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게임, 영화, 소설, 만화 등의 콘텐츠를 통해 우리는 다른 인생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현재의 자신은 불가피한 제약들 때문에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인생을 통해 다른 것들을 해봄으로써 결국 우리는 자유를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자유로워져서 원래의 자신을 잃어선 안된다. 그러면 안정의 지속성이 깨진다. 잠깐 다른 인생을 경험해본 뒤에는 바로 원래의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때문에 이것은 사실 다른 인생에 대한 경험이 아니다. 다른 정체성의 경험이다.
가면을 바꿔쓰는 놀이다.
쓸 수 있는 가면의 수가 많아지는 만큼, 또 더 많은 가면을 써본 경험치가 누적되는 만큼, 우리는 자신의 자유가 증대된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이 가면놀이의 끝에는 언제나 권태가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고 다 해본 것 같아, 모든 것이 뻔하게 생각되는 때가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지루하지 않고 항구적인 만족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진정한 정신적 가치를 찾아 명상, 영성, 깨달음 등에 관심을 보이게도 된다.
자신이 그동안 표면적인 가면만 소비하면서 너무 애쓰고 살았다며, 이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일, 쉼과 고요함의 가치, 여여한 태도 등을 즐기기 시작한다.
과거에 했던 가면놀이를 돌아보면 참 철이 없었고 어렸으며, 그땐 왜 그리도 늘 무언가에 쫓기듯이 머리만 복잡하고 분주했던가를 여유로운 미소로 떠올리고는 한층 성숙해진 자신의 모습에 뿌듯해한다.
이것도 금방 질릴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남들을 가르치며 스승질을 하는 것 외에는 인생의 낙이 없다.
마음은 정체성이라는 집의 어느 방구석에서 질식했다. 가면살인사건이다.
다른 정체성이 되기를 꿈꾸는 동시에 현재의 정체성은 유지하기를 꿈꾸며 정체성의 널뛰기를 하고 있는 한, 이 일은 늘 일어난다.
정체성이라는 넓고 얕은 것들을 향하고 있는 한, 이 일은 늘 반복된다.
깊은 것은 나다.
나는 언제나 나를 향한 나다.
이것만이 깊고 끝없다.
이 세상은 가장 깊은 이것, 나만을 배우러 온 것이다.
내가 무한한 것은 나를 향한 배움이 무한해서다.
양적인 것들은 아무리 넓게 그 양을 더해도 언제나 유한하다.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공허하다. 이 공허함은 매우 자주 공부를 다 마친 사람의 여여함처럼 착각되곤 한다.
그러나 리차드 바크는 『환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살아있다면 시험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정체성은 사실 이 시험을 치르지 않기 위해 붙잡는 것이다. 시험을 보고 싶지 않아 우리는 집에 틀어박혀 게임을 한다. 가면 뒤에서 숨을 죽인다. 그러다가 키득거리며 웃곤 한다.
인생이 가면 뒤에 숨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가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시간만 속절없이 보낸 어느 날 가면을 벗고 거울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이미 인생이 우리를 한참 전에 붙잡았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있는 한 우리가 치러야 할 시험은 정말로 인생을 살아야 할 그 시험이다.
정말로 인생을 산다는 것은, 정말로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시간이 만드는 변화는 우리가 늘 거울에 비친 다른 인생 앞에 서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시간에 따라 드러나는 우리 자신의 다른 인생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우리는 정체성들을 만들어내 가면의 집안에 틀어박힌다. 가면의 고정된 표정처럼 시간이 멈추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에 관해 배우지 못한다.
나를 배우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박춘자는 평생 박춘자를 통해 나를 배운다.
15세의 박춘자는 15세의 박춘자를 통해 나를 배운다.
36세의 박춘자는 36세의 박춘자를 통해 나를 배운다.
58세의 박춘자는 58세의 박춘자를 통해 나를 배운다.
1분 1초에서도, 배우는 박춘자는 박춘자로 드러난 나의 뜻을 배운다.
그 뜻이 한정없이 깊고 아름다워 공부가 끝이 없다.
시간과 같이 제약없이 흐르는 것들로부터만 우리는 배울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공부들은 눈물로 배운다.
다른 인생을 통해 나를 잘 배운 시간은 반드시 눈물이 된다.
그것은 중간고사에 합격했음을 알리는 우리 인생의 성적표다.
"지금껏 그 인생 통째로 잘했어요."
그런 도장이 찍혀 있다.
나의 뜻이 그러하다.
75세의 박춘자 할머님이 또 집을 나간 이유다.
배움이 깊어져 눈물이 흘러넘치면 샘물이 되어 바다로 나가는 그 뜻을 막을 자가 없다.
마음이 나를 향해 또 집을 나간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