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바보의 탄생"
최초의 마음이 생겨나면서 마음바보도 태어났습니다.
최초의 마음은 경외심(awe)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에는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둘이 아닙니다.
삶을 향한 아주 웅장한 놀라움의 감동, 그 하나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 경외심은 둘로 쪼개져 하나는 설렘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전자는 살아있는 것들과 관계되는 것처럼, 또 후자는 죽어있는 것들과 관계되는 것처럼 생각되면서, 이것들은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에로스를 통해 세상을 만들어갔고 이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에로스를 더 많이 소비할수록 설렘의 불감증이 생겨나고 그로부터 경외의 감각은 흐려져만 갔습니다. 이제 awe라는 표현에서는 두려움의 측면만이 부각되게 되었습니다.
'두려운' '공포스러운' '끔찍한' 등을 뜻하는 awful은 그렇게 남겨진 작은 단어입니다.
awe-ful이라고 쓰면 '경외심으로 가득한'이라는 원래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하루하루 펼쳐지는 삶의 시간들에 감동받아 사는, 이 경외심이 가득한 이들이 바로 마음바보들이었습니다.
'Awefool'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Lovefool이 사랑밖에 모르는 바보를 뜻하듯이, Awefool은 마음밖에 모르는 바보입니다. 그래서 마음바보입니다.
톨스토이는 『바보 이반』 등의 단편소설들을 통해 이 마음바보들의 모습을 잘 묘사했습니다.
'A fool'은 언제나 'Awefool'입니다.
바보가 사는 원리는 마음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awe-wakening'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다 아는 현자가 아니라 마음밖에 모르는 마음바보는 깨어난 사람입니다.
태초의 사람입니다.
최초의 마음과 함께 태어난 그 존재의 이름을 그저 '사람'이라고만 부릅니다.
당신의 이름이기도 할 것입니다.
많이 돌아왔고, 멀리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왔습니다.
결국엔 왔습니다.
오랜 약속 하나를 가슴에 품고, 그 약속 하나만을 의지하며 먼 길을 걸어와 이제 동산에 선 바보.
우리가 당신을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