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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Sep 28. 2019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묻는 그대에게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그대여, 그런 법은 없다.


  사랑은 법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 또한 법의 집행자가 아니다.


  사랑은 해야만 하는 법이 아니라, 하고 싶은 소망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것은 자기가 아니다. 또한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것은 타인이 아니다.


  그대는 잊은 것이다.


  그대가 대체 무엇을 사랑하고 싶었는지를 잊었을 때, 그대는 사랑하는 법을 묻는다. 자기가 홀로 사랑을 얻는 법을 묻거나,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을 자기가 똑같이 돌려받는 법을 묻는다.


  이와 같이,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잊었을 때 그대는 꿈을 꾼다. 사랑의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그대는 유능하고, 성실하며, 친절하고, 착한 모습으로, 한없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따듯한 사랑의 왕국에 거한다. 그 왕국의 울타리 안에서 그대를 위협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미래는 더는 불안하지 않고, 그대를 향한 우호적인 미소와 함께 투여되는 무한한 관심이 그대를 다만 충만하게 할 뿐이다.


  보라, 세상이 그대를 보고 웃는다. 그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대를 보고 웃는다.


  그대가 웃으면 세상도 함께 웃고, 사람들도 함께 웃는다.


  그대는 사랑받는 것 같고, 그대는 사랑하는 것 같다.


  그대는 그러한 꿈을 꾼다.


  그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엄마라는 꿈을 꾼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늘 그대를 보고 웃으며 그대가 최고라고 칭찬해주는 엄마를 꿈꾼다.


  그렇게 그대는 그대의 연인과, 배우자와, 친구와, 그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그대의 엄마로 만들고자 하며, 나아가 아직 만난 적 없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또한 그대의 엄마로 만들기를 꿈꾼다.


  그래서 그대는 블로그에서,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에서, 유튜브에서, 개인방송채널에서, 늘 학예회를 준비한다. 엄마가 그대를 알아보며 웃을 수 있도록, 사랑스러운 그대의 모습을 연출한다. 그대가 재롱잔치를 펼치며 짓는 그 미소를 따라, 엄마가 같이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도록 연기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대는 알 것이다.


  그러한 의도가 없었다고, 미처 몰랐다고, 정말 모르는 척 하는 또 다른 연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대는 이미 알 것이다.


  그대는 엄마를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대는 엄마를 그저 그대를 바라봐줄 시선의 제공자로 여겼을 뿐이다. 그대에게 끝없이 관심을 제공해줄 관심자판기로 여겼을 뿐이다.


  그대의 엄마는 그대에게 인간이 아닌 도구였다. 그대가 엄마로 삼은 그 모든 이들은 그대에게 인간이 아닌 도구였다.


  그렇게 그대는 인간을 도구로 속여왔다.


  그리고는 인간을 속이고 있는 이 현실을 덮기 위해 가상현실을 만들었다. 그대와 무수한 관심자판기들만이 놓인 이 현실 위에 사랑의 꿈을 덧씌워 마치 모두가 행복한 디즈니랜드인 것처럼 위장했다.


  그러던 중, 그대에게 착취되던 관심자판기들이 인간으로 다시 회복되고 싶어할 때,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대의 왕국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될 때, 그대는 사랑을 잃은 비극의 희생자처럼 행세했다. 그대도 최선을 다했기에 너무나 속상하다고 호소했다.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그대의 순수성을 항변했다.


  자기가 만든 가상현실에 그렇게 그대는 취해 있었다.


  자기가 만든 꿈의 왕국이 붕괴되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그대는 화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법을 묻는 그대여, 그대는 그저 화내고 있을 뿐이다.


  그대가 엄마로 삼은 사람들이, 그대의 왕국에 계속 머무르면서 그대를 향해 영원히 미소지어주지 않는다고 그대는 화내고 있을 뿐이다. 그대가 고생하며 만든 꿈의 왕국이 붕괴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대는 화내고 있을 뿐이다.


  곧, 그대는 사람들이 그대에게 끝없이 착취되지 않는다며, 말도 안되는 이유로 화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대는 사랑하는 법을 묻는 것이다.


  그대가 꿈꾸는 사랑은 바로 착취인 까닭이다.


  그대는 그대가 착취의 현실 위에 뒤집어씌운 사랑의 꿈이 붕괴되려고 할 때, 그 순간 사랑하는 법을 묻는다.


  바로 그렇게, 지금까지 그대가 해온 것도 사랑이지만, 아직 사랑을 잘 몰라서 똑바로 못했기에, 이제는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실수하지 않고 똑바로 사랑하는 자가 되려는 것처럼, 이 모든 기만의 시나리오를 구성한다.


