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하고 쉬자는 약속"
오래된 약속들이 있다.
그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았기에 오래된 약속들이다.
이것만 하고 쉬자는 약속은 그대들의 인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결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다.
오지 않을 메시아를 기다리는 일만큼이나 인간을 지치게 만드는 일이 없다.
천국에의 기대가 우울한 지옥을 낳는다.
지옥 속에서 죽어가는 이들은 누구나 가장 아름다운 천국을 품고 죽는다. 천국의 꿈을 더 극적으로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은 현세를 더욱 지옥으로 만들고자 한다.
자신의 삶을 정말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는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지금 쉬고 이것만 하자."
그들은 일의 조건적 보상으로 쉼을 두지 않고, 쉼을 조건없이 갖는다. 그들이야말로 이 우울한 시대의 현인들이다. 새로운 시대의 동방박사들이다.
그대들에게 나는 또 하나의 비밀을 전하고자 한다.
모든 일은 쉬기 위해 하는 것이다.
모든 일의 목적은 쉼이다.
돈을 많이 벌고자 격렬히 일하고 있는 이는 어떻게 말하는가? 많이 벌면 그때 쉴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에는 쉼이 목적이다.
그러나 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당한 자격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고 있는 듯하다. 오래 더 많이 일한 피땀의 훈장이 그 자격이 된다고 여기고 있다.
이것은 웃음이 많지 않은 시대에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우스운 소리다. 우리의 귀에 귀한 소재다.
그대들에게 나는 묻는다.
죽음에도 자격이 필요한가?
격렬히 일한 자만 죽음을 허락받을 수 있는가?
쉼을 끝없이 유예하지 않고 지금 쉬어버린 이들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처럼 하염없이 구천을 떠도는 망령이 되는가?
아이티의 부두교신앙에서는 그렇다고 믿는다.
좀비는 주술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비로소 주술에서 풀려나 편안한 쉼을 허락받을 수 있다.
노예제도 속에서는 이처럼 쉼에 특정한 자격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게 된다.
그러나 자격이라면 이미 갖고 있다.
태어났다는 것이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자격이듯이, 태어났다는 것은 또한 언제든 인간이 쉴 수 있는 자격이다.
인간의 고집이 쓸 데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쉼을 위한 양보할 수 없는 의지가 되어야 하리라. 이러할 때 고집은 온전함의 빛을 발휘한다.
인간사에서 가장 멋진 일들은 이 쉼에의 고집을 통해 펼쳐졌다.
붓다는 보리수에 털썩 주저않았고, 예수는 광야에서 열심히 일하면 왕이 되게 해준다는 악마를 꺼지라고 했으며, 자유를 찾던 사람들은 비폭력투쟁이란 이름으로 길바닥에 그냥 드러누워버렸다.
인간이 보다 살 만한 세상은 이처럼 모조리 다 쉼에의 고집을 통해서만 만들어졌다.
쉼은 약속하지 않는다.
지금 바로 한다.
죽음이 우리에게 어떠한 때와 장소를 약속하지 않는 것과 같다.
죽음이 우리의 모든 짧은 앎들을 다 무너뜨리는 권세이듯이, 쉼의 세력이 그러하다.
쉼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켜줄 수 있는 최고의 세력이다.
지금 바로 가능한 힘이다.
우울한 별에는 쉼이 필요하다. 지금 쉬고 별은 그것만인 그의 일을 한다.
모든 생명을 살리는 바로 그 일을.
쉼으로 그대들은 모든 것을 되살릴 수 있다. 이것은 약속이 아니라 사실이다.
쩌리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