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실존상담"
"씨발놈아 똑바로 살아야지?"
실존상담을 좋아하거나 실천하는 이들은 거의 매일 이 지옥의 목소리를 듣고 삽니다. 이들의 현실인식은 대체로 유한한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죽음으로 가깝게 나아가는 가운데 자기 자신으로서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초조함과 압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글에서 실존철학자라는 키워드로 이미지검색을 한번 해보세요. 좀 정신나간 그런 얼굴들입니다.
이들의 내면에는 외적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압력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똑바로'라는 말이 윤리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그게 뭔지 분명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이 정해준 '똑바로'의 길은 분명 아닙니다. 그럼에도 '똑바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알 수 없는 길을 스스로 가야 한다는 불안이 이들의 내적인 압력을 형성합니다.
누군가는 이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존적 윤리라는 것을 채택합니다. 정직하고, 우직하며, 묵묵히 자기의 역할을 완수해내는 인내의 영웅상을 모델링해서 자기의 모습으로 삼으려 합니다. 시지프 놀이를 하는 이들입니다.
누군가는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수단으로 실존적 쾌락을 주장합니다. 클럽에 가 열심히 엉덩이를 돌리면서, 이것이 자유로운 원초적 생명성의 표현이라며, 이성 앞에서 "너 실존이라고 알아? 존나 힙하고 쿨한 거거든." 등과 같은 대사를 남발하는 실존힙스터가 됩니다.
누군가는 들입다 책만 팝니다. 어려운 철학적 용어들로 무장해 압력을 제압하려고 합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남들이 보기에는 개폼이나 잡으려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내적으로는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비난의 압력에 시달리고, 그에 응답하는 행위를 하면 할수록 외적으로는 꼴값떤다는 비웃음의 압력에 시달리는 것이 이들의 저주받은 운명입니다.
이들에게 작용하는 '똑바로'를 예술적 지향으로 파악하면, 이들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실존상담을 추구하는 이들은 아름다움을 꿈꾸는 이들입니다. 심리학을 미학으로 소비하려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 존재의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들은 존재에 집착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가, 이들이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에 기인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보고 있지만, 그것을 충분하게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이 간극이 바로 이들에게 존재의 수치심을 야기하는 그 이유가 됩니다.
자신이 본 것을 '똑바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는, 이들은 자기를 형편없는 못난이 벌레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본 아름다움의 크기만큼이나, 현재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비루해지는 것입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들이 이처럼 미학적 표현에만 열중하고 있는 동안, 세상은 이들을 스쳐 지나간다는 점입니다.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성격 이상한 똥자루 날백수가 또 한 마리 꿈틀대고 있는 모습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현실적인 힘과 자원 또한 잃어가게 됩니다. 미학적 표현도 성취하지 못하고, 현실적 능력마저 없어집니다.
가난한 독립예술가의 신세와 거의 비슷합니다. 실은 그보다 더 최악인 것은, 독립예술가에게는 그래도 가오를 세울 만한 '예술가'라는 딱지라도 붙어 있지만, 실존상담을 하는 이들은 그냥 무능력한 직업인일 뿐입니다. 예술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누구도 그를 예술가로 보지는 않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또 자기도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 못하는 막연한 것을 위해, 매일같이 돈과 산소나 축내며 배변운동이나 열심히 필라테스처럼 하고 있는 밥벌레로 보이는 것이 정확한 이들의 팔자입니다.
전문백수라고 하면 유머의 가치는 있습니다. 그 내용상 백수백조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존재의 영역에 봉사한다고 하는 어떤 자부심이 이들의 근간을 형성하는데, 그래서 시답잖은 술자리에서의 대화를 이들은 아주 힘들어합니다. 대체로 이들은 늘 철이 없지만, 특히나 철이 더 없을 시절에는, 부동산 얘기나 코인 얘기로 술자리의 대화가 돌고 있으면 갑자기 불쑥 이렇게 말을 내지르곤 합니다.
"니네는 니네가 죽는다는 사실도 정말로 모르면서 그딴 것들이 정말 중요하냐?"
이처럼 술자리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뒤, 집에 돌아와 병신같은 자기 모습에 혼자 우는 것이 이들의 특징입니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예언자가 보통 이들이 담당하는 역할입니다. 이러한 예언자의 임무는 돌을 맞는 것입니다. 돌을 많이 맞아 이들은 좀 아픕니다. 아플수록 "씨발놈아..."의 목소리는 더 잘 들려옵니다.
이러한 상태를 일반적인 우울증과는 조금 변별해서 실존적 우울증이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갖는 만성질환입니다.
사실 우리가 특별히 이들에게 과격해져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들 자신이 이미 스스로에게 충분히 과격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타협할 줄 모르고, 자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가혹한 지옥의 맨 밑바닥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이들입니다. 심리학 및 심리상담을 하는 이들 중에 사실 제일 불쌍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더 간절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분명 지옥에 홀로 있듯이 외로운 이들인데, 이들의 외로움은 자신의 외로움을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 달래고 싶지 않다는 그 착한 소망에서 비롯합니다. 그런데 그 외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이것이 이들의 막힌 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허클베리 핀은 이들의 성공적인 본입니다.
허클베리 핀은 내적인 압력과 싸우지 않습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압력으로 경험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면의 종달새의 목소리를 그 자신의 삶으로 그대로 옮기는 인물입니다. 종달새의 노래가 늘 그와 함께 하니 그의 외로움도 가벼운 날개가 됩니다.
당신도 그렇게 계속 노래하십시오.
'똑바로'는 아마도 노래에 대한 '멈추지 말고 직진으로 계속'의 의미일 겁니다.
많은 아이들이 실은 당신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그 자유를 닮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당신에게는 도움이 될까요?
당신이 꿈꾸던 그 존재의 아름다움은 바로 자유랍니다.
자유로워서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지금처럼, 똑바로.
당신은 아마도 좀 더 망가지는 편이 좋습니다. 내외부로부터 오는 압력의 긴장이 빚어내는 정형미에서 벗어나, 당신 안의 종달새를 활짝 풀어두는 것이 정말로 좋을 겁니다. 당신이 종달새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최상일 겁니다.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일 수 있습니다. 다른 무개념들과는 다르게 늘 스스로 알아서 '똑바로'를 견지했던 당신이기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도 당신이 '자유의 길'에서 벗어날 일은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과격함입니다.
노래하세요.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서도 노래하세요.
당신의 노래가 지옥에서 들려올 때, 우리는 당신이 지옥을 지금 어떻게 바꾸어내고 있는가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생생히 그려보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