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말
줄거리는 아주 단순한데, 이 시대의 핵심을 꿰뚫는 영화다.
요즘엔 정신과에서 약을 타먹는 일도 패션이다. 인스타에 특별한 자신을 연출하며 올릴 수 있는 남다른 '글감'이 되는 까닭이다. 그 '남다름'이 이미 대단히 흔한 소재라 문제지만.
자신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 있는 작가이기를 꿈꾸는 한 여성이 있다. 자기의 말이 없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작가로 봐주기를 바란다.
그러한 그녀가 결국 생각해낸 것은 자기를 선정적인 소재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녀는 파리에서 개최되는 작가들을 위한 모임에 자기가 초대받은 것처럼 사진을 합성하여 거짓여행기를 인스타에 게시한다. 팔로워수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점차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파리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그녀는 순식간에 폭탄테러의 피해자로서 한몸에 관심을 받게 된다.
파리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고, 폭탄테러 또한 경험한 적이 없는 그녀가 이 온라인상의 관심을 지속하기 위해 생각해낸 일은, 트라우마 지지모임에 나가 자기의 경험으로 삼을 만한 남의 경험을 수집하려는 일이다.
모임에서 그녀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눈앞에서 자신의 언니와 친구들을 잃게 된 젊은 여성운동가를 만나게 되고, 같은 피해자처럼 보임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한 뒤, 그녀의 생생한 말을 빨아들여 자기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하게 된다.
여성운동가가 한 말을 그대로 자기의 이야기처럼 올린 글은 온라인상에서 대박이 나며, 폭탄테러의 피해자로 소개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여성운동가가 건넨 말인 "난 괜찮지 않다구(I AM NOT OKAY)!"라는 표현은 해시태그가 되어 널리 밈으로 확산된다.
그렇게 여성운동가를 표절해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는 일에 성공한 그녀는, 이제 사람들에게서 작가로 인정도 받게 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인생을 만끽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글감'을 수집하기 위해 그녀는 여성운동가에게 더욱 밀착하여 친밀하게 융합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외로운 여성운동가를 돌보고 지켜주는 인물인 것처럼 스스로를 생각하게도 된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회사 동료에 의해 그녀의 거짓은 완벽하게 탄로나며, 결국 그녀는 인스타에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리는 사과문을 올린다. 이에 따라 여성운동가와의 관계도 파국을 맞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다.
사과문을 올린 뒤 그녀에게 향하는 무수한 비난의 화살을 맞는 과정에서부터, 그녀가 또 다른 지지모임을 방문해 온라인 공격의 상처를 나누는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모습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지지모임의 한 여성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지적한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이 말을 듣고 마치 자각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장문의 사과문을 들고 여성운동가가 강연을 하는 장소를 찾아간다.
강연장에서는 뇌성처럼 시대를 타격하는 명연설이 울려퍼지던 중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제 입에서 나온 그 말이 가로채이던 그 날, 그 말은 해시태그가 되어 절망적인 세대의 두려움을 조회수로 바꿔 울려퍼졌죠. 전 그렇게 빼앗기는 데 익숙해요. 제 말을 자기 글처럼 갖다 썼을 때 전 그걸 리포스트하고, 그 글을 자랑할 땐 손뼉을 쳤어요. 근데도 멈출 생각을 안했나요? 내 눈을 바라볼 때도 훔칠 목소리라고만 생각했나요? 왜 당신의 이야기는 기삿거리로 나오고, 당신 같은 사람들은 넷플릭스와 훌루에 나오는데, 우리 같이 정말로 열심히 산 사람들은 왜 변화를 기다리란 말을 들어야 하죠? 당신은 그 심정을 몰라요. 당신은 마이크를 가질 자격이 없어요. 이건 당신이 훔쳐간 내 말을 되찾는 시간이에요. 당신은 당신 자신의 상처 외에는 대체 어떤 것이 파괴되었는지 아무 관심도 없겠죠. 그게 바로 당신이 한 일이에요. 우리는 절대로 괜찮지 않을 거예요."
여성운동가가 토해내는 진실된 말을 들으며, 그녀는 자신이 쓴 비루한 사과문을 들여다본다. 적당한 비극의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이 상황을 또한 자기가 주인공이 될 연극의 상황으로 남용하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들여다본다.
고개를 숙이고 그녀가 강연장을 퇴장하며 영화도 마무리된다.
그녀가 불쌍한가? 사회적으로 안정된 중산층의 지위를 갖고 있는 그녀가 인플루언서가 되는 일에 좌절한 모습이 그토록 불쌍한 것인가? 자기의 말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세상이 자기를 위대한 작가로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불쌍하게 만드는 것인가?
설령 이것이 불쌍한 것이라면, 이 불쌍함은 다른 이의 눈물을 자기의 눈가에 칠할 핑크빛 화장품으로 이용해도 되는 정당성이 되는가?
영화의 초반부에 여성운동가는 여주인공에게 "어떤 피해자는 악인이 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여주인공은 여성운동가를 향해 "어떤 악인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라고 은연중에 뒤집어 말한다. 금방 정정하지만, 이것은 양심이 말한 자기고백이었다.
글은 속이고, 말은 밝힌다.
글로는 거짓을 보완할 수 있지만, 말을 계속하다보면 거짓은 탄로난다.
이 영화는 오늘날 우리가 '조작적인 글'로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를 절묘하게 묘사하며, 또 글이 결코 연출해낼 수 없는 '살아있는 말'이라는 것이 어떠한 힘을 갖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여주인공은 남의 말을 화려한 자신의 글로 쓰고, 여성운동가는 자신의 마음을 당당한 자신의 말로 표현한다.
이 말 앞에서, 글이 비루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기의 이미지를 조작해내고자 하는 글의 비루함을 결국 여주인공이 눈치챘다는 것은 이 영화가 남기는 작은 희망이다.
타자철학자 레비나스는 이것을 '말함'과 '말해진 것'으로 묘사한다. 우리의 희망도 분명 '말함' 속에 있다. 우리가 그런 척하는 글이 아니고 마음을 담은 말일 때, 우리는 정말로 괜찮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