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닫는마음씨 Sep 01. 2019

실존상담이 궁금한 그대에게

"사람의 의미"



  그대여, 실존상담은 사람중심상담이다.


  중심(center)이라는 단어의 핵심적인 의미는 바로 '집중'이다. 집중은 모으는 것이다. 관심을 한 곳으로 수렴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중심이라는 표현은 곧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향해 모든 관심을 모은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관심은 언제나 관심되어지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현상학의 기본적인 원리다. 그리고 관심되어지는 것은 언제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것이다. 이것은 관심의 근본적인 방향성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갖는 사람중심상담은 결코 사람에서 출발할 수 없다. 사람중심상담은 오히려 사람을 향해 가는 것이다.


  때문에 실존상담은 사람이 먼저가 아니다. 또한 사람이 먼저가 아니기에, 실존상담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실존상담은 특정한 가치들을 본질적 진리처럼 미리 결정해놓고, 그 가치들의 구현체로서 묘사되는 사람이라는 거푸집에 그대를 끼워 맞추려는 일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 거푸집의 형상에 잘 맞아 들어가는 그대를 인격적으로 칭찬하지도 않고, 잘 맞아 들어가지 않는 그대를 도덕적으로 비난하지도 않는다.


  가장 단순하게, 실존상담은 거푸집의 일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니, 가장 정확하게, 실존상담은 그 모든 거푸집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대여, 실존상담은 오직 그대에게만 관심이 있다.


  아직도 그 면모가 드러나지 않은 그대, 바로 미지의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다.


  이처럼 실존상담은 오직 미지인 사람을 향하는 것이다. 영원한 신비인 사람을 향하는 것이다.


  사람은 가치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가치가 아니다. 이 우주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다.


  사람은 의미다. 이미 드러난 이 우주의 의미다.


  그대여, 사람을 꿈꾸는 그대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으리라.


  사람을 가치로 놓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사람이 소외된다.


  소외는 환원이다. 환원은 축소되는 것이다. 분리될 수 없는 통째의 전체가 부분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라는 것을 살펴보면, 하나의 가치는 언제나 그것과 분리된 반대항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된다. 즉, 가치는 언제나 분리된 것이며, 곧 부분적인 것이다.


  이처럼 가치는 애초 환원적인 것이다. 때문에 사람을 가치로 추구하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환원된다. 전체의 사람이 아닌 부분으로 소외된다.


  부분이라는 것은 제한의 의미다. 아무리 고귀하고 아름다운 가치라 할지라도, 그러한 가치의 추구 속에서 그대는 고작해야 그 가치만큼의 크기로만 자신의 스케일이 제한된다.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존재인 사람이 이렇게 소외된다. 자유가 폐쇄된다. 존재감이 위축된다. 이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작게 경험하게 되는 그대는 이제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를 주문처럼 암송하는 죄책감의 역사를 시작한다.


  소외의 결과는 언제나 죄책감이다. 자신을 잘못한 자로 영영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잠시 잊은 것뿐이다. 사람을 가치로 추구하다보니, 사람이라는 의미를 잊은 것이다.


  이 사람의 의미를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실존상담이다. 사람을 다시 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실존상담이다.


  때문에 실존상담은 결코 사람이 먼저가 아니다.


  사랑이 먼저다.


  사람은 바로 그 사랑의 결과다.


  여기에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제한된 하나의 원 밖으로 빠져나가 그것보다 더 큰 원을 그리는 운동을 가리킨다. 곧, 사랑은 더 큰 것이 더 작은 것을 포함하는 운동이다. 그럼으로써 축소된 존재감의 소외를 극복하고 다시금 있는 그대로 온전한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이 바로 관심의 궤적이다. 제한된 하나의 기지(the known) 밖으로 빠져나가 그것보다 더 큰 미지(the unknown)를 포섭함으로써 온전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바로 그 궤적이다.


  사랑은 미지를 향한 것이다.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이 매혹시킨다. 더 멋진 자신을 꿈꾸게 한다. 지당하다.


  사랑은 이처럼 아직도 그 전모를 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그대 자신을 향한 것이다. 사람이라고 하는 너무나도 새로운 그대 자신의 가능성이 그대를 매혹시킨다. 그대가 그 온전한 사람이기를 꿈꾸게 한다. 정당하다.


  때문에 실존상담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실존상담은 단지 사랑할 기회고, 사람을 사랑하는 과정이며, 사람이라는 결과다.


  바로 이것이 실존상담의 시작과 끝에 대한 묘사다.


  이른바 실존상담은, 사람을 찾아나선 사랑의 여정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시작되는 곳은 바로 상담자와 내담자의 사이다. 나와 그대 사이다. 마르틴 부버가 묘사하는 '나-그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나'와 '그대'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붙임표(-)다.


  그대여, 언제나 나와 그대 사이에 드러나고 있는 그것, 나와 그대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있는 그것, 바로 그것을 마음이라고 부른다.


  나와 그대 사이에서, 나와 그대를 하나로 연결해주고 있는 마음을, 나와 그대가 함께 알아볼 때, 그때 마음은 이제 작게 위축된 모습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모습이 된다. 수줍게 미소를 띤 채, 나와 그대 사이에 펼쳐진 들판으로 조심스럽게 걸어나온다.


  박수갈채 속에서.


  마음을 향해 쏟아지는 나와 그대의 박수갈채 속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마음에 감동받은 그 하나의 시선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그렇게 감동스러워진 마음은, 그렇게 사랑받은 마음은, 이제 사람이 된다. 사랑이 마음에 내려앉아, 마음은 사람이 된다.


  자신이 사람임을 기억해낸다.


  이 우주가 모든 정성을 다해 빚어낸 가장 고운 것이 바로 사람임을 기억해낸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우주의 절대적인 의미가 바로 사람임을 기억해낸다.


  그대가 바로 그 사람임을 기억해낸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임을 기억해낸다.


  실존상담은 이 사람을 향해 떠나는 영원의 여행길이다.


  그대의 선한 눈동자 속에 담긴 영원의 빛이 더욱 깊게 영글어가는 시간이다.






노영심 - Glad You Told Me
"사랑이 사람에게 말을 거네"






하덕규 - 누구도 외딴 섬이 아니다
그 누구도 외딴 섬이 아니오
저 망망한 바다에 뿌려진 파편들처럼
쓸쓸히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이 아니오
그 누구도 외딴 섬이 아니오
이 막막한 우주에 날리는 티끌들처럼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가는 외로운 섬이 아니오
우리 안에
태고적부터 새겨져 있는 하늘 아버지의 형상
인간이라는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다 말씀하신 생명
우리 안에
먼 옛날부터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그 형상
인간이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말씀하신 소중한 이름
우리 안에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아름다운 그 모습
인간이라는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다 말씀하신 소중한 생명


작가의 이전글 벌새(House of Hummingbird, 20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