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와 즐거운 인싸생활"
산타마리아 춤은 어떻게 추나요?
어떻게 추는지 아신다면 당신이 굳이 MBTI를 알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제로투댄스나 우영우 같은 일입니다. MBTI는 심리학과는 아무 관계없이, 다만 공통의 관심사를 위한 소재일 뿐입니다.
그러니 굳이 유형대로 설명되지 않아도 좋은 일입니다. 서로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제 기능을 다한 겁니다.
"MBTI는 말이야. 원래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왔거든. 융은 표면의 인격인 페르조나와, 그 반대되는 뒤편의 인격인 그림자가 우리에게 있다고 했어. MBTI는 그러한 인간의 대극적 양면성을 유형화한 거란 말이지. 네가 ESTP라는 것은 너에게 숨겨진 내향성과 감정기능이 크게 작동한다는 얘기야. 표면적으로만 보면 안돼. 더 깊이 인간을 봐야지."
아싸들이나 분위기 파악 못하고 이런 말을 합니다.
인싸들에게는 상대가 ENFP인지 ISTJ인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심심풀이의 '놀거리'일 뿐이니까요. 진지빨고 목숨걸며 달려드는 것은, 그럼으로써 자기의 탁월한 전문성을 과시하려는 것은 아싸의 특성입니다. 아싸가 왜 아싸인지의 이유입니다.
심지어 MBTI라는 소재는 더욱 그러합니다. 혈액형이나 별자리에 목숨거는 일만큼이나 MBTI라는 소설에 목숨거는 일은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모녀 소설가들이 만든 소설이 MBTI입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MBTI의 창시자들은 그 직업이 소설가였습니다. 그러니 소설처럼 재미있습니다. 막 캐릭터 메이킹을 하듯이 끼워맞추는 재미가 있습니다. 설정놀이의 재미입니다.
그렇게 갖고 놀다가 창고에 넣어두면 되는 것이 MBTI입니다. 보드게임의 하나로 이해하면 아주 좋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유준상 배우님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장면이 더욱 빛을 발합니다. 여기에서는 대충 이러한 대사가 나옵니다.
"당신은 보이기에는 활발하고 사교성도 많지만, 실은 그 내면에는 아주 깊은 외로움이 있어요."
한 인물이 이러한 말을 하자 다들 공감합니다. 다 자기 얘기처럼 듣습니다.
이게 MBTI의 비밀입니다.
반대되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그 사람의 특성으로 묘사하면, 세상 사람 모두는 그것을 자기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모든 인간이 양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INTJ라고 믿는 사람이, 유형제목을 가린 채 그 반대되는 ESFP의 설명을 읽더라도, 마찬가지로 자기에 대한 묘사처럼 보게 됩니다.
이런 일은 매우 자주 일어납니다. 보통 심리상담을 배우려는 이들이 한 번쯤은 빠지게 되는 것이 MBTI입니다. 대체로 이러한 시기에 에니어그램과도 교차적으로 연결해가며 자기의 심리적 청사진을 그려보곤 합니다.
이처럼 상담수련생들이 막 자기들끼리 모여 유형을 얘기하며 노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유형에 대한 설명에 공감하면서 듣고 있을 때 그 설명자가 실수로 다른 유형을 설명해주었다고 말합니다. 검사지의 결과로 나온 자기 유형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청자는 자기에 대한 정확한 설명인 것처럼 몰입해서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 이제 다들 MBTI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집니다. 애초에 MBTI로 상담을 하는 일 자체도 어려운 일입니다. 내담자를 특정한 유형에 끼춰맞추는 일을 가장 먼저 포기해야 가능한 것이 상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MBTI의 소비를 통해 이 상담수련생들에게 남는 것은 있습니다.
서로간에 웃음이 가득했던 그 시간이 남습니다.
자신과 상대에 대한 깊이있는 대화가 만들어준 친밀한 그 유대감이 남습니다.
이처럼 구성원들이 서로를 서로의 시간 속으로 초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는 것만으로 MBTI는 모든 임무를 다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MBTI를 통해 만들어진 인싸의 시간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엄밀히는 인싸도 아싸도 아닌, 그저 만남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심리학에 대해 하는 가장 큰 착각 중의 하나는, 심리학을 알수록 인싸가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 시간에 웃긴 짤들이나 많이 모아 단톡방에 올리는 편이 낫습니다.
MBTI를 더 전문적으로 잘 알수록 인싸가 되지는 않습니다. 특히 MBTI를 통해 상대의 성향과 욕구를 파악해서, 그걸 충족시켜줌으로써 상대로부터 인기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냉면을 많이 사주고, 돈을 뿌리세요. 민트초코나 파인애플피자를 좋아하는 척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집단에 소속되려면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는 발상 때문에 시도됩니다.
게임의 감각입니다. 자기의 성향이 딜러인지, 탱커인지, 힐러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자기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집단의 필요가 되어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많은 심리상담자들이 유형검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내담자가 남을 위해 자기를 모종의 유형에 맞추려는 이 일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고통이 지속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유형검사가 이러한 고통의 구조를 강화합니다. 결과로 나온 특정한 유형이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내담자 자신이 더욱더 그러한 사람인 것처럼 자기의 조건을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담겨 있는 이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구!"
집단에 인싸로 소속되기 위해 캐릭터를 잡는 것뿐이지, 우리는 실은 어떠한 유형에 갇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에니어그램은 이러한 차원에서 조금 더 정직합니다. 에니어그램은 아예 자신의 유형을 일종의 저주로서 묘사합니다. 바로 그러한 특정유형으로서의 정체성의 저주에 걸려있기 때문에 개인이 온전성을 잃게 된다고 에니어그램에서는 말합니다.
물론 이 또한 내용의 차원에서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잘 쓰인 소설 속에는 분명 인간성에 대한 중요한 진리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문학의 가치입니다.
혼자 노는 법을 모르는 이들이,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하며, 자기를 아싸라고 생각함으로써 인싸에 대한 강박적인 동경을 품곤 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은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주로 하는 것입니다. 심리상담은 더욱 그러합니다. 심리상담자들은 결코 사교적인 인싸들이 아닙니다. 처음 만나는 이와 말하는 일을 어려워하고, 수줍음도 많으며, 혹시나 자신이 뭘 잘못 말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을까봐 소심하게 고민도 많이 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이들이 MBTI를 하지 않는 이유는, 놀거리인 유형론을 통해 자신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상대 또한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놀이가 한순간에 폭력이 되는 일은 매우 자주 발생합니다. 특히 놀이가 집단게임의 형식이 되어 있을 때, 이러한 일은 생겨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MBTI를 더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MBTI 대신에 융을 깊게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며, 또는 MBTI가 아닌 제대로 된 심리학을 알아야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을 상처받을 곳에 던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을 알아야 합니다.
아싸인 것만이 당신에게 상처였겠습니까. 즐거운 인싸생활도 당신에게 상처였습니다.
'아싸'와 '인싸'도 유형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과의 만남이 그 두 유형을 다 벗어난 곳에서, 아싸보다 더 전문적인 것으로, 또 인싸보다 더 친밀한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런 글은 INFP나 싸지를 거라는 점도 아마 분명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