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닫는마음씨 Aug 19. 2019

실존상담의 꽃

"창조"



  실존상담이 다른 모든 접근과 고유하게 변별되는 가장 핵심적인 특성, 그것은 바로 창조다.


  실존상담이 근거한 실존철학 자체가 애초 삶의 무의미성을 자각한 뒤 이제 스스로의 의미를 구성하고자 하는 인간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실존적 인간상은 곧 창조하는 인간상이다.


  빛이 없던 세상에 "빛이 있으라."라고 선언하는 일, 가장 먼지와 같은 것에 우주만큼의 중요성을 담지하는 일, 의미가 없던 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이 모든 일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실존적 인간상은 곧 사랑하는 인간상이다.


  실존은 구체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 곧 사실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실존적 탐구 속에서 인간은 이 사실성을 자각하게 된다. 사실성은 무인격적인 것이며, 중립적인 것이고, 그냥 그러함(suchness)으로 온전한 것이다. 즉, 사실성은 이미 그 자체로 온전한 까닭에, 여기에는 의미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사실성은 무의미성이다. 무의미성은 온전성이다. 덜함도 더함도 없다.


  이 사실성 위에서 인간은 꿈을 꾼다.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의미를 구성해낸다.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특성인 호기심과,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인 상상력이, 이 즐거움을 더욱더 풍요롭게 확장시킨다. 무채색의 우주가 천연색으로 채색된다. 아름다움이 창발된다. 벅차도록 근사하기만 하다.


  이처럼 사실성 위에서 꿈을 꾸는 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허구의 세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는 유일한 경우는, 인간이 사실성에 대한 자각을 상실했을 경우다. 꿈만으로 살아갈 경우다. 이와 같이 사실성을 상실한 꿈의 움직임을 욕망이라고 부르며, 사실성 위에서 작동하는 꿈의 움직임을 소망이라고 부른다.


  욕망은 인간을 꿈이라고 하는 허구성 속에 갇히게 만든다. 실이 끊어져 허공을 표류하는 연과도 같다. 그것은 일견 자유로워보이지만, 실제로는 허공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망은 땅이라고 하는 사실성과 연결되어 더 높은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도록 한다. 그 너울대는 비상의 움직임은 가장 고유하고 아름다운 춤사위와도 같다.


  실존상담이 묘사하는 자유는 이와 같다. 그것은 사실성과 허구성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창조의 역동이다.


  때문에 실존상담에는 시간이 없다.


  부모와 같은 양육자에게 자기 삶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전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00회 이상의 상담회기를 낭비할 시간이 없다. 또는 자기를 프로그래밍된 기계처럼 보며, 오류를 해결하고 '정상성'을 회복하기 위해 학습을 통한 교정활동을 반복하며 낭비할 시간이 없다. 또는 돈을 내고 구걸해서 얻어낸 공감과 지지 속에서, 그래도 세상에는 이처럼 자기 편이 하나쯤은 있었다고 훌쩍이며 코 푼 휴지처럼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 대신 실존상담에는 순간이 있다.


  인생이라는 단 한 번뿐인 순간이 있다.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단 한 번뿐인 기회가 있다.


  낭비할 시간은 없다. 살아낼 순간만 있다. 살려낼 기회만 있다. 창조할 자신만 있다.


  우리가 창조해내는 모든 것은, 다 자기 자신이다. 요리사는 자기 자신을 창조해 손님들에게 맛보이는 것이고, 음악가는 자기 자신을 창조해 청중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며, 회사원은 자기 자신을 창조해 회사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은 진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우리의 창조는 모든 것을 살아 있게 하고, 또 기쁘게 한다. 그로 인해, 창조하는 우리 자신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진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진다.


  이처럼 창조야말로 우리의 행복의 원천이다.


  창조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실감하게 되고, 우리 자신의 존재감을 확신하게 되며, 우리 자신의 자유와 사랑의 크기를 가늠하게 된다. 무엇으로도 부정될 수 없는 행복의 근거가 바로 창조하는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의미는 완전하게 우리의 것이 된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의미가 된다.


  무의미성의 영역에 속하는 삶에 대해, 우리가 그 의미가 된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삶의 주인이 된다는 말과 같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삶의 연인이다. 우리는 창조를 통해 삶과 서로 사랑하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정말 잘 태어났다. 살아 있어서 좋다. 또 살고 싶다. 자꾸자꾸 살고 싶다.


