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36

"깨달음의 요리"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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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어렵거나 힘든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나아가 깨달음이 자기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깨달음에 대해 모르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남들보다 깨달음을 좀 알거나, 깨달음에 좀 가깝게 다가가 있다고 간주하는 이들이 그런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이.들.은. 깨.달.음.도. 일.종.의. 학.습.기.제.라.고. 상.정.한.다.


어떠한 모범적 메뉴얼 같은 것을 언어로 모방한 뒤, 모방한 그것을 실천해나가며 경험을 쌓아감에 따라 깨달음의 고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요리로 비유하면 더 쉽게 이해가 된다.


깨달음을 '궁극의 요리'라고 해보자. 이러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준의 레시피가 필요하다고 가정된다. 레시피란 일종의 고급정보이며, 깨달음은 이처럼 비밀의 고급정보를 보유한 정도에 따라 실현될 수 있다고 평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요리사들은 대개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한 레시피로는 절대로 궁극의 요리를 만들 수 없어요."


이 지점에서 이제 많은 레시피들을 모으고, 또 그것들을 따라 열심히 요리수행을 하며 "와! 역시 레시피대로 되는구나. 하면 되는 거였어! 레시피가 사실이었구나!"라고 학습의 과정을 밟아온 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분명히 남들보다 요리를 잘하게 된 것 같은데, 요리계에서 자기가 이제 중상급의 실력은 된 것 같은데, 왜 이러한 방식으로는 궁극의 요리를 만들 수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내 아주 많이 화가 난다.


고급정보를 자기에게는 알려주지 않고 독점하려는 수작인가도 싶고, 자기가 열심히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며 무시하는가도 싶다.


그렇지 않고 이들이 지금 깨달음을 무시하고 있는 중이다.


깨.달.음.은. 레.시.피.가. 아.니.라. 요.리.하.는. 감.각.과. 관.련.된.다.


우리가 '센스'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이다.


깨달음의 레시피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깨달음이 이 섬세한 감수성의 영역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무시한다. 레시피에 따라 자기만 열심히 노력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칠고 투박하다.


설령 얻는다고 해도 그들은 대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가?


'궁극의 요리'라고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깨달음의 요리사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궁극의 요리란 내 입맛에 가장 잘맞아 내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요리입니다."


그렇기에 특정한 레시피가 존재할 수가 없다.


어떠한 고급정보들의 빅데이터에 근거한 알고리즘도 내 자신의 행복과 100% 일치하는 것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오히려 '상상력'이다.


내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그 구체적인 맛을 그리며 상상력을 펼쳐가는 것이다. 요리하는 감각은 이러한 방식으로 개화된다.


이 상상력의 감각이 탁월한 이들은 세간의 레시피를 전혀 참조하지 않아도 자신이 그리던 그 맛의 요리를 실현해낸다.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가 만든 일본요리가, 그 요리를 맛본 일본인에게서 현지의 맛이 난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의 상상력이란 엄청난 것이다.


이것은 비단 요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의. 대.가.들.이. 이.와. 같.다. 나아가 이 감각은 모든 분야에 동시에 적용되기까지 한다.


센스가 있는 이들은 요리도 잘 하고, 옷도 색과 형태가 잘 조화되게 입으며, 말도 시적으로 한다.


더 좋은 것 내지 최상의 것을 얻기 위한 메뉴얼 같은 것들을 그들이 모방하고 있지 않기에 생겨날 수 있는 일이다.


이들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한 이상적 형태를 얻는 일보다는, 자신의 감각에 집중한다.


어떠한 것이 정말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서 실현하는 일에만 관심을 둔다.


그.러.니. 무.조.건.적.으.로. 자.신.이. 행.복.해.지.는. 감.각.이. 키.워.질. 수.밖.에. 없.다.


조건없이 행복한 현실, 곧 조건을 막론하고 행복한 현실, 이것은 분명 깨달음의 현실이다.


이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100%로 깨어있을 때다. 그리고 그 감각을 통해 우리가 행복한 그 구체적인 현실에 닿게 될 때다. 표현 그대로, 깨달음이다.


전문가가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물만 부은 뒤 자기가 커피계의 실력자인 것처럼 말하고, 밀키트를 데워 사람들을 대접한 뒤 자기가 요리계의 실력자인 것처럼 말하며, 남이 한 좋은 말을 자기가 한 말처럼 선전하고 남의 인생이나 도둑질해서 원숭이처럼 흉내낸 뒤 자기가 깨달음계의 실력자인 것처럼 말하는 일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무 것도 없다. 철저하게 허무한 일이다.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하고 있는 이런 것을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깨달음을 가장 무시하는 행위다.


원래부터 갖고 태어난 자신의 감각, 자연스러운 자신의 본성을 무시하는 행위다.


곧. 자.기. 자.신.을. 가.장. 무.시.하.며. 사.는. 모.습.이.다.


반대로 자신을 위한 맞춤형 행복의 감각으로 사는 일은 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가.장. 존.중.하.며. 사.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을 '자연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제 이 '자연체'와 그에 대비되는 '문명체'의 모습을 한번 살펴볼 수 있다.


다시 변주하자면 자연체란 '요리하는 감각'이고, 문명체란 '레시피'다.


레시피는 문명의 산물이다. 일정한 정도의 맛을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내 자신의 입맛에 100%로 맞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내 자신을 위해 창조적으로 요리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자연체로 산다는 것은 레시피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요리하는 감각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문명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연이 회복되면 문명도 더 럭셔리하게 향유할 수 있을 뿐더러, 문명의 위기상황에서도 튼튼하게 우리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깨.달.음.은. 이. 자.연.회.복.의. 운.동.이.다.


더 근원적인 현실을 회복하자고 하는 것이다.


요리하는 감각이 깨어나는 현실은 레시피를 소비하는 현실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깨달음은 MSG를 사용하는 타락한 삶을 멈추고 멸치와 다시다를 늘 직접 갈아서 감칠 맛을 내야 한다는 MSG 거부캠페인이 아니다. 얼마든지 MSG라는 문명의 이기를 편리하게 사용하면 된다.


다.만. 자.신.을. 융.숭.하.게. 대.접.하.기. 위.한. 자.신.의. 맛.을. 내.라.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 근원적인 자연체의 감각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마법의 레시피를 전수받아 모두를 만족시키는 우리집 짜파게티 요리사인가?


아니면 나는 너구리에 계란을 풀고 베이컨을 잘라 넣어 내 자신을 100%로 행복하게 하는 그 '궁극의 요리'를 만드는 깨달음의 요리사인가?


나는 모범적인 남의 생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고 있는가, 이 몸이 행복한 현실을 위해 살고 있는가?


어떤 것이 정말로 어렵고 힘든 길인가? 또 어떤 것이 정말로 자기의 삶을 위협하는 일인가?


내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하는 요리는 어떤 것도 위협하지 않으며, 가기에도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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