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의 시대에 현대인은 깨달음을 소망한다"
오늘날의 키워드는 '체험'이다.
이것은 "나도 할 수 있다!"의 증진이다. 과거에는 특권계급에게만 가능하고 보편적인 다수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더 많은 이가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요리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기타를 칠 수 있으며, 누구나 왕으로 설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원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타고 태어난 자신의 조건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꿈꾸는 다양한 정체성들을 자신 역시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의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될 자유'의 증진이기도 하다.
자유를 경험할수록, 살아있다는 실감, 곧 '주인공감' 또한 증진된다.
이에 따라 더 많은 정체성을 가용해 더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출현했다. 이것은 분명 오늘날의 지배적인 소망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체험의 소재란 곧 이야기가 되어 있다.
체험이라는 것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체험하는 것이구나, 라고 우리는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조금 헷갈리기 시작했다.
인류가 발견해낸 사실적인 자유의 영토는 이야기라고 하는 철조망에 둘러싸인 사육장으로 바뀌고야 말았다. 아무리 넓은 들판에 방목되어 있는 것 같더라도, 방목 또한 엄연한 사육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체험하던 그 소재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는. 바.로. 마.음.을. 체.험.하.고. 있.던. 것.이.다.
마음은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켜주는 절대적 소재다.
절대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상대적인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무조건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조건 속에서 태어난 개인이든 간에, 그가 마음을 갖고 있는 한, 그리고 그 마음이 자신의 것인 한, 그의 존재는 반드시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이 마음의 힘이다.
인.류.는. 이.처.럼. 자.신.이. 절.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그. 사.실.에. 눈.떠.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마음을 알고 싶어한다. 마음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다.
이것은 심리학이나 상담 등의 분과적 활동의 영역만으로는 다 포괄할 수 없는 광대한 관심이다.
이것은 바로 '깨달음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알고 싶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이 우주에서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위상을 갖고 있는지의 의미를 인간은 알고 싶어한다. 그 존재의 크기만큼이나 웅장하게 펼칠 수 있는 자유의 크기 또한 인간은 뜨겁게 알고 싶어한다.
인간은 바로 그러한 나를 꿈꾼다.
내기해도 좋다.
현대인은 깨달음을 소망한다.
나를 깨닫는 일, 바로 그것만을 소망한다.
우리가 가장 체험하고 싶어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다.
단 1초라도 나로 살 수만 있다면, 그렇게 1990년대의 시애틀 아이들은 절규하며 노래했다.
아니 100년은 더 살아보자.
이제는 그런 시대다.
우리는 당당한 '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나를 향해 감격 속에서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