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마음 #5

"나쁜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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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상담자는 내담자를 친구로 삼으려는 상담자다.


나쁜 엄마는 자식을 친구로 삼으려는 엄마다.


나쁜 신은 인간을 친구로 삼으려는 신이다.


이들은 모두 나쁜 친구들이다.


나쁜 친구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상대에게 친절하고 유용한 존재가 되면 다들 내 친구가 되어주겠지.'


이들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신을 도구로 전락시킨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쁜 친구가 된다. 자기를 도구화하는 이는 상대 또한 반드시 도구화하게 되는 까닭이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친구로 삼으려는 일은 내담자 착취이고, 엄마가 자식을 친구로 삼으려는 일은 자식 착취이며, 신이 인간을 친구로 삼으려는 일은 인간 착취다.


상대를 도구로 착취하는 이들은 분명 외로움이 짙다.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크다.


어떤 엄마는 말동무 인형을 만들듯이 자식을 친구로 삼는다. 자신이 제일 좋은 엄마가 되어주려고 한다면서, 그 대가로 자식에게 변하지 않을 사랑을 기대한다.


항구적으로 변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이 독재다.


이 외로운 엄마의 독재 속에서 말동무 인형으로 자라난 피노키오도 외로움이 짙어진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피노키오도 자신의 엄마와 똑같은 독재자가 된다.


최고의 상담서비스, 최고의 법률서비스, 최고의 요리서비스, 최고의 집사서비스, 최고의 복지서비스 등을 헌신적으로 제공하는 대신에, 그 대상자에게 변치않을 사랑을 기대한다.


엄마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친구의 사랑을 얻게 되어 외로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돌아오는 것은 배신감이다. 독재는 언제나 배신감으로 끝난다.


"배은망덕한 자식, 내가 얼마나 자기를 위해 살았는지도 모르고."


언젠가 엄마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이제는 자신이 상대에게 하게 된다.


그때서야 엄마 말씀이 다 맞았다고 이들은 성찰놀이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엄마의 신성한 말씀은 이러하다.


"너 친구 골라 사귀어야 해. 세상에 가정교육 못받고 덜 떨어진 애들 천지야. 너는 똑똑하고 잘났으니까, 나쁜 친구들을 사귀면 안돼."


엄마 말씀대로, 나쁜 친구에게 헌신한 결과 자신이 지금 이 지독한 배신감을 경험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독재자는 외롭다.


외로워서 친구를 만들려고 하면 배신당하고, 혼자 있자니 너무 외롭다.


세상에 왜 이리도 나쁜 친구들이 많아서 자기가 이 고통을 경험하는지 무척이나 속상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나쁜 친구들이 많은 것이 아니다.


피노키오만이 지금 이 세상의 유일한 나쁜 친구다.


피노키오는 많이 서툴다.


친구를 사귀는 일에 서툴고, 무엇보다 외로움을 스스로 경험하는 일에 많이 서툴다.


피노키오가 서툴게 된 것은 단순한 역설이다.


자기가 제일 잘난 것처럼 살고 있어서, 그는 서툴게 된 것이다.


자기가 제일 잘난 것처럼 살고 있는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없다. 그를 이용하거나, 그가 이용할 대상들뿐이다.


그러니 피노키오는 친구라고 하는 것을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본 적도 없는 것과 친해지는 일이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친구만큼이나 피노키오는 외로움 또한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다.


외로움은 무조건 나쁜 친구라고만 간주되어,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야만 하는 소재였을 뿐이다.


'나쁜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말라는 엄마의 말씀에 충실했던 결과 피노키오는 친구 앞에, 또 외로움 앞에 무력해진 것이다.


여기에는 '내가 잘나서 유능한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있어야 친구가 생길 수 있어.'라는 뿌리깊은 저주가 작동한다.


남들을 다 이기고 올라가 제일 잘나고는 싶으면서, 동시에 그 산정상 위에 혼자 있는 것은 싫기에 친구들이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모순적 소망이 바로 그 저주의 정체다.


이 모순적 소망을 스스로에게 저주로 걸고 있는 이들은 늘 모순적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가 모순을 통합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결국 엄마와 같은 권위를 갖는 법이다.


이것은 상대보다 높은 위상을 점하면서도, 상대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상대가 자기 주변에 붙어있게 만드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마법과 같은 것이다.


물론 살펴보았듯이, 이 마법의 결과는 언제나 배신감이다.


마법을 쓰면 원래 동일한 결과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나쁜 친구랑 놀지 마라."라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와, 자기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나쁜 친구가 된다.


자신이 언제나 돌아오게 되는 '나쁜 친구의 집'에는 그렇게 외로움만이 남겨진다.


그러나 친구를 향해 집을 나가는 마음도 있었다.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아마드는 자기의 것인 양 갖고 오게 된 친구의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로 향한다.


나의 것은 나의 것, 남의 것은 남의 것, 이 경계가 분명할 때 누구도 도구가 되지 않는다. 경계가 분명해야 친교가 가능하다.


도구를 벗어난 이는 홀로 낯선 땅을 모험할 수 있다.


도구가 아니라 그의 맨몸을 통해 세계와 친교하며, 세계를 사랑으로 체험해나간다.


그러한 모험가를 지켜주는 것은, 모험가의 가슴에 담긴 친구의 얼굴이다.


그는 결코 친구를 만나지는 못할 운명이다.


모험의 시작부터 친구는 그 가슴속에서 이미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가득한 좋은 친구 사이다.


어떤 이는 집을 나와 좋은 친구로 모험을 떠난다. 이것은 외로운 마음이며, 원래의 이름은 '모험의 마음'이다.


또 어떤 이는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나쁜 친구가 되어 모든 것을 '나쁜 친구의 집'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외로운 마음에 서툴러서 상대를 지배하고자 만들어진 '독재의 마음'이다.


외로운 마음으로 사는 이는 집을 나가 사랑의 모험을 한다.


외로운 마음에서 나가려는 이는 상담소와 가정과 낙원이라는 집을 만들어 배신감으로 귀결될 독재를 한다.


나쁜 친구의 집은 이 사랑에 많이 서툰 이들의 외로움 위에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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