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37

"행복을 향한 미래의 키워드"

by 깨닫는마음씨


illustration-elicia-edijanto-01-805x572.jpg?type=w1600



하워드 서먼이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지 말라. 당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일을 해나가라.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이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즐거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매우 자주 쾌락을 즐거움과 혼동한다. 그러나 그 둘의 차이는 분명하다. 쾌락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한다. 이것은 자극의 생리학이다. 그러나 즐거움에는 고통이 없다.


이 '즐거움'은 우리가 행복할 현실을 향한 첫 번째의 미래의 키워드다. 이것이 증진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때 즐거운지를 살펴보자.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는 이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걷.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


즐거움의 원형은 이처럼 '자신의 몸을 즐기는 것'이다.


이제 직립보행을 하게 된 아이가 그 전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냉장고까지 직접 자기 발로 향하며, 그 냉장고의 문을 손으로 열어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꺼내기까지 한다.


아이는 지금 증대된 자신의 몸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자기 몸을 자유롭게 쓸수록 그의 즐거움이 더욱 커진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여기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반.드.시. 어.떤. 것.을. 만.나.고.자. 몸.을. 써.서. 움.직.인.다.


'만남'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두 번째의 미래의 키워드다.


만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만남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일이 유익하다.


그것은 바로 '관계'다.


관계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이해해보자.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와 너의 사이다. 그래서 인간을 '사이존재'라고도 말한다.


이 '사이'라는 것은 '공간'을 의미한다.


공.간.이. 있.어.야. 우.리.는. 만.날. 수. 있.다.


공간이 우리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다. 공간이 있음으로써 우리는 그 공간에 뛰어들어 서로에게 건너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떼 만남을 향하고자 하는 몸의 힘이 증대되어 자연스럽게 즐거움도 생겨난다. 만.남.은. 가.장. 큰. 즐.거.움.의. 소.재.가. 된.다.


공간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임의로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관계'다.


'만남'과 '관계'는 같은 것이 아니라, 실은 가장 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와의 사이에 공간을 경험할 때 거기에 어떻게든 억지로 관계라는 다리를 놓으려 한다. 그렇게 다리만 놓은 채 서로 연결되어 이해한 척을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외딴 섬으로 착각하고 있어서 생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섬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차라리 우리는 늘 자유롭게 활공하는 새다. 그러한 우리 사이에 관계라고 하는 고정된 연결축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둘 다 추락한다. 자유의 본성을 가진 존재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가슴 깊은 곳에 담고 산다.


"이제 나도 행복하고 싶다."


진실이다. 이 말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다.


우리는 관계라고 하는 족쇄에 날개가 묶여 추락했기에 행복하지 않다. 날 수 없는 새는 행복하지 않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계속 살아가는 일에 많이 지쳤다.


바닥을 기어다니며 먹이를 찾는 일 때문에 우리가 지친 것은 아니다. 날고 싶다는 마음이 늘 꿈틀대고 있는데 아무리 힘을 써도 날 수가 없어서 지쳤다.


심히 지쳐 있으니 만남을 갖고 싶지도 않고, 즐거움 따위는 떠오르지도 않는다.


미래의 키워드가 두 개나 실종되어 우리에게 행복한 미래는 없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다행히도 또 다른 키워드가 떠오른다.


우리의 행복을 위한 세 번째의 미래의 키워드, 그것은 바로 '쉼'이다.


이로써 '즐거움' '만남' '쉼'이라는 세 가지의 키워드가 모두 드러났다.


이것들은 정말로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 가장 중요한 키워드들이다. 우리의 행복과 직결될 황금의 열쇠들이다.


그리고 이 세 키워드들은 사실 함께 연동되어 있다.


