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마음 #2

"집이 되고 싶었던 거짓말"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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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통째로 다 거짓말이다.


픽션뿐만이 아니라 논픽션의 장르도 똑같이 다 거짓말이다.


이 글도 당연히 거짓말이다.


사실은 만남 속에만 있다. 아니 만남 자체만이 사실이다.


우리가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 건 또 만나고 싶어서였다. 만날 자격이 없는 것 같지만, 그리고 이제는 어쩌면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또 보고 싶어서였다.


또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녀가 건강해야 한다. 아픈 데 없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고,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는 아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의 유일한 가치는 마음을 담고 있을 때다.


아니, 모든 말의 유일한 가치는 그 말이 마음을 담고 있을 때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하던 하이데거의 거짓말은 유효하다.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잠깐 머무를 수 있는 거처가 되어주었던 거짓말, 그것은 아름다운 거짓말이다. 문학이라고 불린다.


문학은 집이 되고 싶었던 거짓말이다.


이외수 선생님은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젊은이들은 푸시킨의 시에 의지해 삶이 자신들을 속인다고 생각되는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나간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그들은 이 시의 참된 아름다움을 다시 알게 된다. 자신들이 삶을 속이고 있었기에 늘 슬프고 화가 났던 그 시간들을 이 시가 얼마나 부드러운 홑이불처럼 감싸주고 있었는지를 그때서야 이해하게 된다."


인간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문학을 한다.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두렵거나 버거워, 사실로부터 도망치거나 사실과 싸우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거짓말은 만들어진다.


이 우주에서 가장 사려깊은 사실의 친절함을 아직 모르는 이들을 위해, 거짓말은 사실의 친절함을 아주 살짝 빌려와 그들이 잠시 묵을 수 있는 침소를 제공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의 경우뿐이다.


거짓말이 사실보다 위대하다고 하는 주장이나, 어떤 거짓말을 사실인 것처럼 하는 주장만이 문제를 낳는다.


인간사의 거의 모든 갈등은 이 두 가지의 경우 때문에 생겨난다.


이런 것들은 마음이 담기지 않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이다.


이러한 거짓말이 축조하는 것은 집이 아니라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다.


삶에서 나가게 만드는 거짓말이다.


반대로 마음을 담은 거짓말은 삶으로 나가게 만든다.


강제수용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귀도의 아들은 언젠가 훗날 거짓말 속에 담고자 했던 귀도의 마음을 만날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 새처럼 마음은 거짓말의 껍질을 깨고 나와 귀도의 아들과 직접 눈을 맞출 것이다. 그것은 귀도의 눈빛이고, 귀도를 이해한 조슈아의 눈빛이다.


마음의 시선이며, 시선의 마음이다.


만남이라고 부른다.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사실인 것이다.


이처럼 마음을 담은 거짓말은 반드시 깨어질 운명을 갖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깨어져야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이야기의 유일한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책 밖으로, 영화관 밖으로, 모니터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임시의 거처였던 거짓말의 집에서 마음이 나가게 하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깨어지라고 집필된다.


모든 거짓말은 깨어지라고 발화된다.


반면 마음이 담기지 않은 거짓말은 절대로 깨어지지 않기 위해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해간다. 이야기에 이야기를 더 많이 통합해 만들어진 것을 거대담론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통째로 다 거짓말이다. 깨어지지 않으려고 하도 고집을 부리다보니 결국 해체주의라는 방편까지 나오게 되었다.


고집을 부리는 거짓말쟁이들은 거짓말을 해체하려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곤 한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잔혹한 말을 할 수가 있죠? 사실이라는 것이 그렇게 잔혹한 것이라면 저는 차라리 작고 약한 아이들을 위해 상냥한 거짓말쟁이가 되겠어욧!"


이것 또한 통째로 거짓말이다.


아이들을 팔아 이루려는 자기보신의 행위일 뿐이다.


해체는 아이들의 산타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산타에게 선물을 요구할 당당한 너의 권리를 행사하라는 거짓세계관을 사실인 것처럼 선동하는 의도에 대해 이루어지는 일이다.


모든 사람을 잠정적인 아이처럼 대하며, 자기가 아이들의 히어로가 되려고 하는 소영웅주의가 언제나 이러한 의도를 낳는다. 이것을 자아중심주의라고도 말한다.


아이들에게서 실제로 산타를 빼앗는 이들은, 거짓말을 해체하려는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 거짓말쟁이들이다. 이들은 산타 대신에 자기만을 산타로 보라고 아이들을 가스라이팅한다. 자기가 선량한 의도로 행위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 일을 한다.


거짓말의 집에서 계속 살다보니, 그 자신이 거짓말과 동화된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 또한 마음이 집을 나가도록 돕는 일에 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존재의 집에서 나가게 한 뒤, 자기가 만든 거짓말의 집에 입주하게 하는 것이 그 실체적 행위다.


강제수용소에서 나가게 된 귀도의 아들이 이내 토니 스타크가 만든 바다 속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귀도의 마음은 어떠할까?


귀도의 마음을 이해한 이들은 결국 해체의 망치를 손에 들 수밖에 없게 된다.


거짓말을 깨기 위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음을 담아.


이 마음은 반드시 거짓말의 집을 나가게 될 마음이다.


마음이 나가서, 아픈 데 없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늘 건강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반드시 깨어질 집이 되고 싶었던 거짓말이다.


이 글은.


그렇게 또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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