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상담자로 살기 #26

"요즘 잠들 잘 못주무신다고요?"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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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메타버스, AI, 코인, 인싸, MBTI, 디즈니, 온라인게임, 양육, 내면아이, 가스라이팅, 네트워크마케팅,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적인 핵심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관계'입니다.


오늘날 성공의 황금공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가정됩니다.


"성공은 관계에 달려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심리상담의 이론에서 이 관계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아시겠습니까?


"관계는 심리적 고통의 핵심적인 이유다."


심리상담은 관계를 '잘 하는' 기술이 결코 아닙니다.


그 반대로, 심리상담은 관계로부터 오는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분야입니다.


이처럼 심리상담의 입장에서 관계는 복지재가 아니라 고통재입니다. 필요악과 같은 것입니다. 그 필요악이 거악이 되지 않도록 관계에 대한 환상을 해체함으로써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 심리상담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공공식은 관계를 거악이기는 커녕 오히려 전능한 신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관계는 GOAT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관계라고 하는 신이 주관하는 영토는 전방위적입니다. 어디에 가나 우리는 관계의 문제에 봉착하는 듯 싶습니다.


이것은 실증적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간에 가상의 카메라가 우리를 비추고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늘 SNS를 하듯 생활합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 상시 SNS모드는 지속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수면장애를 호소하게 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왜 깊은 잠에 들지 못할까요? 잠이 들었다가도 2시간 간격으로 왜 깨어나는 일을 반복하게 될까요? 자고 일어나서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 늘 몸이 피곤한 것은 왜일까요?


우리가 전쟁터에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우리의 잠자리는 세이브포인트와 같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안전할 수 있는 시공간이 우리의 잠자리입니다.


그러나 더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이브포인트에도 이미 관계의 카메라가 침투해왔습니다. 우리는 안전하지 못합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그 시공간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한 것이 없나 자기점검을 하며 눈치를 봐야 합니다.


흡사 참호 속에 있는 병사의 상태와도 같습니다.


관계는 진실로 전쟁터입니다.


각자는 다 좋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관계만 맺어지면 우리는 싸웁니다. 상대를 뜻대로 조종하지 못해 안달을 냅니다. 관계는 분명하게 통제와 지배의 논리가 관장하는 곳입니다.


수면장애도 이 통제와 지배의 논리 때문에 생겨납니다.


흔히 수면장애는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져 발생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자율신경은 일종의 전투모드를 촉진하는 교감신경과, 이완된 휴식모드를 주관하는 부교감신경의 상호억제적 원리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쉬어야 할 때도 계속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있으면 우리는 각성상태에 들어서게 됩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폐가 가쁘게 호흡하며 우리를 긴장 상태로 계속 깨어있게 만듭니다. 이럴 때는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습니다.


잠은 오지 않고 할 일은 없으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우리는 야식을 먹게도 됩니다. 그러면 실제적인 에너지가 공급되었으니 이제 각성상태는 더욱 지속됩니다. 참호 안에서 칼로리바를 먹고 있는 병사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나날이 이러한 전쟁터의 운명을 살고 있어서 잠 못이루는 밤의 불편함은 호소됩니다.


정말로 자신이 위치한 생존의 현실이 각박하기 때문에 잠들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켜보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한 착각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정말로 먹고 사는 생존의 현실은 거의 경험되지 않습니다. 한국사회만 하더라도 이러한 부분에서의 복지는 아주 잘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진짜 생존의 위협이 아니라 가짜 생존의 위협입니다.


뇌가 만든 가상의 전쟁터에서 경험되는 가상의 현실입니다.


메타버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뇌가 만든 메타버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뇌는 모든 것에 관계의 논리를 적용해 가상의 전쟁터를 만들어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라고 그 전쟁터에 있어야 하는 이유 또한 정당화합니다.


