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치유자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헨리 나우웬 신부가 말한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의 개념은 오늘날 이렇게 쓰입니다.
"제가 힘든 경험을 하고 나니 그동안 제가 얼마나 오만했던가를 알 것 같습니다. 이제야 여러분과 제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여러분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다들 너무 보고 싶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이제 달라진 제가 여러분의 아픔에 다가가서, 그 안에 보석처럼 담겨있는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가득 끌어안겠습니다. 이제 제가 갑니다. 누구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이제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삼류 무협지에 나올 법한 유치한 대사가 상처입은 치유자를 대표하는 대사가 되었습니다.
드래곤볼에서 베지터 역시도 할 만한 고백입니다.
"사이어인의 엘리트 왕자로만 오만하게 살아왔던 내가, 카카로트 너 같은 하급전사에게 패배한 후 자존심이 무너지고 끝없는 열등감 속에서 방황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하찮은 벌레들로만 보였던 지구인들이 얼마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약하지만 참으로 소중하게 빛나는 존재들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걸 깨닫게 되자 나도 너처럼 초사이어인이 될 수 있었지. 고맙다 카카로트. 나도 너처럼 한없이 상냥한 마음을 가진 자긍심 높은 전투민족 사이어인이다!"
아 존나 오글오글하네요. 미친 다 죽어버려야지.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게 마치 자기도 병신인데, 다른 사람들도 다 병신이었구나, 그러니 우리 병신들끼리 서로를 도우며 서로에게 상냥하게 살아가야지, 라는 무슨 인생의 진리 같은 것을 깨달은 존재를 뜻하는 표현인 것처럼 오용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달음도 아닐 뿐더러, 상처입은 치유자의 뜻은 더욱 아닙니다.
여기에서 일어난 일은, 상처입은 이가 다른 모두를 똑같이 상처입은 이로 보게 된 것뿐입니다. 즉, 상처입은 이가 다른 모두를 상처입은 이로 만든 것뿐입니다.
이것이 상처입은 치유자의 모델이 가장 오용될 때 생기는 악질적인 역기능입니다.
상처입은 치유자는 다른 이를 상처입힙니다.
그가 서쪽으로 간 이유는, 동쪽에서 받은 상처를 서쪽에 입히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이가 상처를 입힐 때는 반드시 수류탄을 씁니다. 무차별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가 가게 합니다.
그래놓고는, 팔다리가 날아간 채 아파서 쓰러져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너도 이렇게 병신이었구나. ㅠㅠ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 그래서 내가 니 마음 잘 알아. 우리 인간이 이렇게 병신인 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런 너도 온전하잖아. 우린 인간이라구. ㅠㅠ 내가 여기에 있어. 응, 응, 이제 내가 왔어. 너를 위해 이제 내가 여기에 서있다구. ㅠㅠ"
자기가 병신이라고 다른 사람들을 다 병신으로 만들어 자기가 위로받으려고 하는 이 일이, 상처입은 치유자의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집니다. 이런 일을 하는 이들 자신이, 자기가 대단히 수준높고 고귀한 상처입은 치유자라고 자임합니다.
"제 상처를 통해 사람들의 상처를 더 잘 보고 친절하게 품을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말하며 수줍으면서도 뿌듯하게, 겸손을 가장한 표정을 짓는 이들은 좀 맞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걸 정확하게 물귀신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상처받은 병신으로 만들어 자기의 상처가 위로받을 도구로 쓰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남들 위에 서서 그들의 상처를 돌볼 수 있는, 그들보다 한층 높은 존재인 것처럼 은밀하게 입지화하는 일입니다.
상처입은 치유자는 이딴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이를 일컫는 것입니다. 마음의 치유자로 활동하는 이가 스스로를 치유하지 못하고, 다른 이를 남용해 자기의 상처를 돌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상처입은 치유자'가 아니라 '상처입히는 치유자'일 뿐입니다.
상처입히는 치유자는 절대로 거친 언행으로 사람들을 상처입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으로 거친 언행의 치유자는 생각 외로 그 순간 제대로 치유적 기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슈탈트 접근의 펄스가 대표적입니다.)
