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리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1

"존재는 수줍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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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수줍다.


그대들이여, 존재는 정말로 수줍음이 많다. 고귀하고 섬세한 실크베일 뒤의 미소와 같다.


무식하게 대해지면 그 즉시 문은 닫힌다. 존재는 숨어버린다.


존재가 숨어버리면 그대들은 우울해진다.


해가 사라진 하늘처럼, 꽃이 피지 않는 봄처럼, 그대들의 품에서 멀어진 연인처럼, 기쁨의 이유였던 그 모든 것은 이제 우울의 모든 이유가 된다.


존재를 무식하게 대하는 이는 자신의 존재를 잃게 된다.


자기 존재의 상실, 이것과 비견될 만한 재앙은 없다. 나는 이 이상의 서러운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대들은 자기 자신을 잃은 자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그것은 죽음보다도 끔찍하다. 완전한 무(無)이면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오직 그 무를 보전하기 위해 힘쓰는 일뿐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해 아무 것도 아닌 삶을 보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 죽음으로써 비극이 되고자 한다. 비극으로 남는 일이, 비극조차 되지 못하는 완전한 무보다는 낫다고 그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 가까스로 죽음의 유혹을 견뎌낸 이들은, 언어라는 조악한 돌도끼를 그 손에 쥔다. 그리고는 자기라고 하는 흉상을 조각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자신의 존재 대신에 그 돌로 만든 흉상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는 그것을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아마도 이들이 가장 큰 상실감 속에 놓여 있으리라, 사실 돌로 된 가면은 그저 가면일 뿐이고, 가면 안에 있는 것이 진정한 자신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자신은 이 모든 것을 다 바라보며 상황에 맞게 다양한 돌가면을 만들어내는 창조자라고 부르짖는다.


이러한 이들은,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면을 만들었으면서 가면을 만든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말함으로써, 인과관계의 선후를 뒤집으려고 기만한다. 이처럼 비틀린 거짓의 이야기 속에 가짜의 자신을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 이들은 가장 마지막까지도 존재를 무식하게 대하고자 한다.


존재를 가장 무식하게 대하는 법, 그것은 존재를 이야기에 부속시키는 것이다.


가장 고결한 숲의 여인을 떠올려보라. 그녀에게 도금된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채운 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아름다움이다!"라고 말하는 일은 성녀에 대한 거칠기 짝이 없는 모독의 행위다.


존재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이야기 위에서 존재하고 있지도 않다.


이야기가 없는 것, 그것이 존재다.


가면이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가면이라는 이야기를 쓴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존재는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이야기를 쓰는(put on) 배우가 아니고, 이야기를 쓰는(write) 작가가 아니며, 이야기를 쓰는(use) 관객이 아니다.


이야기의 요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그것이 존재다.


"오, 그대는 나의 헬레네요. 내 모든 것을 다 바칠 그대가 바로 나의 황금사과일지어니!"


존재는 숨어버린다.


"형제들이여, 파트로클로스의 주검 앞에 나는 맹세하리니. 적들의 피가 그의 아래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 그의 무고한 죽음을 나는 변호하리다. 정의와 순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우리의 맹우를 위해 싸워 기필코 승리하리라!"


존재는 숨어버린다.


"만물을 환히 비추는 아폴론의 시선으로 나는 깨달아 이제 지고의 선함으로 모든 것의 온전함을 밝혀주리니."


존재는 숨어버린다.


양피지가 썩어가는 냄새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존재에게 있어 '존재가 아닌 것'이 아니라 '존재인 척하는 것'이다.


기만이야말로 가장 거칠고 투박한 것이니, 존재는 자신을 가장 함부로 대하는 기만을 경멸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이 말만은 꼭 전하고자 한다. 오늘이 별도 저문 마지막 밤일지라도 내일의 인간은 이 말과 함께 새로운 태양을 맞으리라.


존재를 기만하는 자리에 그대들 자신의 존재는 함께 서지 않는다.


존재는 수줍기에 단호하다.


칼집에서 꺼낸 칼은 그 예리한 빛과 함께 언제나 수줍다.


존재의 단호함은 군더더기를 베어낸다.


존재는 존재 자체를 제외하고는 다 잘라낸 자리에서 존재 자체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대들이 그대들 자신이기 위해 어떠한 군더더기도 필요하지 않다.


권위도, 명예도, 부도, 그리고 그것들을 향한 미소와 절규로 이루어진 수많은 이야기들도, 그대들이 그대들 자신이게 할 수 없으며, 또 그대들이 그대들 자신이지 않게도 할 수 없다.


그 어떤 이야기도 그대들의 존재를 침해할 수 없다.


그대들은 단호하게 그대들 자신이다.


이 존재의 번쩍이는 칼날을 그대들은 가히 꺼내들겠는가?


그러면 누구도 그대들을 더는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존재가 수줍은 것은 스스로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서다.


숨었으나, 숨음으로써 우울의 어둠 속에 잠식되지 않을 더 빛나는 칼날의 광채로 드러나기 위해서다.


존재는 이렇게 그대들의 고결함을 지키고 있는 수호자다.


쩌리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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