  조금 전, 집 앞에서 헤어진 연인이 바로 또 보고 싶듯이, 우리는 바로 또 살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신이 난다. 흥이 돋는다. 늘 생생한 활력이 우리의 몸을 가득 채우며, 우리는 무적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실존상담이 그 결과로서 안내하고자 하는 현실이다.


  목표가 아닌 결과다. 실존상담에 있어 행복은 목표가 아닌 결과다.


  사실성을 살아내고, 허구성을 살려냄으로써, 우리는 창조해갈 따름이다. 창조의 결과가 단지 행복일 따름이다. 우리는 결코 행복을 요청하지 않는다. 행복이 우리를 찾아올 따름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근본적으로 변화된다. 우리의 상상보다 더 근사한 것으로 변화된다. 그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꿈꾸던 우리 자신을 향해 한없이 근사값에 가까워진다. 끝없는 진행형이다. 들뜨는 동사다. 너무나 즐거워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술래잡기와도 같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노래한 아름다운 노시인의 말은 예언이 된다. 확정적인 예언이 되어, 우리를 반드시 그 거룩한 운명 속으로 초대한다.


  이것은 우주적 사건이다.


  실존상담은 바로 이러한 우리 자신이 우주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코즈믹 호러가 아닌 코즈믹 코미디다. 우리와 우주가 마주보며 함께 큰웃음짓는 역사다.


  여타의 접근과 그 스케일을 비교할 수조차 없다.


  이 모든 이야기는 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창조하고자 하는 그 작은 손길에서부터 모든 우주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과감하게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하는 자로서 우리 자신을 다시, 그리고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말이 혹시 불행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또는 행복이 더 증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분명하게 우리는 창조를 통해 우리 자신을 구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창조함으로써, 늘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창조하는 우리는 늘 새로운 존재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뿌리깊은 사실성의 영역에 속한다. 우리가 무엇보다 그 위에 뿌리내리고 신뢰해야 할 사실 중의 사실이다. 실존상담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이처럼, 창조가 다른 모든 것과 고유하게 변별되는 우리의 특성이라고 말하는 가장 핵심적인 접근, 그것이 바로 실존상담이다.







Seri - REBORN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OST)
生きることを教えてくれた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あなたを忘れないよ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
かけがえのない愛の形見に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란 유품에는
さみしさは似合わない
쓸쓸함은 어울리지 않아요
そっと微笑むにじむ夜を 抱きしめ
살짝 미소지으며 번져가는 밤을 끌어안아요
あなたはいつだって
당신은 언제나 
私のそばにいる
내 곁에 있어요
目に見えぬ力で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心を震わせる
마음을 흔들죠
いつかまた きっとまた
언젠가 꼭 다시
めぐり会う時まで
돌고 돌아 다시 만날때까지
少しだけのさよなら
잠시만 안녕
触れることは もう叶わない
이젠 닿을 수는 없지만
でもいつも感じてる
언제나 느끼고 있어요
私たちが生きた証を
우리들이 살아온 증거를
唇に言葉を乗せ
입술에 단어를 실어보내어
あなたのかわりに
당신을 대신해
歌おう 声の限りに
노래할게요 목소리가 다 할때까지
私たちはみんな
우리는 모두
どこから来たのだろう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命の船に乗り
생명의 배에 올라
どこへと行くのだろう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요
あなたから私へと
당신에게서 나에게로
私は誰かへと
나에게서 그 누군가에게로
想いを繋ぐために
마음을 이어 보내기 위해
悲しまないで
슬퍼하지 않고
うなだれないで
무너지지 않고
振り向かないで
뒤돌아 보지 않고
怖がらないで
두려워 하지 않고
とどまらないで
멈춰서지 않고
諦めないで
포기하지 않고
生きて行きたい
살아가고 싶어
あなたのように
당신이 그랬던 것 처럼
あなたはいつの日か
당신은 그 어느날엔가
ふたたびよみがえり
다시 되살아나
永遠のどこかで
영원의 그 어느 자락에서
私を待っている
나를 기다리네
たましいは決して
영혼은 결코
滅びることはない
스러지지 않을거에요
いつかまた きっとまた
언젠가 꼭 다시
めぐり会う時まで
돌고 돌아 다시 만날때까지
少しだけのさよなら
잠시만 안녕
たくさんのありがとう
정말 고마워요
少しだけのさよなら
잠시만 안녕




작가의 이전글 잠들지 못하는 그대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