상처입히는 치유자는 교묘합니다. 그는 아주 부드럽고 신사같은 태도로 사람들에게 그것이 상처인지도 모르게끔 상처를 새깁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사람들의 인생이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막히게 하는 아주 치명적인 상처입니다.
상처입히는 치유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감사와 칭찬이 담긴 후기들을 모으고 있는지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상처입히는 치유자에게 감사인사를 건넵니다. 너무 친절하고 상냥하신 데다가, 쉽게 설명해주셔서 진정한 마음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셨다며, 마치 사이비교주에게 신도들이 하는 것과 같은 숭배를 보냅니다.
자신들이 뭘 당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지금 자기들의 인생이 정확하게 막히게 되었다는 것을 도무지 모릅니다.
상처입히는 치유자는 사람들에게 최악의 것을 줍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늘 사람들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을 줘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든 자의적인 기억이, 상처입히는 치유자의 아름다운 추억을 형성합니다. 자기가 태어나서 아주 잘하고 있었던 양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습니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를테면 상처입히는 치유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을 잘 알아갈 수 있도록 최고의 마음의 비밀을 쉽게 알려주겠다며, 구구단과 같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이제 구구단을 최고의 수학이라고 배우게 된 이들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구단만을 암기하며 자기들이 최고가 된 것처럼 굴게 됩니다.
수리영역의 문제를 풀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문제들은 괜히 복잡하게만 만든 가짜들입니다. 진짜는 치유자가 가르쳐준 구구단입니다. 그것만 알면 인생이 다 잘 풀릴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동안, 구구단의 소비자들은 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삶에 유용한 진짜 기술들을 배우지도 못하게 되어, 미래가 막힙니다. 구구단만을 반복적으로 암기할 뿐입니다.
치유자 자신이 쉽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을 최고의 것으로 믿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일이 상처입히는 치유자가 사람들의 인생을 막히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또 다른 예들도 있습니다.
커피 로스팅도 할 줄 모르는 이가 유튜브에서 본 드립커피 내리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이 정도 할 줄 알면 커피계에서 최상급의 놀라운 커피매니아의 수준이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는 서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하면서, 이 정도 음악 들을 줄 알면 락음악계에서 최상급의 놀라운 락매니아의 수준이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들의 단골대사는 이러합니다.
"자, 오늘 들으신 이 정도의 것을 아셨으면, 여러분은 이제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가장 최신의 고급정보를 아우르는 심리학의 최고수준을 체득하신 겁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마음의 전문가가 되신 겁니다."
그리고 이처럼 이 치유자에게 세뇌된 이는 정말로 그런 줄 알고, 허접한 그 상태에서 계속 머물게 됩니다. 자기의 인생에서 관심사에 따라 펼쳐낼 수 있는 모험의 여정이 거세됩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위의 상태에만 빠져 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디 커피에 관심있는 사람들 또는 락음악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이제 자기가 치유자에게서 배운 최고의 지식을 뽐내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단히 쪽팔린 경험을 하게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 쪽팔림만큼 치유자의 숭배자들은 인지부조화에 빠집니다. 그래서 더 빗장을 걸어 잠그고는, 치유자가 가르쳐준 것이 정말로 최고의 것이며, 오히려 커피동호회나 락음악동호회에 있는 사람들이, 남들을 무시하는 썩어빠진 꼰대 같은 권위를 부리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만큼 치유자의 친절함과 똑똑함은 더욱 숭배됩니다.
개막장 사이비 컬트집단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늘날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일들 속에, 특히 자기를 상처입은 치유자로 상정하여 사람들에게 친절한 모습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이들은 이러한 컬트성향을 가진 사이비구루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준다는 미명하에, 사람들을 자기의 수준으로 정체시키는 일입니다.
허접한 것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는 자신의 상태와 똑같이 사람들을 허접한 상태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쪽팔림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수호하기 위해 허접한 상태를 오히려 예찬하며 그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일입니다.
즉, 자기 이상으로 사람들이 나아가지 못하도록, 이 물귀신들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그들의 인생을 수준낮은 차원에 붙잡아두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가 사람들에게 제일 높은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이 상처입은 치유자의 형상으로 활동하는 사이비구루들이 얼마나 권위에 미쳐있는지는 우리의 상상 그 이상입니다.
