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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Sep 02. 2019

성숙해지고 싶은 그대에게

"마음에는 내로남불이 없다"



  해바라기의 씨앗이 여름햇살 아래 가득하게 피어난 해바라기가 될 때 그것은 성숙해지는 것이다. 갈매기의 알이 머나먼 수평선을 향해 활공하는 갈매기가 될 때 또한 그것은 성숙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대가 그대 자신으로 살 때 바로 그것이 성숙해지는 것이다.


  성숙함이란 곧 자기답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대여, 성숙해지는 일에는 반드시 자기가 필요하다. 자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가 결핍되어 있는 것이 바로 미성숙함이다.


  결핍은 언제나 집착을 낳는다.


  그대가 만약 자기가 결핍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이제 자기에게만 집착하게 된다. 그렇게 자기 및 그 자기가 연장된 가족, 친구, 동지, 신념, 사상 등의 자기화된 대상물들에게만 집착하게 되는 바로 이것이 내로남불이다. 자기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기라고 생각되는 모든 대상을 고집스럽게 붙잡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만을 우선해서 행위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내로남불은 역설적으로 자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 자기가 결핍된 이가 자기에게 집착하는 것, 바로 이것이 내로남불의 핵심적인 특성이다.


  그래서 내로남불은 실제로는 도덕적인 비난의 영역에 속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기를 잃은 미성숙한 아이의 모습과도 같다. 아이는 자기를 잃어서 아픈 것이지, 자기를 잃어서 잘못한 것이 아니다. 미성숙함은 단지 미성숙함의 고통일 뿐, 죄가 아니다. 고통은 멈춰져야 하는 것이지, 죄책감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를 잃은 아이가 곧잘 갖곤 하는 하나의 착각은, 고통을 멈추기보다는 이 미성숙함의 고통을 더욱 키운다.


  그 착각은 바로, 자기를 잃은 아이의 결핍은 부모를 통해 채워질 수 있다는 착각이다. 이는 마치 엄마 해바라기를 통해 해바라기는 꽃필 수 있으며, 아빠 갈매기를 통해 갈매기는 날 수 있다는 류의 착각이다.


  이러한 착각이 작동한 결과, 이제 자기를 잃은 아이는 좋은 부모와 같은 외적 대상을 찾아 헤매거나, 또는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하는 내적 자기대상화를 이룬다. 그렇게 좋은 부모를 대상화해서 얻으면, 자기의 결핍이 충족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자기라고 하는 것을 특별하게 얻게 해줄 부모의 내로남불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대는 반드시 꿈처럼 깨어진다. 부모와 같은 외적 대상을 추구한 이들은 반드시 배신감을 경험하게 되고, 부모와 같은 내적 자기대상화를 추구한 이들은 반드시 자기소진을 경험하게 된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고통은 이전보다 더 증대한다. 내로남불의 결과는 이처럼 언제나 더 커진 고통일 뿐이다.


  그대여, 고통은 착각이 만들어내며, 착각은 오해가 만들어낸다.


  여기에서의 오해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표층적인 오해로서, 부모가 되는 것이 곧 자기가 되는 것이라는 오해다.


  두 번째는 더 근본적인 오해로서, 마음을 기능이 아닌 실체로 간주하는 오해다.


  이 두 오해를 연결지어보면, 결국 이 내로남불의 고통은, 부모라고 하는 것을 기능이 아닌 실체로 추구함으로써, 그 실체를 통해 자기를 얻으려고 하는 데서 비롯한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오해를 고집하는 한 고통은 지속된다. 오해된 것을 다시 새롭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체라는 것은 항상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늘 있는 것이 실체다. 이 실체를 추구하게 되는 현상이 바로 집착이다. 그리고 이 집착은 마음의 핵심적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생겨난다.


  필요가 마음을 만든다. 필요가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진다. 그래서 마음은 실체가 될 수 없다. 마음은 필요에 응답하기 위한 가변적인 기능이다. 그리고 부모라는 것 또한 실체가 아니라 이 마음의 기능이다. 항시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만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부모를 통해 자기를 얻으려고 하면, 부모라는 기능이 필요없는 상황 속에서는 반드시 자기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에 자기를 잃지 않으려면 끝없이 부모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억지로 만들어야 한다. 부모를 필요로 하는 무력한 아이와 같은 입장이 계속해서 지속되어야 한다. 그 결과, 부모가 요청되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작해내야만 하는 과도한 수고와, 늘 무력해져야만 하는 자기 자신의 비루한 미성숙함만이 남게 된다.


