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의 방향성은 매우 정당하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정말로 '자신의 말'을 하고 있다면, 그. 말.을. 하.는. 내.담.자.의. 태.도.는.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실제의 자신'과 일치하는 '자신의 말'이라, 내담자가 힘을 내서 지켜야 할 것이 없다. 그러니 생각이 분주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남.의. 말.을. 자.기. 말.로. 삼.아. 사.는. 이.가. 늘. 생.각.이. 많.아. 힘.든. 삶.을. 산.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러한 이들은 반드시 '논문'을 쓰지 못하게 된다. 복잡한 생각들에 스스로 지쳐 포기해버린다. '논문'을 '자기 인생의 완성'에 대한 비유로 이해하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들은 왜 이런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고. 있.어.서.다. 이것이 경계의 문제의 핵심이다. 경계의 기초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남의 홈런기록을 자신의 기록처럼 삼고 있는 이는 이제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야구를 하려는 고집을 지속한다면, 그 일은 결국 얼마나 고통을 잘 버티는가의 인내력 투쟁의 일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고된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이 자칭 '천재타자'는 머지않아 초등학교 야구소년들을 모아놓고는 이제 '썰'을 풀게 될 것이다. "그것은 2008년도의 일이었지. 형이 LA에 있을 때......"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남의 경험'을 '자신의 경험'처럼 이야기하게 된다.


자신과 남의 경계가 흐려져 있을 때 이것은 흡사 '빙의된 상태'와도 같다. 영가(靈駕)에게 몸을 지배당해 그것이 대신 우리 자신인 것처럼 삶을 살게 된다. 표현 그대로 우리 자신이 상실된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글의 가장 처음에 상기한 질문을 하지 않아서다.


"이것은 누구의 공인가?"


이 질문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우리가 남의 공을 우리 자신의 공처럼 약탈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에, 그 결과 우리 자신도 약탈된 것이다. 경.계.를. 무.시.하.면. 경.계.가. 무.시.된.다. 단순하다.


우리가 이처럼 약탈되어 자신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러한 인생에 살아야 할 이유란 없다. 내담자들에게서 자주 들려오는 말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것은 정확하게는 이러한 의미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좋다. 더는 이렇게 살지 말자. 관계 속으로 숨지 말자. 관계라는 구조를 활용해 남의 공을 약탈하지 말자. 자신의 영광을 위해 표절하지 말자. '자신의 말'과 '타인의 말'을 명확하게 구분하자. 그리고 남은 그 '작은 자리'에서 처음으로 당신 자신을 정직하게 시작하자.


그.것.은. 아.무.리. 작.더.라.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당.신.만.의. 신.성.한. 자.리.다.


당신이 아무리 가난하게 스스로를 경험할지라도, 당신은 지금 그 자리에서 존.재.한.다. 당신은 허깨비와 같은 '좋은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존재'다. 당신은 지금 자신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막 당신 자신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시작점은 '대가(大家)'를 향하는 여정으로의 그 시작점이다. 분명하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대가가 될 것이다. 썰을 푸는 일은 대가의 특권이다. 이 특권은 '자신의 것'과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정확하게 경계짓는 일로써 실현된다. '남의 말'을 살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당신에게 그 모든 '공'이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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