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상담자로 살기 #10

"적응몬, 생명의 마스터피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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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포켓몬을 논한다면 포켓몬 세계의 창조신인 '아르세우스'를 꼽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직 '적응몬'을 잡아본 적이 없어서 그럽니다.


물론 적응몬은 '잡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누군가의 몬스터볼에 결코 들어가지 않습니다. 트레이닝할 수도 없고, 양육할 수도 없으며, 주종관계를 맺을 수조차 없습니다. 최강의 생명체다운 면모입니다.


피카츄보다 귀엽지는 않을 수 있으나, 한번 그 매력에 빠진 이들은 임종의 마지막 순간에도 적응몬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지을 만큼 그 사랑스러움이 치명적입니다.


이 적응몬에는 '인간'이라는 애칭이 달려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생명의 마스터피스입니다.


지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적응의 능력이 독보적이서어입니다.


생명의 핵심은 생존입니다.


그런데 생존은 물리적이거나 지적인 힘의 문제가 아닙니다. 힘이 강하다고 생존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은 오직 생명이 얼마나 환경과 조화를 잘 이루는가에만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적응력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적응의 천재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인간은 가변적인 신체로 살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근육이 조성되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근육이 필요한 환경에만 근육을 키울 수 있게 만들어져, 그 외의 순간에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가변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인간은 이 지구 어디에서나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오대양 칠대륙 그 어디에도 인간이 살고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거의 분명하게, 바다 깊은 곳에서도, 저 우주 밖에서도, 분명 인간은 생존할 수 있습니다.


문화는 인간이 특정한 환경에 적응하려는 몸짓으로 인해 파생된 결과물입니다. 지구촌의 문화가 다양한 것은 그만큼 인간의 적응력의 스펙트럼이 광대했다는 뜻입니다.


조건들이 다른 각각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인간도 변화무쌍했습니다. 바로 이처럼 환경에 대한 적응의 결과로 인간은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의미입니다.


운명적 조건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인간은 자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계의 장벽을 넘어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유는 생명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자유의 운동을 가장 대변해온 생명 중의 생명입니다. 궁극의 생명입니다.


어쩌면 지구 위에서 살았던 생명체 중에 가장 힘이 강했던 것은 공룡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공룡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했습니다. 아무리 힘이 세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화할 자유'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실증되었습니다.


더욱더 힘을 키워 생존을 보장해야 그 다음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은 전적인 착각입니다.


변화무쌍하게 잘 적응할 수 있는 자유의 역량이 커져야 생존도 더 확실하게 보장됩니다.


생존이 자유의 조건이 아니라, 자유가 생존의 조건인 것입니다.


자유란 오직 변화에 대한 적응적 개방성을 일컬으며, 이러한 자유는 또한 인간의 조건입니다.


가상의 예로, 세계 최고의 힘을 가진 어떤 이가 군대에 가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엄마의 치마품에만 안겨 있으려고 합니다. 우주에서 제일 자유롭고 성숙하며 올바르게 사는 것처럼 온갖 잘난 척은 다 하던 이가 작은 변화 하나는 그토록 거부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그의 실체적 위상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는 다른 포켓몬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적응몬은 아직 아닙니다.


엄마의 품에 안겨서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은 포유류의 유체입니다.


인간은 어미의 품 밖으로 나와 그의 몸으로 환경과 직접 조화를 이룸으로써 인간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70억의 개인들이 스스로 그 자신이 놓인 환경과 마주하여 적응의 역량을 발휘한다면, 생겨나는 문화도 70억 개의 것입니다.


개인마다 '그 자신의 문화'가 창조되는 현실은 인간의 지고한 꿈입니다.


그리스로마 양식이 아니라 우리는 '박춘배 양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샤넬 화인 주얼리가 아니라 '김점례 금반지'를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박춘배 어르신과 김점례 여사를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시선으로 지켜주고 보증해주겠다는 블록체인의 논법으로 성립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폐쇄적 '엄마의 품' 속에서 성립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박춘배 어르신과 김점례 여사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만들어지는 현실도 아닙니다. 진정한 자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각자가 고유한 문화가 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고, 자신의 몸으로 환경과 직접 대화해야 합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이들이 돈과 힘을 무리하게 얻으려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몸 대신에 돈과 힘을 자기 자신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럴수록 환경과의 대화의 가능성은 더욱 멀어집니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조화의 감수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요."가 아니라 "조화요."입니다.


그게 우리가 위대한 적응몬이었음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핵심어입니다.


가끔 우리가 광장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을 걷다보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무엇이 일어나도 다 괜찮다."


아마도 적응몬들이 내는 고유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희소한 순간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소리를 마치 적응몬의 힘이 세니까 어떤 일이 닥쳐와도 다 이겨낼 수 있다거나, 또는 적응몬의 품이 자상하고 넓어서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다거나, 아니면 적응몬의 마음이 여여하기에 무슨 일이든 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로 오해하곤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한번 적응해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용기를 내서 모험을 해보겠다는 바로 그 뜻을 담고 있는 소리입니다.


적응몬이 최강의 생명체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은 다른 생명체보다 힘도 약하고, 가죽도 얇고, 근육도 없는데, 또 비생명체인 AI 같은 것보다 머리도 나쁘고, 수명도 짧고, 밥만 많이 먹는데도, 적응몬이 이 지구에서 가장 귀한 생명체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은 용기를 갖고 있어서입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용기만은 있어서 인간은 생명의 마스터피스입니다.


용기란 언제나 자유를 향해 들끓는 최초의 가슴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최첨병에서 달려가는 그 적응몬의 뒷모습에 우리는 인간이라는 애칭을 붙였고, 또 실존상담자라는 별칭을 붙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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