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과 수행"
상담은 놀리려고 하는 것이고, 수행은 웃기려고 하는 것이다.
상담을 하고 있는 장면을 밖에서 보고 있다고 해보자.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
"놀고 있네."
상담은 이처럼 놀리려고 하는 것이다.
수행을 하고 있는 장면을 밖에서 보고 있다고 해보자.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
"웃기고 있네."
수행은 이처럼 웃기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상담과 수행에 대한 비하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 활동들의 본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드러내기 위한 이해다.
우리가 상담과 수행에 부여한 엄숙한 경건주의의 색채를 빼고, 고매한 신격화의 향기를 탈취한다면 그 본질은 오히려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 이 경우 인위적인 색과 향기가 정확하게 보려는 우리의 일을 가로막는다.
상담은 정말로 놀리는 것이다.
마.음.을. 놀.게. 하.는. 것.이.다.
수행은 정말로 웃기는 것이다.
나.를. 웃.음.짓.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잘 기능하는 상담은 자연스럽게 수행으로 이어진다.
마.음.이. 놀.아.서. 나.를. 웃.음.짓.게. 한.다.
마음이 자유롭게 노는 만큼 나의 웃음이 떠오르는 행복한 현실이 연쇄된다.
깨달음은 우리가 웃으며 살 수 있는 이 삶의 방식이다. 삶이 따로 있고 상담과 수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일치된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마음을 놀리려고 사는 것이고, 나를 웃기려고 사는 것이다.
삶은 이처럼 '마음의 자유'와 '나의 행복'의 만남이다.
그러니 잘 놀고 있고, 잘 웃기고 있으면, 우리는 분명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즐거워 또 만나고 싶어지는 만남의 달인으로 우리는 그렇게 깨달음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