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과학"
"아무 것도 없는데 왜 무엇인가가 있는가?"
과학은 이 존재의 신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두 개의 질문으로 확장되어 탐구가 생겨난다.
"있는 것은 왜 있는가?"
"없는 것은 왜 없는가?"
인간은 이 탐구의 과정을 자신의 모험으로 가져가 이렇게 묻는다.
"이것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존재의 신비와 구체적 개인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을 때 의미라는 꽃이 활짝 피어난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과, 특별한 삶의 방식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살림은 원래 이 질문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막 자취를 시작한 이가 아무 것도 없는 텅빈 방에 입장해서 그의 천국을 본다.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그래서 창조가 일어난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무엇인가가 있게 된다. 마음이 한 일이다.
냉장고에 새우튀김과 맥주가 있다. 먹는다. 없어진다. 있었다가 없어져서 행복하다. 있음과 없음 사이에 행복이 드러난다. 마음은 이렇게 행복하다.
설거지거리가 있다. 퐁퐁이 없다. 퐁퐁을 있게 한다. 설거지거리가 없어진다. 언젠가는 퐁퐁도 없어진다. 살림을 잘 하며 살았다. 마음이 충만하다.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 사이에서 일어나던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삶이라는 의미였다.
이게 삶이었다.
마음이 있어 삶이라고 하는 것을 살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마음이 있어 이 모든 것도 있었다.
정말로 좋았다.
과학은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있는 것도 좋고, 없는 것도 좋고, 있었다가 없어지는 것은, 그리고 없었다가 있어지는 것은 제일 좋다.
마음은 과학의 소재이며, 마음살림은 과학의 과정이다.
과학의 기초는 정확성이다. 정직성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이 정확성에서 출발하면 마음살림은 언제나 성공적이다. 기초가 튼튼해진다.
기초가 튼튼해야, 살림이 즐거울 수 있다.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정확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으니, 마음이 즐겁지 않다. 경계를 모호하게 흐려 구두약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행복하지 않다. '사는 게 좋다.'라는 감각이 사라진다.
튼튼한 기초 위에서 놀 수 없게 된 까닭이다.
정말로 지금 있는가, 또는 정말로 지금 없는가, 이 기초를 늘 새롭게 물으며 알아가는 것이 배움이다. 과학은 배움의 활동이다. 그리고 배움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즐거운 일이다. 새롭게 드러난 것들에 대한 늘 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퐁퐁은 오늘의 퐁퐁과 같지 않다.
오늘의 설거지거리도 어제의 설거지거리와 같지 않다.
오늘은 날도 좋으니, 퐁퐁으로 비눗방울 놀이도 가능할 것이다.
아무 것도 없던 우주에 비눗방울들이 가득하다.
잘 살고 있다.
살림 중 이상무.
문제가 없어지고, 행복이 있게 되는 것은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