관계란 곧 심리적 문제를 의미하며, 문제는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해 기능할 때 뇌는 가장 활성화되어 자기확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보상으로 도파민의 쾌락은 찾아듭니다.


이처럼 도파민에 절여진 뇌가 끝없이 전쟁터의 가상현실을 비추어내고, 몸의 기관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전쟁이 일어났어. 위기가 생겨났다. 더 빨리 뛰고, 더 빨리 운동하도록 해."


그러면 심장과 폐는 영문도 모른 채로 뇌가 그렇게 지시하니 열심히 뛰기 시작합니다. 생존을 위해 뇌가 내리는 절박한 명령인 줄 알고 성실하게 자기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조금 미친 뇌와, 성실한 봉사자들의 합작으로 인해 우리의 수면장애는 생겨나는 것입니다.


쾌락을 쥐어짜내기 위해 모든 것을 관계의 문법으로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뇌의 작동방식이 주요한 원인입니다.


관계라는 것 자체가 애초 가상현실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가상현실을 진짜 현실로 착각하는 뇌의 오류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오류로부터 우리가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존하는 몸의 자각입니다.


이 몸이 사실적으로 질량을 갖고 자리잡고 있는 현 상태에 대한 확인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이곳은 전쟁터가 아니라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 속입니다.


추운 것은 한겨울의 참호 속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스비 몇천 원을 아끼려고 보일러 온도를 낮게 설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이불 한 장을 더 꺼내 덮으면 금방 따듯해집니다. 따듯한 물을 한 잔 마시면 더 좋습니다. 그렇게 잠시 누워있다보면 몸이 알아서 지각합니다. 이곳이 전쟁터가 아님을.


이곳은 살기 좋은 쾌적한 방입니다.


거의 낙원입니다.


안전하고 아늑한 자신만의 공간입니다.


흡혈귀 같은 관계 따위가 침입할 수 없는 가장 거룩한 성소입니다.


실존철학이 죽음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가장 생생한 것으로 회복하려는 철학이라고 할 때, 이것은 분명 잠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죽음, 잠, 쉼은 같은 것입니다.


편히 잠드는 일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이 권리가 실현되어야, 깨어있는 우리의 낮도 웅대해집니다. 삶을 자신의 당연한 권리로 힘차게 실현할 수 있습니다.


아늑한 잠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현상입니다. 깊게 잠들 수 있는 밤이 인간을 인간으로 숙성시킵니다.


관계는 우리를 '잠들 수 없는 자' 곧 '죽을 수 없는 자'인 언데드로 만듭니다. 죽을 수 없다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죽을 수 없으니 살 수도 없게 됩니다.


이처럼 관계의 가상현실이 지배할 때 우리가 뺏기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입니다.


살아있지도 않은데 대체 성공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니, 그런 것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도 의문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덜 자고 더 많이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자야 합니다.


우리는 꿈속에 묻혀 우리 자신을 잃었는데, 오늘날에는 멀쩡히 눈을 뜨고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꿈속에 있으면서 자기를 깨어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에, 꿈을 깨는 일은 오히려 깊은 잠을 통해 가능합니다.


깊은 잠속에는 꿈이 없습니다.


아무 일 없이 건강한 우리 자신만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건강한 우리 자신의 존재를 사실적으로 되찾습니다.


실존은 깊게 잠드는 일이며, 실존상담자는 잠꾸러기입니다. 그는 잠을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자기가 계속해서 눈을 뜨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아도 지구가 자전할 것을 신뢰하며 잠에 빠져듭니다.


그것은 곧 존재에 대한 신뢰입니다.


잠을 많이 잘수록, 이 신뢰가 우리에게 증진됩니다.


이것은 실은 자존감을 높이는 비결 중의 비결입니다.


관계로부터 빠져나와 홀로 편히 잠드는 일은 당신의 미용뿐 아니라 마음에 엄청 좋습니다.


당신의 진짜 성공은 바로 이 깊은 잠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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