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다리던 지적이고 과격한 심리학 #2

"NLP: 네 라면을 퍼먹을거야"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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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활동 속에서 가장 말똥같은 일들은 NLP를 한다는 이들에게서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대학 및 대학원, 상담현장, 대중심리학 강의판, 마음공부판 등지에서 20년간 지켜본 결과, NLP가 최악입니다. 저질 중의 상저질입니다.


국내의 NLP 사용자 및 소비자들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애초에 NLP의 창시자들이 심리학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인물들입니다. 마음을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처럼 가정한 후 자기들의 머릿속에서 짜맞춘 구조적 결과물이 NLP입니다. NLP의 창시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있는 밀턴 에릭슨이라는 정신과의사 역시도 심리상담자가 아닌 최면가일 뿐입니다. 나아가 그 본질적 속성은 컬트교주입니다.


괜히 NLP가 사이비과학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닙니다.


NLP가 최악인 이유, 그것은 NLP가 근본적으로 '도둑질'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말이 좋아 모델링이지, 이것은 날강도의 짓거리입니다.


"나 라면 한 젓가락만..."


우리가 익히 경험했듯이 정말 얄밉고 짜증나는 대사입니다. 그 실체는 한 젓가락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후루룩 국물도 그릇에 꼭 흔적을 남기며 쳐먹고, 계란도 애써 살려둔 노른자를 터뜨려 반쪽씩이나 먹습니다.


NLP는 이 추악한 짓을 노골적으로 더 성대히 합니다. 아니, 이렇게 사는 것이 자기들의 당당한 권리라고 상정합니다.


N: 네

L: 라면을

P: 퍼먹을거야


남이 오롯이 그 자신을 위한 시간을 누리려고 정성스레 준비한 라면을, 자기가 다 퍼먹어도 되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들은 자기가 우주의 왕자 또는 공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부모가 그딴 식으로 키웠습니다. 버릇없는 짓을 할 때는 귀싸대기도 몇 방 갈기며, 남의 것을 함부로 탐해서는 안된다는 그 사실적 경계를 이들이 알도록 도와주었어야 하는데, 이들의 부모는 맨날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이들 앞에서 본질적으로 설설 기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이들이 하도 병신같이 살아서, 그렇게 좀 모자라게 태어나게 한 것이 부모인 당신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죄책감 때문에 이들을 제대로 혼내지 못한 결과, 이들은 개념이 없어졌습니다. 한 입만을 요구하는 정도를 넘어, 남의 라면을 자기가 꿀꿀 다 퍼먹는 추악한 심리적 삼겹살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들려올 얘기는 "쟤네 부모 대체 누구야? 면상 좀 보고 싶네."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자기 부모를 가장 욕먹이는 일, 그것이 바로 NLP입니다.


그래서 누가 NLP를 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가 자기 부모와 모종의 심리적 갈등을 갖고 있을 가능성을 아주 쉬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자기 부모의 권위에 먹칠을 하려는 이들이 NLP를 합니다.


진실로 NLP는 '권위의 문제'에 걸려 있는 이들의 상습적 소비품목입니다.


NLP 자체가 애초 '남의 권위를 훔쳐서 자기의 권위로 삼으려는 방법론'입니다. 아주 쉽게, 권위의 도둑질을 배우는 일입니다.


왕자병, 공주병에 걸린 이들이, 능력도 없고 노력도 안하면서, 다만 자기를 왕자 및 공주의 권위로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할 때 하는 짓이 NLP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NLP라고 하는 특정 사이비심리학의 구체적 형태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NLP에 대해 말하려면 더 큰 범주에서 우리는 'NLP적인 것(NLP-like)'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NLP를 소비하는 이들은 자기는 표면 그대로의 NLP를 하지 않는다고 곧잘 말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NLP의 역기능적인 단점을 수정한 새로운 통합적 NLP를 한다고도 말하며, 다른 혹자는 이제 놀라운 체험과 새로운 최신의 심리학 정보를 얻었기에 자기는 NLP를 졸업해서 진정한 새로운 것을 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건 이들이 하는 것은 다 NLP적인 것입니다.


남의 것을 훔쳐서 자기의 권위를 증진시킬 소재로 삼고자 하는 모든 짓거리는 다 NLP적인 것입니다.


이런 NLP적인 것을 하는 이들이 자주 활용하는 단골소재는, 융의 분석심리학, 최면, EFT, 호오포노포노, 근반응검사(팔 들게 해서 수치 측정하는 짓), 휴먼디자인, 점성술, 풍수지리, 음양오행, 소인격체, 내면아이, 켄 윌버, 진화심리학, 매트릭스의 네오 흉내를 내는 메타인지적 작가놀이 등입니다.


