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재난의 역병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이 시대의 우울증은 전염병이다.
인류사에서 이 정도로 전염력이 높은 역병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다. 진실로 재난이다.
이것은 무슨 재난이던가?
불의 재난이다.
불은 전염된다. 적극적인 의도를 갖고 서로의 손에서 손으로 전염된다. 가장 전염력이 높은 것은 불이다.
그대들이 우울증을 그 손에 쥐었을 때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아주 뜨거운 불이기 때문이다. 불이 아니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불에 대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숨은 불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숨겨온 불이다.
문명은 불에서 시작되었다. 불을 더 강하게 지필수록 문명은 성대해진다.
그대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문명은 내연기관의 장치다. 이 장치는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게 하기 위해 하나의 원리를 발명해 그것을 사람들에게 계몽하고자 했다.
역사변증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대들은 정반합의 원리에 따라 역사가 발전해간다고 들어왔다. 이것이 속임수였다.
역사변증법은 인간이 계급으로 살아간다고 진리처럼 전제하면서, 계급간의 투쟁은 정당한 것임을 설파한다. 하위계급이 상위계급을 전복시키는 일이야말로 신성한 인간의 임무인 것처럼 말해왔다.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된 약육강식의 구조를 벗어날 수 없지만, 인간은 얼마든지 노력하고 힘을 합침으로써 피라미드 내의 계급을 바꿀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해왔다.
계급제, 그것은 단지 투쟁의 불길을 일으키기 위해 좋은 부싯돌이었다.
하위계급이 상위계급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톱니바퀴의 역동은 오직 다단계사업장만을 배불리고 있었을 뿐이다.
여기서는 언제나 다단계사업장에서 탈출하는 이만이 승자다. 그러나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하였다. 비겁한 배신자라는 오명을, 그 사회적 추방의 선고와도 같은 판결을 감히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변증법은 이처럼 너의 현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네 자신을 가로막는 부당한 상위계급을 타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사람들을 협박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다단계사업장에만, 고래의 배처럼 낡은 문명에만 좋은 것이었을 뿐이다.
투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높은 계급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강요가 사람들에게 끝없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지쳐간다. 흥분하고 싶지 않은 성기를 계속 마찰시켜야 하는 일은 불감증을 낳는다.
더는 불을 피우고 싶지 않은 장작에는 무용함의 낙인이 찍힌다. 더는 싸우고 싶지 않은 인간을 낡은 문명은 무능력자로 심판하고자 한다.
그러니 조금도 하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 해야만 한다.
이것이 우울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역사변증법이라는 연금술의 항아리에 자신과 자신이 싸워야 할 대상을 함께 집어넣어 부글부글 끓인다. 불기운을 가한다. 쫄아들 때까지 끓여진 소재는 다시 한 번 불 속으로 던져져 땔감이 되고, 같은 일은 늘 반복된다.
땔감이 되어갈수록, 추악한 상위계급을 근절시키고 하위계급에게 자유와 평등을 돌려주는 선한 영향력의 일을 하고 있다는 증표로서의 훈장들은 늘어간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것이 땔감에게 주어진 훈장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가 인간임을 잃어온 역사였다.
우리가 인간임을 잃어, 우리는 자신이 견디기 힘들다.
인간인 자신이 인간을 잃어,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혼자인 시간을 그토록 경멸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대들은 집밖으로 나가 군중 속에 합류하고자 한다. 계급제의 톱니바퀴 속으로 들어가, 자발적으로 변증법적 장치의 부품이 되어, 서로 네트워크의 손을 맞잡고 집단주의가 만드는 그 불길 속에 도취되고자 한다.
가득한 열광 속에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자 시도한다.
끊임없이 선한 의도로 무장한 광기의 축제를 벌이며, 누군가는 범세계적 영웅으로 만들고, 다른 누군가는 지상최악의 악마로 만든다. 호산나를 외치며 경배하거나, 화형대에 매달아 돌을 던진다.
낡은 문명이 시키는 일이다.
낡은 문명은 대중을 예찬한다. 대중들이 가장 지혜로운 이들이며, 참으로 깨어있는 존재들이라고 칭송하기에 그 혀가 마르지 않는다.
문명은 뛰어난 선동가다. 보다 쉽게 더 많은 땔감들을 만들어내는 일은 문명의 자랑이다.
심리재난은 이미 그 내장이 썩을 대로 썩어버린 낡은 문명이 트림과 함께 뱉어내는 독기의 숨결이 만들어낸 것이다.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망각하고자 하는 거대한 노룡이 내뿜는 유독한 불길이 사방천지를 불타오르게 한다.
그대들이, 아마도 이것은 숙명이리라, 협곡을 건너고 사막을 횡단하여 이제 그 거체 앞에 서있다.
그러한 그대들은 대체 이 역병과 무슨 수로 싸워야 할 것인가?
나는 그대들에게 당연한 사실을 전한다.
높이 치솟은 불과 싸우는 이들이여, 물에 깊이 잠기라.
성수로 그대들을 무장하라.
그대들의 눈물로 그대들 자신을 지키라.
그대들의 눈물이 모든 것을 거룩한 가호로 뒤덮게 하라.
낡은 문명이여, 대홍수 속에 잠기라. 오만과 아집의 어리석은 흔적으로만 퇴적될지라.
그대들은 거룡과 싸우되 싸우지 않는다. 거룡을 불태울 더 커다란 불길을 서로 나눠 갖지 않는다. 용을 제압한 뒤 새로운 계급의 공정한 왕의 출현을 알리지 않는다. 연금술의 항아리가 잉태한 불의 아이로 더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대들은 인간이다.
계급이 아니고, 땔감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인간임을 알았을 때 눈물이 난다.
자신이 인간이었던 그 의미가 피어난다.
용 앞에 선 그대들은 용사다.
낡은 문명의 모든 것이 다 그대들을 부정함에도, 그 숨막히는 독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인간임을 알고자 하는 용기를 낸 참된 용사들이다.
용사는 계급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 더 좋은 자신이 되기 위해 톱니바퀴를 돌리지 않는다. 선한 의도를 지피는 횃불로 타인을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 동방의 현인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깨달음의 안에는 눈물이 있다."
용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울 수 있는 그 용기를 갖는다.
자신이 인간임을 인정할 수 있는 그 용기를 갖는다.
인간 안에 눈물이 있어, 그는 인간이다.
울지 못해 우리는 인간을 잃고 우울증이 된다.
우리가 인간이면 안되고 더 높은 계급과 더 이상적인 자신을 위한 기계장치여야만 한다고 우리의 정신을 어지러이 오염시키는 역병이 창궐할 때, 이 환란의 때를 우리는 심리재난이라고 부르리라.
자신이 인간임을 알아 흐르는 눈물이, 인간이라고 하는 그 의미가, 이 차가운 불의 시대를 눈물의 온기로 전소시켜줄 것이다.
낡은 문명이 눈물 속에 애도되고, 그대들은 새로운 대지에 우뚝 선 새로운 인간으로 월계수관을 그 머리에 쓰게 되리라. 깊은 눈물의 축복으로 인간을 다시 환대한 그대들, 참된 용사들이여.
쩌리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