  그 시나리오 속에서, 이제 그대는 스스로를 비판하고, 반성하며, 후회하고, 성찰하며, 고민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연기를 한다. 그러한 연기를 통해 진정성이라는 것을 연출하려 하며, 그 진정성을 통해 새롭게 바뀐 그대의 모습을 다시금 그대가 엄마로 삼는 이들에게 어필하려고 한다. 그대를 응원하며 보내는 그들의 미소를 회복하려고 한다.


  그대는 이러한 방식으로 그대가 만든 가상현실을 지속한다. 착취를 지속한다. 인간을 속이는 일을 지속한다.


  이 모든 이야기 앞에서 그대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리고 그대가 역시 아는 바처럼, 이것은 질문이 아니다.


  이것은 질문하는 척 하는 연기다.


  그대는 이 질문하는 연기를 통해, 그대가 결코 착취를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조금 더 교묘한 방식으로, 이제는 더 아름다운 언어들을 통해 '어떻게' 착취하는 모양새를 은폐하고 효과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 방법론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또한 이처럼 교묘한 방식으로, 그대에게 방법론을 찾아주기 위해 고민하는, 즉 그대에게 관심을 제공하는 또 하나의 착취되는 자판기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그대여, 여기에 답은 없다.


  답은 없고, 그대는 구제불능일 뿐이다.


  이 가상현실 속에서는, 이 꿈 속에서는, 그대는 영원히 착취만을 반복할 것이며, 그대가 가진 착취의 의도는 결코 기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그 모든 것은 단지 착취의 현실만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그대가 속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까닭이다.


  그대가 그대의 인생을 속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까닭이다.


  그대여, 그대의 앞에는 언제나 그대의 인생이 놓여 있다.


  그대가 정말로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대의 인생이다.


  그러나 그대는 인생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대의 인생이 그대를 속인다고 생각하며 그 앞에서 도망쳤다. 엄마의 품으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엄마의 품 안에서, 그대가 꿈꾼 가상현실을 노래했다. 더 많은 엄마들이 그대의 노래를 들으며 미소지어주면, 그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대는 엄마들의 도움으로 그대를 속인 그대의 인생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대는 마치 학교에서 그대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그대를 속였다며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엄마가 선생님을 패러 가주기를 바라는 아이와 같았다.


  그러나 그대의 선생님은 그대를 속인 적이 없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아이언맨 가면을 쓰고 5층 창문에서 막 몸을 던지려고 하는 그대를 교실바닥으로 황급히 끌어내렸을 뿐이다. 그 길은 갈 수 없는 길이라고, 그대에게 정직하게 전했을 뿐이다.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가면을 벗고 학급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라고, 그대가 갈 수 있는 길을 정확하게 안내했을 뿐이다.


  이것이 그대의 인생이 그대에게 하는 일이다.


  그대의 인생은 결코 그대를 속이지 않는다.


  언제나 그대가 그대의 인생을 속일 뿐이다.


  그대의 인생은, 그대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엄마의 품으로 달아나버린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길이 없는 막다른 곳으로 달려간 그대가, 그 막다른 곳에서 디즈니랜드를 세우고 왕 놀이를 하는 그대가, 그렇게 엄마 품에서 기만적인 꿈에 취해 있는 그대가, 다시 돌아와 삶을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인생에서 도망쳐 엄마의 품만을 반복해서 생산하는 그대의 모습은 이렇게 말해진다.


  '인생을 포기한 이.'


  그대여, 그대는 다른 무엇도 아닌, 다만 인생을 포기한 것이다.


  그대가 이처럼 그대의 인생을 포기한 채 살기에, 그대는 타인의 관심만을 그토록 갈망하는 것이다. 타인이 주는 관심으로 그대의 인생이 포기된 자리의 공백을 대신 채우고자 애쓰는 것이다.


  포기라는 말은 무시라는 말과 같다. 그대는 인생을 무시했다.


  그러나 그대의 인생은 그러한 그대조차도 결코 무시한 적이 없다.


  그대의 인생은 그대를 가장 존중하기에, 그 어떤 달콤하고 아름다운 꿈으로도 그대를 속이려 하지 않았다. 그대의 인생은 언제나 그대 앞에 가장 정직한 모습이었다. 다른 모든 것이 그대를 적당한 언어에 속을 존재처럼 얕잡아보며 무시할 때도, 그대의 인생만은 결코 그대를 무시한 적이 없다.


  그대의 인생은 그대의 엄마가 아니기에 그대를 어린아이처럼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대의 인생은 그대를 성숙한 존재로 대했다. 비를 맞아 몸이 젖었을 땐 스스로 불을 쬐고, 배가 고플 땐 스스로 밥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로 대했다.


