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이들아"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는가?
가장 어리석은 마음이란 자기는 그대로이면서 다른 이들을 바꾸려고 하는 마음이다.
화려한 낮의 풍경만을 보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 그는 가마 위에 올라타 그 가마를 떠메도록 사람들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래야만 그는 가마를 타고 계속 해가 떠있는 지역으로만 이동해갈 수 있는 까닭이다.
자기가 보는 특정한 풍경에 사로잡힌 이들만이 늘 똑같은 풍경을 보기 위해 남들을 변화시키는 일에 매진한다.
늘 똑같은 풍경이라 그것이 변화가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처럼 변화를 가장 싫어하는 이들만이 자기가 동일한 상태일 수 있도록 남들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변화를 가장 싫어하는 이들에게서는 언제나 이러한 말이 들려온다.
"외롭다."
자기가 보는 이 근사한 풍경을 나눌 자가 없어 그들은 외롭다고 말한다. 평생을 이렇게 외로울 것이라고도 말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평생을 동일한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생각이었던가?
노예가 짊어진 가마 위에 언제까지고 계속 눌어붙어있을 마음이었던가?
사람들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한다.
여행이란 계속 다른 풍경을 보는 일이다. 근사한 풍경이 인간의 심상을 매번 새롭게 채워가니 외로울 일이 없다. 여행자로 사는 이들은 외롭지 않다.
외로운 것은 인생에서 멈춰버린 저 무리들, 자신이 특별한 경치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만큼 사람들이 자기를 특별한 존재로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존재가 결핍된 이들뿐이다.
존재가 결핍된 이들만이 선한 존재로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영향력을 줄테니, 특별함에 대한 인정으로 자기의 존재를 채워달라는 거래의 형식이다.
일찍이 예수는 존재를 거래대상으로 삼는 무뢰배들의 좌판을 뒤집어 엎은 바가 있다. 가장 저열한 무뢰배들은 언제나 도덕적 선인으로 위장한다. 예수는 그 위선을 전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만이 윤리를 목소리높여 주장한다.
자기의 가마를 메어줄 노예를 불러 찾고 있기에 그 목소리는 크고 성대하다.
그러나 마음이 부자인 이들은 그저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들의 세상을 천국으로 바꿔 살고 있다.
우리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이 권태라고 말하면 옳다. 그렇다면 천국이란 권태가 없는 곳이다. 권태 대신에, 그곳은 각양각색의 변화로만 가득 차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지금 위대한 비밀의 열쇠를 건네고 있다.
자신을 언제나 변화 속에 놓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변화되기를 기꺼이 소망하는 이, 그러한 이는 이미 천국에 있다.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는 곧 천국을 받아들이는 이다.
그러니 천국이 그에게 온다. 그가 있는 곳이 천국으로 변화된다.
그대들이 심히도 우울하여 세상이 그대들을 위해 더욱 친절하고 상냥한 곳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고 부르짖던 소리를 나는 들었다. 광장에서, 우물의 바닥에서, 깊은 숲속 어딘가에서 모여들은 그 소리들은 사방을 가득 메워 천지조차 막힌 통곡의 벽을 쌓았다.
자기 자신만 빼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려고 하던 그 의도만이 그대들의 우울이 울음으로 고이던 유일한 이유다. 스스로 천국의 문을 닫아 걸어 막막한 벽으로 바꾸어버린 좌절이 여기에는 있다.
진실로 그대들에게 이르건대, 마음이 가난한 이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일과 같다.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는 특정한 마음의 풍경밖에는 없다. 그 형상만을 유지하려 하기에 낙타는 척박한 사막 외에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이 부자인 이는 마음속에 많은 풍경이 있다. 낙타가 실지렁이의 형상으로 변화해 유유히 바늘구멍을 빠져나간다.
마음인 부자인 이들아, 천국이 이미 그대들의 것이니, 마음이 부르는 대로 그대들 자신을 변화시켜라. 세상이 곧 천국이 되어, 그대들을 찾아 기뻐하며 다가오리라.
쩌리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