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윈드 #12

"당신을 나의 구원자로 삼지 않을 사랑"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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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ka Nakamura - 音楽のある風景(음악이 있는 풍경)




당신이 나에게 빌었던가요, 아니면 내가 당신에게 빌었던가요?


"제발 죽지 않게 해주세요."


우리가 누군가를 구원자로, 곧 하나님으로, 스승으로, 신으로, 히어로로, 마스터로, 만능열쇠공으로 꿈꿀 때 이렇게 빕니다.


그리고 머지 않은 날에 우리는 구원자에게, 곧 하나님에게, 스승에게, 신에게, 히어로에게, 마스터에게, 만능열쇠공에게 반드시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제발 저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반드시 이렇게 꿈꾸게 됩니다.


'내가 깨닫기만 하면, 성공을 얻기만 하면, 충분한 돈을 벌기만 하면, 안정되기만 하면, 내 언어가 자라기만 하면, 너보다 나은 구원자를 찾기만 하면, 너와 똑같이 되기만 하면, 하루 빨리 너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나만의 길을 가겠어. 더는 나를 구속할 수 없어.'


구원자가 찾아오기를 꿈꾸며, 또 다시 구원자로부터 자유롭기를 꿈꿉니다. 거듭되는 꿈속에서만 삽니다.


상대는 우리를 구속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상대를 붙잡고 있었을 뿐입니다.


상대가 우리를 죽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존재라고 믿으며, 죽지 않게 해달라고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언제나 소망하고 있는 최고의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의 정확한 의미는 쉼입니다.


죽음에 대해 만들어낸 무수한 환상들을 다 치우면 거기에는 쉼이라는 가장 정확한 의미만이 남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바람은 쉼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우리 자신이어도 되는 쉼을 원합니다.


그러한 우리가 이렇게 빌고 있었습니다.


"제발 저를 죽지 않게 해주세요."


우리는 정확하게 이처럼 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발 저를 쉬지 못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구원자로 붙잡은 이를 그 시작부터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는 이로 꿈꾸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는 그의 독재와 압제를 원망하며,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를 또 꿈꾸어내었습니다.


자기가 꽉 붙들고 있으면서, 왜 자신을 놓아주지 않냐고, 끝나지 않을 꿈속에서 서럽게 울분을 토합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 스스로가 쉬면 안된다고 믿고 있기에 생겨납니다.


쉬면 낙오하고, 뒤쳐지고, 혼자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쉬지 않고 열심히 뛰어, 성공을 하고, 좋은 사람들과 발걸음을 맞추는 그 일을 우리가 하려는 이유 또한 분명합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여기'에서 죽으면 안되고, '저기'에서 죽고 싶다며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죽고 싶어서 죽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최고의 바람은 언제나 죽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쉬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죽음만을 생각합니다.


죽고 싶어서, 이 모든 일을 합니다.


'죽음'을 '쉼'이라고만 정확하게 바꾸어 쓰면 모든 말이 다 이해가 가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죽고 싶어하는 것이면서, 누군가를 구원자로 만든 뒤 그가 우리를 죽이는 사람이며 우리는 그 앞에서의 순결한 희생자인 것처럼 굽니다. 자기가 꿈꾼 죽음을 자신이 거부하며 상대에게 떠넘기니, 그가 대신 죽을 것 같은 상태가 됩니다. 그는 아주 많이 힘들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을 나의 구원자로 삼지 않을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서 정말로 감동입니다.


우리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일, 그것은 행복입니다.


우리가 가장 소망하는 죽음을 사는 일은 행복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죽음을 사는 일'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쉴 수 있게 합니다. 우리 자신이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죽음을 사는 일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은 당신의 죽음까지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쉼까지 사랑합니다.


나의 구원자가 되지 않고 당신 자신으로 쉴 수 있는 바로 그러한 당신을 사랑합니다.


자유로운 당신을 사랑합니다.


죽음과, 쉼과, 자유는 다 같은 말입니다.


이게 다 같은 말인 줄을 알아서, 붓다는 천재적인 발상을 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이것이라면, 나중이 아니라, 노력한 뒤가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이것을 해버리자.'


그래서 붓다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고, 바로 쉬었으며, 바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진짜 삶을 깨달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영원한 바람이 보리수의 동산을 흐르고 있었고, 그건 영원의 풍경이었습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소망해온 최고의 바람이 즉시 이루어진 순간 그것은 최고인데다가 영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어떤 당신이라도 나의 구원자로 삼지 않겠다는 것은, 자기의 능력으로 스스로 척척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어떤 당신을 사랑해보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구원자로 삼지 않으려는 붓다의 마음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는 그 바람의 노래였습니다.


모든 것은 죽습니다. 쉬고 싶은 모든 것입니다.


쉬고 싶은 모든 것의 쉼을 당신이 허락해주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당신의 쉼을 내가 허락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죽음을, 당신의 쉼을, 그리고 당신의 자유를 보며 미소지을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태어나서 당신을 볼 수 있어서 정말로 감동입니다.


죽음을 사는 일은 가장 사는 일이며, 풍경에 흐르는 영원한 미소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영원한 미소만이 나의 영원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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