  곧, 그대의 인생은 그대를 정당한 동격의 존재로 대했다. 그대라는 동격의 존재 앞에서 숨기는 패 하나도 없이 스스로를 정직하게 다 드러내며, 그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그대의 인생은 그대를 연인으로 대했다. 그대와 사랑하고 싶어했다.


  때문에 그 앞에서 도망쳐 엄마의 품으로 향한 그대는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엄마가 없으면 연인[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어."


  그대는 이처럼 지독한 마마보이, 마마걸일 뿐이었다.


  그러나 심지어 그대의 인생은 이처럼 지독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그대조차도 결코 무시한 적이 없다.


  그대가 마마보이, 마마걸로 살아갈수록, 그 막다른 곳에는 사랑이 없는 까닭에 그대가 더욱 갈증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전할 뿐이었다.


  이와 같이, 그대의 인생은 단 한 번도 그대를 무시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대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러니 그대여, 그대도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아직 그대의 인생을 포기할 때가 아니다.


  사랑은 그대와 그대의 인생 사이에서의 사건이다. 자기에 대한 것도 아니고, 타인에 대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오직 그대와 그대의 인생이 맺는 관계성에 대한 것이다.


  그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대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대의 인생이 그대를 혼냈던 것만 같은 그 장면으로, 그대의 인생이 그대를 좌절시켰던 것만 같은 그 역사로, 그대의 인생이 그대의 귀싸대기를 후려갈겼던 것만 같은 그 순간으로 그대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대의 인생이 아이언맨인 그대를 무시한 것이 아니다. 그대의 인생이 인간인 그대가 죽지 않도록 아이언맨 가면을 세차게 후려갈긴 것이다. 그대를 무엇보다 존중하는 그대의 인생이, 그대가 망상에 취해 죽지 않도록 그대를 기필코 살리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그대는 다시 이해해야 한다.


  얻어 맞은 후 집으로 돌아가 엄마 품에서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아이언맨인지를 설파하며, 인생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 것이 예정된 그대일지라도, 그렇게 영영 답이 없는 구제불능의 그대일지라도, 그대의 인생은 반드시 그대를 살리고자 했다는 사실이 여기에 있다.


  그대의 인생이 단 한 번도, 가장 구제불능인 그대조차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 그대여,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사랑하고 싶은 소망을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그대의 인생을 사랑하고 싶은 그대의 소망을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그대여, 사랑하는 법을 묻는 그대여.


  그대는 다른 무엇도 아닌, 다만 그대의 인생을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대가 인생을 버리고 온 그 빈 교실로.


  그곳에서 아직도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그대의 인생에게로.


  그대가 꿈에 취해 잊으려고 해보아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그 장면으로.


  그대는 잊기보다는 잇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지는 말을, 이루어지는 마음을.


  "수백 번이라도, 수천 번이라도, 결코 그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대의 인생은 단 한 번도 그대를 속인 적이 없다.




  


인생을 앞에 두고 허둥대기만 하는
무능하고 가련한 청춘이지만
지금 이마의 첫 주름과 함께 얻은 것이 있다면

인생에 대한 신뢰와, 동의와,
친구, 너에 대한 것이라면 다 알고 있어
라고 말하는 그런 의미의 미소다

그제서야 인간은 깨닫는다

'인생은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

인생은 단 한 번도 인간을 속인 적이 없다고

- 황색눈물 中






Mad Season - River of Deceit
My pain is self-chosen
내 고통은 내가 자초한 것
At least so the prophet says
적어도 선지자들은 그렇게 말했지
I could either burn
나는 불타버리거나
Or cut off my pride and buy some time
아니면 내 자존심을 팔아가며 연명이나 해가겠지
A head full of lies is the weight tied to my waist
거짓으로 가득찬 내 머리는 내 숨통을 조이는 무게야
The river of deceit pulls down
기만의 강은 밑으로 흘러만 가네
The only direction we flow is down
우리는 그렇게 그저 밑으로 떨어져갈 뿐
Down, oh down
밑으로, 밑으로
My pain is self-chosen
내 고통은 내가 자초한 것
At least I believe it to be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I could either drown
나는 익사해버리거나
Or pull off my skin and swim to shore
아니면 내 피부를 벗고 해안으로 헤엄쳐가기나 하겠지
Now I can grow a beautiful shell for all to see
봐봐, 난 이제 너희들이 좋아할 아름다운 껍질을 만들어냈어
The river of deceit pulls down
기만의 강은 밑으로 흘러만 가네
The only direction we flow is down
우리는 그렇게 그저 밑으로 떨어져갈 뿐
Down, oh down
밑으로, 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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