이들이 사람들을 일부러 병신으로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를 권위있는 존재로 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멀쩡하면 허접한 자기에게 권위를 줄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보다 잘난 모습을 보이기에는 가진 자원이 없습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못나지게 함으로써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기가 잘나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상처입은 치유자'를 자임하는 이가 '상처입히는 치유자'로서 행위하게 되는 그 방식은, 바로 인간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일입니다.
이들은 왜 친절하고 자상하게 구구단을 가르칠까요?
정말로 수학을 아예 모르는 이들이 구구단을 익히면 좋으니까 그런 걸까요?
물론 이들은 그렇게 얘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내심에는 이러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차피 후진 애들이라 구구단 정도 외우면 잘하는 거지.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내가 쉽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구구단이나 잘 외우면 그래도 인생 괜찮게 살 게다. 엄한 욕심 내봤자, 후지게 태어난 니네나 괴롭지. 에궁. 쯧쯧. 그래도 나 안 만났으면 지금보다 더 후지게 사는 게 니네 인생이었을텐데, 너희를 일정 이상 수준으로 올려주는 나 만난 게 그래도 니들 복이다, 인석들아."
사람들의 가능성을 건방지게 자의적으로 재단하여 제한하는 일이 바로 이 치유자가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을 생각하는 척하나 실은 사람들에게 가장 엿을 먹이는 일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을 가장 본질적인 차원에서 무시하고 있으면서, 자기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 선량한 이라고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깁니다.
좀 많이 역겹습니다.
물론 이 치유자가 사람들을 병신으로 보는 것은 자기투사입니다. 자기가 병신이기에 사람들도 다 병신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병신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치유자는 이제 자기는 병신이 아니라 병신을 돌보는 천사인 척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상처입은 치유자'가 아닙니다. '상처입히는 치유자'입니다.
자기는 쪽팔리지 않고 온전한 척하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그들 인생의 가능성을 가리고 자기 대신 쪽팔린 인생으로 만들려 하는 악성의 사기꾼입니다.
황당하게도, 상담에 와서 이러한 사이비구루에게 배운 허접한 심리학 이론으로 상담자를 가르치려고 드는 내담자분을 경험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 심리학존나짱 선생님은 '철수야 영희야 바둑이도 함께 가자.'라고 쉽고 친절하게 말하셨는데, 그런 말 안하시는 거 보니 심리학 잘 모르시나 봐요?" 이러한 신도가 하는 짓을 보면 사이비구루의 상태는 충분히 짐작가능합니다.
사이비구루는 바뀌지 않습니다. 한 번이라도 사이비구루로 남들을 병신으로 만든 뒤 그들을 돌보며 자기가 선량한 왕이 된 것 같은 오르가슴을 경험한 이가 있다면, 그렇게 사람들을 착취해 자기의 열등감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한 것 같은 경험이 있는 이라면, 그는 사이비구루를 어떻게든 지속하려 합니다. 악성 마약중독자의 상태와 100% 동일합니다.
그리고 사이비구루가 이러한 만큼, 한 번이라도 이들이 가르치는 허접한 것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며 기뻐한 경험이 있는 이라면, 그는 정말로 스스로에게 정직해져서 이 착취된 과거를 끊으려는 용기를 내지 않는 이상 그 회복에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자연회복은 거의 어렵습니다.
쪽팔린 것은 원래 자기가 그랬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쪽팔림이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들의 인생에 남기는 것이 이 종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들로부터 벗어나는 길도 쪽팔림에 있습니다. 상처를 숨기면 낫지 않습니다. 이러한 유치뽕짝 찌질이들을 친절한 심리학 전문가처럼, 자상한 인생스승처럼, 상냥한 상담자처럼 보며 추종하던 그 경험이 얼마나 대차게 쪽팔린 것이었는지를 우리가 기억한다면 진짜 치유는 가능해집니다.
자기가 한 일이 얼마나 쪽팔린 일인지를 아는 그 자리에서, 당신은 서쪽으로도 동쪽으로도 갈 일이 없습니다. 치유는 이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에 서있는 당신이 바로 진짜 '상처입은 치유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