대체로 NLP적인 것을 하는 이들은, 다 큰 어른들이 머리에 깡통을 쓰고 전신타이츠를 입은 채 고간을 흔들며 우주를 날아다니는 히어로물을 좋아합니다. "페이트는 문학입니다."라는 대사처럼, 이들은 초딩용 내러티브를 깊이있는 문학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밖에는 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물론 김성모 화백의 럭키짱을 보고 소크라테스처럼 인생의 철학을 배우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이들은 인생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자기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왕자 또는 공주처럼 보일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NLP적인 것의 아주 심대한 특징은, 사실은 존나 유치한데 자기는 그걸 대단히 수준높은 소재인 것처럼 소비하며, 심지어는 홍보하기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저에게 또 이러한 놀라운 체험이 있었습니다. 지식과 체험이 통합된 가장 놀라운 마음의 비밀, 이제 여러분에게 전해드릴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들은 마치 국민 MC라도 된 듯한 젠틀한 사회자 같은 표정과 말투로 이와 같은 대사를 하곤 합니다.


흡사 초딩반장 같은 모양새입니다. 이 모습은 이들이 꿈꾸는 현실이 대략 어느 시절쯤인지를 짐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재입니다.


초딩반장은 자기가 다른 초딩들보다 성숙하고, 진보적이며, 수준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습니다. 남들은 둘리를 보고 바보처럼 웃으며 "호이!"를 외치고 있을 때, 자기는 "아이, 앰, 아이언맨."이라고 차분하게 읊조리고 있으니, 그런 자신이 아주 특별하고 대단하게 생각됩니다.


NLP적인 것은 이처럼 자기가 특별한 존재처럼 보이기 위해 남의 좋아보이는 것을 전적으로 표절하는 행위입니다. 도둑질로 특별함을 얻을 수 있으며, 또 그렇게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권장하는 접근입니다.


이 NLP적인 것이 유난히 역겨운 이유는, 도둑질을 한 이가 시치미를 뚝 떼며 마치 자기의 능력과 재능으로 그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처럼, 우아한 신사나 도덕적 선비인 양, 또 하늘에게 선택받은 재능충인 양 꼴값을 떨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자기의 권위를 만들어준 소재들이 자기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모는 이러합니다.


이들이 어딘가에서 좋아보이는 남의 말을 보거나 남의 글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미필적 고의의 방식으로 이들에게서 망각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 그 경험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어떠한 상황이 현재에 펼쳐졌을 때, 이들은 과거에 보고 들었던 그 남의 이야기를 마치 자기의 생각인 것처럼 상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 감격합니다.


"와, 나에게서 이런 천재적인 발상이 나오다니!"


그러면서, 자기가 과거에 좋은 것으로 보았던 그 남과 이제는 자기가 동격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도 그 사람의 수준이 되었어. 그 사람처럼 나도 이 정도의 천재적인 발상을 할 수 있게 된 거야."


모든 '무의식적 표절'은 이러한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일부러 슬쩍 망각한 남의 것을 다시 기억하게 된 것뿐이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남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아주 교활한 수작의 의도가 여기에는 존재합니다.


의도적 기억상실증을 통해 펼치는, 자기는 도둑 아닌 척하는 도둑질의 행위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NLP적인 것은 바로 이러한 도둑질을 노골적으로 권장하는 방식입니다. 최대한 도둑이 아닌 척하면서 최대치의 도둑질을 성립시키고자 하는 것이 NLP입니다.


모든 것을 다 훔친 도둑이 무대 위에 올라 국민 MC처럼 이 세상 모두를 품어주기라도 할 듯 상냥하게 웃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보통 역겨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이라면, NLP적인 것을 옹호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것을 이러한 방식으로 뺏기고도, 이것을 정말로 우리는 옹호할 수 있겠습니까?


"표절이 최고의 심리학 공식이다."라는 말이 당신에게는 대체 어떻게 들리십니까?


우리의 라면이 한 입만이라도 빼앗길 때, 우리는 진실로 우리의 영혼이 빼앗기는 경험을 합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느낍니다.


그 라면은 단지 하나의 라면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모든 정성을 담아 보내던 가장 귀한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중간에 날강도에게 약탈당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겁탈당한 것과 같습니다.


작은 일에 쪼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그 작은 것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아무도 우리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 가운데, 우주의 가장 변두리에 그렇게 소외되어 있던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가 직접 끓인 바로 그 라면입니다.


진실로 우리가 영혼의 눈물로 끓인 라면입니다.


그런데 이 라면을 마치 자기의 권리라도 되는 것처럼 퍼먹겠다고요?


왕자병 내지 공주병에 걸린 이의 망상적 쾌락을 위해 우리의 영혼이 희생되고 우리의 눈물이 짓밟히는 일이 당연하다고요?


이들이 처음부터 라면 두 개를 끓여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들은 왕자와 공주라서요. 남의 것을 빼앗음으로써 자기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우리가 NLP적인 것에 대해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NLP적인 것을 하고 있는 이들의 옆에서는 빨리 멀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늦든 빠르든 간에, 당신은 반드시 당신의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것은 모기의 생태만큼이나 우주의 법칙입니다. 혹시라도 이들의 근처에서 라면을 끓일 수밖에 없다면, 라면스프와 함께 청산가리를 타세요. 원하는 만큼 퍼먹게 하세요.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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