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용기"
이아립 - 마중 가는 길
밤이 보슬비에 젖는다
그리움이 세상을 적신다
웬일인지 그 소리가 다정해
한참을 서서 가만히 듣는다
가만히 가만히 들어보다
한 방울 두 방울 세어본다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마중 가는 길
앞산에 피어난 꽃들이
봄소식 전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내 방안엔 찬 바람 불어오는
한 겨울만 같아
으스스 한기에 차를 내려
한 모금 두 모금 홀짝이다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마중 가는 길
언제라는 말도
어디라는 말도 없이
마중 가는 길
방의 불을 끄면 결코 잠들 수 없다는 이가 있었습니다.
잠에 빠져들며 그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이 가장 무력해졌을 때, 불이 켜있지 않으면 반드시 어떤 여자의 얼굴이 깜깜한 허공에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원망하는 듯하게 서러운 눈빛을 한 그 여자의 얼굴이 너무나 무서워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상담사는 그건 당신의 마음일 뿐이니까, 결코 당신을 해칠 수 없으니 딱 한 번만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그날 밤 용기를 내어 방의 불을 끄고는 이내 떠오른 여자의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그녀가 누구인지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건 사진으로만 보았던, 자신이 두 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엄마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얼굴은 원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일찍 떠나 옆에 있어줄 수 없었던 것을 미안해하며, 잘 살고 있는지를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긴장을 풀고 가장 무력해지는 시간에, 그를 지켜주기 위해 엄마는 매일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약해져 있을 그 시간에, 그가 엄마를 계속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는 언제라도 그의 요청을 저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필요로 할 때 반드시 그의 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불의의 사고로 떠난 엄마가 마치 자기를 버리고 떠난 것처럼 착각해왔다는 것을 알았고, 동시에 엄마는 자신을 단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그는 영원한 바람이 지켜주는 요람 위에서 가장 포근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매일밤 꿈속에서 무엇인가가 자기를 쫓아온다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도저히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면 바로 사납고 커다란 기운이 자기의 목덜미를 잡아채서 산채로 잡아먹을 것 같아 너무 무섭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달려도 길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 더욱 무섭다고 전했습니다.
상담사는 그건 당신의 마음일 뿐이니까, 결코 당신을 해칠 수 없으니 딱 한 번만 쫓아오는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녀는 그날 밤 꿈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꿈에서 그녀는 또 쫓기고 있었고, 가쁜 숨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절박한 심정만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정말로 용기를 내어 자신을 쫓아오고 있는 것을 돌아보았습니다. 그것을 마주했습니다.
거기에는 그녀의 젖먹이 아이가 있었습니다.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게, 가쁜 숨소리로, 또 절박한 심정으로, 엉금엉금 기어 그녀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너무 빨리 뛰어 잘 보이지도 않는 저 먼 끝에서 아이가 필사적으로 기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중학교 때 이혼을 하고 집을 나간 엄마를 붙잡고 싶었던, 그러나 그렇게 붙잡지 못했던 자신의 심정이 저러했음을 알았습니다.
그 이후 성인이 된 그녀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자신이 아이에 대해 왜 늘 낯설고 서먹함을 느꼈는지, 아이라는 존재가 왜 그리도 부담스러웠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달리던 방향의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이제 아이를 향해 정면으로 더 빠르게 달려나갔습니다.
아이를 꽉 끌어 안고는 꿈에서 깨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울고 있냐고 같이 잠에서 깬 남편이 물었다고 합니다.
아무 말 없이 아이와 남편을 가득 안고서는 울다가 웃다가 하던 그녀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영원한 바람이 안고 있는 그 품속에서 가장 포근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마음이라는 거울을 마주할 용기를 내보는 일이 전부입니다.
마주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됩니다.
거울을 마주하면, 거울 속에서 당신은 반드시 잃어버린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언제인가, 현실이 너무 아파서, 거울세계 속으로 들어간 당신입니다.
고통을 멈추고자 시간을 멈추려 했던 언젠가의 당신이 얼어붙은 거울세계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아파집니다.
거울세계에는 출구가 없습니다.
당신이 거울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당신이 정면으로 거울을 마주하는 그 순간에만, 당신의 시선이 거울세계의 출구가 됩니다.
사방이 막혀있던 거울세계에 바깥으로의 출구가 열립니다.
거울세계의 미아가 되어 있던 언젠가의 당신이 그 출구를 알아봅니다. 그도 그 출구 앞으로 다가옵니다.
거울 앞에서, 당신이 그를 알아보고, 그가 당신을 알아봅니다.
지금의 당신과 언젠가의 당신이 서로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집을 찾았고, 속박된 것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가장 만나고 싶은 것들이 서로를 만났습니다.
마음은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고문의 도구가 아니라, 언젠가의 당신이 지금도 고통 속에 있다는 사실을 비추는 구원의 열쇠입니다. 가장 감격스러운 만남의 기회입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마주하는 작은 용기뿐입니다.
마음을 마주하는 일은, 당신 자신을 마중가는 일과도 같습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도 기다려왔던 순간입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점차 빨라지는 발걸음으로 이제 뜀박질을 시작한 그 길 위에서, 지금 당신의 뺨을 따듯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영원한 바람입니다.
당신과 마주해 마침내 당신을 만나는 그 일만이 영원한 바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