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착각"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착각은 인간이 외롭다는 착각 때문에 생겨난다.
동시에 인간이 외롭다는 착각은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착각 때문에 생겨난다.
이것은 닭과 달걀의 순환구조를 가진 착각이다.
우리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완전한 존재인 것처럼 경험하고자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 대표적인 방법은 상대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서비스맨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을 채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이제 사람들이 자신의 곁애 머물게 됨으로써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우리는 더 외로워지기만 할 뿐이다.
상대들을 더 많이 우리의 곁에 머물게 하려면 그들에게는 더 많은 문제가 생겨나야 한다.
즉, 사.람.들.은. 더.욱.더. 불.완.전.해.진.다.
불완전해지니 그에 비례해서 외로움도 커진다.
이처럼 자기 곁에 붙잡아두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을 불완전하게 보면 볼수록 인간의 외로움은 총체적으로 더 증대되며, 결국 인간인 자신 또한 더 깊은 외로움에 빠져들게 된다. 스스로 만든 늪인 셈이다.
어떠한 상담자들은 지쳐서 자살을 하거나, 내담자에게 계속 화를 낸다. 내담자들을 약한 아이로 가정하며, 자신이 그들의 마음을 온전하게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담자일수록 이 경향은 두드러진다. 이들은 어느 순간 내담자들이 자신을 착취한다고 경험하게 되며, 무척 큰 공허감을 맛보게 된다.
자신의 불완전함 및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내담자들을 자기가 알아주어야만 하는 불완전하고 외로운 존재로 보려 했기에 일어난 일이다.
이들이 보는 것은 상대의 마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외롭다는 그러나 그것도 온전하다는 식의 자기 생각을 투사해 내담자를 보고 있으면서, 그것을 내담자의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외로워서 그 외로움을 해소하는 활동으로 상담을 하고 있으면서, 내담자의 외로움을 자기가 만나준다고도 표현한다.
착.각.이. 착.취.한.다.
내담자 착취를 먼저 하고 있으니, 상담자 착취가 일어나는 일은 당연하다.
이 굴절된 상담의 형태처럼, 서로를 묶고 있는 관계 속에서는 늘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
어떠한 상대가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 및 외로움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관계를 맺지만, 그 결과로 우리는 더 큰 불완전함과 외로움을 곧잘 경험하게 된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상대 또한 이 답이 없는 절망의 늪에 함께 빠져들어 간다.
착각으로 인해 생긴 상태에는 원래 착각을 해지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솔루션이 없다.
어.떠.한. 것.에. 대.한. 착.각.은. 그.것.과. 친.해.짐.으.로.써. 해.지.된.다.
인간은 외롭다는 착각,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착각은, 우리가 인간과 아직 친하지 않아서 생겨난 것이다.
역으로 우리가 외롭거나 불완전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바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인간과 친해지고 싶은 중이다.
우.리.는. 인.간.을. 깨.닫.고. 싶.어.하.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말에는 왠지 모르게 '멋진 것'이라는 뉘앙스가 함축되어 있다.
인간을 깨닫고 싶어하는 우리는 인간을 멋진 것으로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과 친해지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인간의 멋진 모습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다.
주어야 한다면 그것은 '앎'이 아니라 '마음'이다. 앎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주는 것이다.
상.대.를. 더. 멋.진. 것.으.로. 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주.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내 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떠올려보면 우리는 친구를 이렇게 사귄다.
우리가 그에게 반한 마음을 기쁘게 알리며 그와 친해진다.
이 경우,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전혀 없다. 상대가 이미 우리의 큰 마음속에서 행복하다.
우리 둘 다 외롭지 않고, 불완전하지 않다.
우리 둘 다 그렇게 인간이다.
인간과 친해지는 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충만하고 완전한 인간임을 발견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