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살림 #7

"살림은 지속가능한 것"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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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sustainable) 것을 위한 활동이 살림이다.


지속가능하려고 우리는 살림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정말로 지속가능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변화다.


변화만이 정말로 지속가능한 것이다.


변화되지 않고 그 상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려는 것은 실제의 지속가능성이 아니다. 그건 퇴행 내지 정체라고 불린다.


마음살림을 굉장히 잘했던 한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라질 것들이 참 생생하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두 경향성을 시사해준다.


하나는 지성이고, 하나는 감성이다.


지성은 사라질 것들을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일에 지배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래서 지성은 언제나 소유하려고 한다. 차가운 아이스박스 안에 소유함으로써 그것을 영구히 결빙시키려는 의도를 갖는다.


지성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러한 방식으로 다 소유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성의 주된 특징은 자기가 왜 그러고자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좋아서, 소중해서, 그것들이 변하지 않게 하려고 지성은 필사적으로 행위해온 것이다.


그러나 감성은 같은 것들을 보면서 다르게 말해왔다.


"참 생생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그게 너무 소중하다고 감성은 늘 정직하게 감동해왔다.


감성은 변화를 허용한다.


사랑하는 것의 자유를 가로막지 않는다.


왜일까?


사랑은 그것의 사라짐까지도 사랑할 때 사랑인 까닭이다.


이렇게도 언술할 수 있다.


지성은 동사를 명사로 삼고자 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이름을 붙이고 분류해서 통합적으로 소유한다.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은 힘이다.


반면, 감성은 명사를 동사로 보고자 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변화의 움직임을 해방한다. 그 결과 드러나는 것은 사랑이다.


힘과 사랑은 우리의 삶의 두 축이다.


그러나 힘쪽으로 아주 많이 기울어 있다.


지성이 맹목적으로 예찬되어 온 역사가 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게 만들 힘을 얻고자, 우리가 얼마나 맹목적으로 간절했던가의 그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줄만 몰랐던 것이다.


힘을 과잉되게 추구할 시간에, 더 사랑하면 된다.


사라질 모든 것에,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 모든 것에 더 감동받으면 된다.


사라질 것들은 정말로 생생하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어서다.


이 사랑을 통해 모든 것은 지속가능한 것이 된다.


마음의 감동이 살아나 우리의 삶이 지속된다.


마음살림은 이러한 사랑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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