'쉼'을 살펴보자. 쉼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세상에 하도 관계가 많아 우리가 도저히 공간을 발견할 수 없기에 쉼은 작동한다. 어디에도 없으니 먼저 우리 자신을 통해 공간을 확보하려는 생명의 지혜다. 그럼으로써 만남과 즐거움을 연쇄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쉼을 방해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거짓의 즐거움'이다. 이것은 우리가 쉬고 있으면 자신만 도태될 것 같은 초조감으로 다가온다. 그 초조감을 유발하는 것은 자기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다 즐거움 속에서 행복한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관계가 만들어낸다. 사회적 관계망을 보면 자신만 빼고 다 행복한 것 같다. 자꾸만 비교가 되어 불안해지고 계속 화만 난다. 그렇게 관계가 만들어낸 생각의 영향력에 지배되어 우리는 더욱더 관계에 매진하며 쉬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실제로 즐거운 이는 없다.


즐.거.운. 척.하.는. 이.들.만. 있.다.


실제로 즐겁지는 않으나 자신은 지금 즐거운 것이라는 그 생각만을 붙잡고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려고만 하는 '거짓의 즐거움'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보통 이 '거짓의 즐거움'의 소재가 되는 것은 '과거의 쾌락'이다. 이것은 자신이 과거에 쾌락을 경험했던 방식을 반복하고자 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은. 사.실.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에 좋았던 '영광의 시절'로 현재로 소환해 재현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앞에 놓인 공간을 부정하기 위해 이 '거짓의 즐거움'은 만들어진다. 공간을 무시하려고 과거의 쾌락을 만들어낸 관계방식을 끊임없이 공간 위에 덧씌운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바로 이 방식이 즐거운 것이라고 선전하는 일 역시 거듭한다.


'거짓의 즐거움'을 남들에게도 강요하는 꼰대짓이 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도 나처럼 살아. 그러면 행복해져."라는 거짓예언자의 목소리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살고 있는 이들만이 이 "나처럼 살아."라는 말을 가장 많이 발화한다. 자기가 현재 힘들기 때문에 다 같이 힘들어졌으면 좋겠어서 하게 되는 말이다. 자기만 혼자 행복으로부터 도태될 바엔 모두가 다 불행해지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의식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의 즐거움'을 강요하는 이들은 정말로 자신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자기최면이 깊다.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로는 이것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으며, 다른 두 키워드들을 적용해볼 때 이것이 '거짓의 즐거움'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거짓의 즐거움' 속에서는 쉬지 못한다. 물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며, 또는 더 고급스럽게 자기 마음을 들여다 보며 쉰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짜. 쉼.은. 보.지. 않.는. 것.이.다.


만남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거짓의 즐거움' 속에서는 만남이 없다. 관계만 있다. 이 둘의 핵심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만남은 공간을 통해 가능한 것이고, 공간이 있으면 언제나 거기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새로운 것을 향한 설렘이 있으며,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용기도 생겨난다.


새.로.운. 것.을. 살.고. 있.지. 않.으.면. 만.남.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것이란 언어만 바꾼 새로운 포장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쾌락 또는 과거의 영광과 관계된 그 모든 것을 다 기각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열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은. 새.로.운. 시.간.을. 만.든.다.


이 '새로운 시간'을 미래라고 부른다. 미래는 단지 시계의 시간이 가리키는 먼 좌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언제나 우리가 새롭게 태어난 존재의 시간을 의미한다.


쉼은 공간을 회복시킴으로써, 새로운 것과의 만남을 불러들이고, 그 만남을 향해 더욱더 나아가도록 하며, 그 결과 우리 자신의 존재의 힘이 증대되는 즐거움을 낳는 시작점이 된다.


우리가 행복할 미래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미래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생겨나 있을 때, 우리는 정말로 우리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 자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일, 그것은 '즐거움' '만남' '쉼'이라는 이 미래의 키워드들이 더욱 확장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이 미래에는 더욱 향유하게 될 키워드이기도 하며, 인간이 행복할 미래를 위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진실로 미래의 키워드다. 조금 앞서 누리는 일은 아주 유익하다.


이 미래의 키워드를 더 적극적으로 만끽하며 사는 이들을 깨달아 사는 이들이라고도 부른다.


만나고, 쉬고, 즐겁다.


다시 표현하자면 이렇다.


살다가, 죽었고, 가득 사랑했다.


진짜 행복한 삶이다.


세상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이 행복한 사람들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깨달음의 심리학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