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낚는 어부: 가리키며 배우는 일"
예수가 광야에서 깨닫고 나와 물고기를 낚던 베드로에게 말한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신세계가 열렸다.
사람을 낚는 어부의 세계다.
과거에는 깨달은 이들은 스승이라고 불렸다. 스승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들.은. 가.르.치.면.서. 배.웠.다.
스승은 원래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제자의 이름이다. 스승과 제자는 같은 것이다. 가장 배우고 싶은 제자가 스승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성실하게 가르쳐본 이들은 다 동의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정.말.로. 가.르.치.면.서. 더. 깊.게. 배.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르침과 배움은 분리되었다.
가르치려면 먼저 '배움의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승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은 열심히 배우는 일에 매진했다.
그러다가 어떠한 경지가 되면 이제 '가르침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믿었다. 잘 배운 이가 잘 가르칠 수 있다고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학습이라고 하는 것의 모범적인 모델이기도 하다.
'가르침으로써 배우는 단계'는 한층 고급의 것으로 설정되었다. 이것은 최상위의 단계다. 가장 잘 가르치는 대가들만이 이 방식을 향유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이렇게 가르침과 배움이 분리되고, 또 이것이 단계가 됨으로써, 스승이라는 것은 갈수록 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실은 스승이 되기를 소망하지만, 이루기에는 너무나 요원한 목표가 되었다.
가르침과 배움이 분리됨으로써, 스승과 제자가 실은 하나라는 것을 망각하게 된 까닭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깨달은 이들에게 스승이라는 언어가 자주 기각된다. 그보다는 이들은 스스로를 '안내자'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럼으로써 깨달은 이들은 스승이라는 언어의 무게에 눌려 사람들이 배우는 즐거움을 오히려 고통스럽게 여기게 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한다.
안내자는 무슨 일을 하는가?
가.리.키.는. 일.을. 한.다.
늘 지나다니면서도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그들은 가리킨다. "저기 빨간색으로 된 기둥이 하나 서있네요."라며 사람들에게 안내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늘. 있.었.지.만. 없.는. 것.처.럼. 생.각.해.온. 존재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안내자의 주요한 활동은 바로 이 확인의 작업이다. 안내는 확인을 위한 것이다.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것은 실제로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확.인.해.야.만. 비.로.소. 있.게. 되.어. 작.동.한.다.
깨달음은 분명 이 확인의 일이다.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던 것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있었던 것을, 바로 그 존재성을 분명하게 사실적으로 확인할 때 깨달아진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가 길게 자기의 얘기를 한다. 그것을 들어준 이가 있다. 말한 이는 조금 쑥쓰럽게 "허허, 내 얘기만 많이 했네."라고 하면, 들어준 이는 "아니요.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ㅎㅎ"라며 훈훈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안내자가 이 장면에 있어서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주었다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2시간 동안 당신의 얘기를 잘 들어드렸습니다."
자기 얘기에 몰두했던 이는 실은 독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자기의 독백을 방청해줄 관객이 너무나 필요했다.
얘.기.를. 하.는. 것.이. 분.명. 그.의. 목.마.름.이.었.다.
그리고 그 목마름이 응답되는 일이 2시간 동안 분명하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안내자는 여기에서 그가 목이 말라 '있었다'는 존재의 사실과, 그에 대한 응답이 '있었다'는 존재의 사실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아가 이것은 이러한 층위를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제가 2시간 동안 당신의 얘기를 잘 들어드렸습니다."
이 말에 담긴 뜻은 다음과 같다.
"제가 그 자리에 당신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떠한 우주의 미아가 우주에서 가장 외롭게 독백을 하고 있던 시간 동안, 안내자는 그 우주가 결코 외롭지 않도록 '함께 있었다'는 존재의 사실을 바로 전한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다.
가장 외로운 우주 속에도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난 이도 자신이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함.께. 사.람.이.었.다.
사람을 낚는 사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기질의 사물로만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을 건져올리는 것이다.
회색의 돌덩이들 속에서 빛을 낚아올리는 것이다.
이 우주에 있는 사람이라는 빛을 멋지게 두 손으로 들어올리는 것이다.
어떠한 것을 낚으려면 먼저 그것을 가리켜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내자는 가르치지 않고 가리킨다.
사람을 가리킨다.
그럼으로써 사람을 배운다.
깨달아 산다는 것은 '가리키면서 배우는' 이 일이다.
이것은 정말로 배우는 일이 맞는데, 안내자는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깊고 멋진 존재인지를 나날이 배워가게 된다.
또 예를 들어보자.
하나의 상담장면에서 내담자가 버티고 있다. 그러한 만큼 상담자도 버틴다. 버티는 시간이 힘들지만 포기할 수가 없다.
이 장면에서 상담자가 안내자로 등장할 때, 안내자는 버티고 있다는 이 존재의 사실을 바로 가리킨다. 그러면 다음으로 가리킬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난다. 버티고 있는 자신이 있다. 버티고 있으면서도 왜 버티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자신이 있다. 이것을 가리킨다.
가리키면 즉시 배움이 일어난다.
가.리.키.면. 즉.시. 답.이. 나.온.다.
상담자인 자신은 왜 버티고 있는가?
내담자를 위해 버티고 있다. 내담자를 위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버틸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내담자는 왜 버티고 있는가?
그에게도,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지옥 끝에서라도 버텨내고 싶은 소중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태산의 무게도 버텨내는 아틀라스다.
안내자는 이제 가장 멋지게 가리킨다.
"당신은 당신의 사랑을 위해 그렇게 잘 버티고 계시는군요."
그는 이기적인 고집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우주에서 고독하게 그의 사랑을 위해 홀로 태산을 짊어지고 있던 아틀라스와 함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의 지고한 사랑이 오롯이 증거된다.
그.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이어서 그는 그토록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내자는 인간의 사랑을 가리킴으로써, 인간의 사랑의 아름다운 깊이를 배워간다.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제자이고, 누구보다 훌륭한 스승이다.
그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람이라는 빛을 함께 낚는 이 일을, 깨달음의 일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