  때문에 자기를 얻어 든든해지기는 커녕, 더욱더 자기가 결여된 불안과 불만족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부모라고 하는 마음의 기능을 실체로 추구함으로써 자기를 성립시킨다는 기획은 애초 성립 불가능한 성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라고 하는 것 자체도 그야말로 철저한 기능인 까닭이다. 불교에서는 이 기능으로서만 존재하는 자기의 개념을 그래서 무아(無我)라고 말한다. 있지만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능으로 잘 작동하는 까닭에 스스로를 든든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해지는 것은 이제 이 자기라고 하는 기능을 어떻게 회복하는가의 그 문제다. 자기라고 하는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자기를 얻는다는 것이고, 자기로 산다는 것이며, 곧 성숙해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여, 그대는 어떻게 성숙해질 수 있는가?


  그 답은 바로 마음이다.


  마음으로 살아야 성숙해진다. 마음으로 살아야 자기로 살게 된다.


  그대는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그대가 산다는 것은 곧 밥으로 산다는 것이다. 마음은 이 밥과 같다. 때문에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다.


  마음을 먹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마음이란 것이 실체가 아닌 기능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그때그때의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작동하는 기능이 바로 마음이다. 이처럼 마음이 기능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 그 기능을 섭식해서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그 환경이 야기하는 필요에 적합한 기능인이 되는 것이다. 곧, 그러한 마음을 그러한 자기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다.


  그대는 마음을 먹는 만큼 자기를 얻게 된다. 마음을 먹어서 그 마음이 자기가 되는 것이다. 매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먹음으로써 그때그때마다 계속 자기를 얻게 된다. 변화되는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자기를 얻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결코 결핍될 수 없게 된다. 마음이 계속해서 새로운 자기를 만들어주는 까닭이다.


  그렇게 어떤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자기라는 것을 갖게 되는 그대에게는 이제 내로남불이 사라진다.


  자기가 결핍되었다고 생각해서 자기에게 집착하게 된 까닭에 생겨난 내로남불은, 이처럼 자기가 찾아진 현실에서는 더는 유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내로남불을 벗어나 마음을 자기로 삼아 사는 그대는 또한, 이제 그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동일하게 응답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은 그 성립부터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 까닭이다. 예를 들자면, 밥을 주고 싶은 마음은 배고픔을 경험하는 임의의 대상에게만 특별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에게 작동하는 것이다.


  그대여, 이것이 그대가 정말로 이해해야 할 핵심이다. 모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마음에는 애초 내로남불이 없다.


  부모라는 마음 또한 그것이 정확하게 마음의 기능으로 받아들여져 작동할 때, 그 기능은 더는 생물학적인 실체로서의 내 자식만을 향하지 않는다. 부모를 실체로 여기기 때문에 자식 또한 실체적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마음의 기능이라는 사실로 회복될 때, 그 기능은 하나의 상황 속에서 부모라는 기능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작동하게 된다.


  이것은 아가페의 정의다. 곧, 사랑의 정의다.


  때문에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대여, 바로 이 내로남불이 아닌 사랑으로 사는 것이 성숙해진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무르익는 일이다.


  그대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많이 먹어야 한다. 마음을 많이 먹어야 한다. 마음을 잘 먹은 그대가 무럭무럭 자라나 사람이 된다. 사람은 이처럼 마음을 먹는 이, 곧 마음으로 사는 이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마음을 잘 먹은 그대는 그만큼 자기를 잘 갖게 되고, 그로 인해 자기에 대한 결핍과 집착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나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사람만이 남는다.


  더는 자기를 고집할 필요도 없이, 자기를 의식할 필요도 없이, 자기를 소유할 필요도 없이, 정말로 자기다운 사람만이 빛난다.


  이것이 깨달아 산다는 것이다. 과거에 붓다나 예수와 같은 종교적 천재들이 제안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같이 귀한, 사람의 길이다.






김목인 - 꿈의 가로수길
그는 밤의 가로수길을 따라 걷고 있었지
그곳이 큰 길의 도로변인 줄도 모른 채
겨우 올라탄 좌석버스 안의 내게 다가와
술 취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지
"원래가 서울이 고향이신지?"
그는 오래전 헤어진 한 사람 얘길 꺼냈지
그녀의 고향이 나의 고향과 같다면서
사실 그곳은 나의 고향과 아무 상관없는데
그의 목소리는 이미 그곳에
그곳에 가면 정말로
그는 그녀가 들려주었던
가로수길 얘길 했지
같이 가보기 전에 헤어진 사람
사실 그곳은 나의 고향과 아무 상관없는데
그의 목소리는 이미 그곳에
그러나 생각해보니
나는 오래전 그 도시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지
커다란 가로수가 양쪽으로 펼쳐진
순간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곳이 나의 고향인 듯 말했지
그곳에 가면 정말로
커다란 가로수들이
길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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