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상담자로 살기 #6

"내면의 부엉이 죽이기"

by 깨닫는마음씨




실존상담자는 잘 보는 자가 아니라, 보는 일로부터 자유로운 자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봐서 그것을 알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오는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우리가 그것을 친구로 삼을 수 있게 되어 더 안전해지며, 그 결과 우리가 마음 편히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고 간주합니다.


잘 보면 자유로워진다는 이 믿음은 아주 뿌리깊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것은 자유를 잃어 아주 비루해진 상태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자유라는 것이 고작해야 시력(정신적 시력까지 포함한)에만 달려있게 되는 현실이 생겨납니다.


잘 볼 수 있는 시력을 잃게 된다면 기껏 얻은 것 같은 자유 또한 상실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계속 잘 볼 수 있는 조건만을 지속하고자 노예 중의 노예의 상태가 됩니다.


이를 '앎에 갇힌 상태'라고 말합니다.


마음은 대개 우리에게 '잘 봐서 잘 알아야 할' 소재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마음에 대한 앎에 갇힌 상태'가 되며, 이것을 다시 '마음에 갇힌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마음을 알려고 한다지만, 역으로 마음을 알려고 하기에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볼 수 있는 조건으로 아주 많은 경우 제안되는 방법론은, 마음에 대해 정답을 갖지 않은 채 모르는 상태로 가만히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모름으로써 잘 알려는 방법론'에 대한 집착이 생겨납니다.


이 방법론이 잘 작동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이제는 조건들을 통제하려 하게 됩니다. 자신도 정답을 모르니 상대도 정답을 몰라야 한다는 식으로,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는 자로 활동하기에 유리한 조건들을 계속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밤눈이 밝은 부엉이가 밤의 마법으로 모든 이의 눈을 어둡게 한 뒤에, 자기만 다 보고 아는 자로서의 권위를 얻으려는 일과도 같습니다.


밤숲의 대장놀이입니다.


실제로 이런 것은 최면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최면가는 피최면자에게 이제 깊고 어두운 무의식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면서, 자기를 등불로 의지해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자기의 손을 잡고 잘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최면가는 자기 자신만이 '눈'이 되는 권위를 확보합니다.


이것은 다른 비유로, SM관계에서 피학자에게 안대를 씌워놓고 자기만 잘 따르면 나쁜 일은 없을 것이고 그 삶에 좋은 쾌락만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설치하는 장치와도 같습니다.


세상이 다 깜깜한 밤에 자신만이 유일하게 '친절하고 상냥한 눈'이 된다는 것은 최고의 권위를 얻는 일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가스라이팅입니다.


잘 보는 법에 집착하는 일은 결국 이러한 가스라이팅의 현실을 낳습니다.


자기가 최고여야 한다는 내면의 부엉이가 시키는 일입니다.


"상담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다들 눈을 감으세요."라고 통제조건을 활성화하면서 부엉이는 웃습니다. 컬트교주들이 이러합니다. 자기가 제시하는 통제조건에 따라야 성공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내면의 부엉이에 지배되어 살아가는 이들일수록, 오히려 자신은 통제하지 않으며 모든 마음의 자유를 존중하고 수용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말로 자신이 그런 인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신은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길을 찾아주는 '선한 목자'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밤숲의 왕이 되고자 하는 부엉이일 뿐입니다.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자로 보이고 싶어, 지혜로운 현인들이 가득한 낮에는 숨죽이다가 밤에만 날아오르는 잔꾀의 부엉이에 불과합니다.


이 내면의 부엉이를 죽이는 것은 한낮의 태양입니다.


정직한 빛과 성실한 낮이 부엉이에게는 견디기 힘듭니다.


그래서 실존상담자들은 차라리 비유하자면 장님입니다. 그가 눈이 먼 건 빛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눈이 멀어도 주광성 생물인 그를 빛이 안내합니다. 그가 선한 목자가 아니라, 빛이 선한 목자입니다.


양치기소년만이 선한 목자를 자임합니다.


그리고 양들을 죽이는 것은 늑대가 아니라 양치기소년입니다.


양치기소년은 자기의 안에 있는 부엉이를 수호하기 위해 대신 양들을 죽여 제물로 바칩니다.


한낮의 태양 아래 자연스레 지켜지고 있는 양들을 몰아, 깊고 어두운 무의식의 숲에 놓인 부엉이의 제단으로 데려가는 것이 양치기소년입니다.


늙고 오래된 앎의 신에게, 그 신의 화신인 내면의 부엉이에게 지배받고 있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태양 아래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은 건강에도 좋고, 이 부엉이를 퇴치하는 데도 아주 좋습니다.


알지 못해도, 또는 몰랐다가 정말로 알게 되는 방식으로 알지 못하더라도, 앎에 조건화되지 않고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언제나 한낮의 태양 아래에만 밝혀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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