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40

"우리의 우주"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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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번성하고 있는 것, 그것은 아마도 노예제다. 가장 세련된 노예제는 노예 스스로가 자발적인 선택과 결정의 주체라고 믿게 함으로써 유지된다.


우리의 만성적인 고통의 이유, 그것 또한 노예제다. 우리가 고통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면 거기에는 분명 어떠한 노예제가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예제는 어떤 때 붕괴되는가?


노.예.가. 자.신. 안.에. 우.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다.


노예제는 스토리가 만든다. 스토리에서 다음 스토리로 노예들은 쉬지 않고 이동해간다. 하나의 드라마가 끝나면 바로 다른 채널로 돌려 새로운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우연찮은 행운으로 인해, 또는 그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통해, 어쩌다가 스토리와 스토리 사이의 공백이 발생했을 때 노예들은 그 상태를 '심심하다'고 경험한다.


심심하다는 것은 현재 외부에서 작동하는 스토리가 없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 스토리에 영향받아 생겨나는 내적 작용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안이 전적으로 텅비어 있는 것 같은 상태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것은 노예에게 기회다.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누.군.가.가. 심.심.할. 때. 그.는. 지.금. 자.기. 안.의. 우.주.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영어로 'space'라고 쓴다. 이것은 공간이다. 텅빔이다. 텅비어서 심심하다면 거기에는 분명 우주가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안의 텅빔을 우주로 바로 알아보고 그 우주를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공기가 맑은 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와 똑같은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은 아무렇게나 던져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어마어마한 질서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는 별들이 새로 태어나고 사멸해가는 혼돈 속에서도 스스로의 법칙으로 질서를 조직해나간다. 거대한 어떤 섭리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우리는 바로 이 경이로운 사실을 불현듯 눈치채게 된다.


그래서 우주를 또한 'cosmos'라고도 쓴다. 이것은 질서다. 충만함이다. 완벽한 조화로움이다.


우주는 우주다. space는 cosmos다.


자기 안의 텅빔을 통해 우주를 발견하는 이는, 자신이 우주와 같이 스스로 완벽하게 조화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노예제는 우르르 무너져내린다.


우주와 동급의 가장 귀한 존재로 드러난 이를 어느 누구도 감히 노예로 삼을 수는 없는 까닭이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 안.의. 우.주.에. 근.거.해. 자.유.롭.고. 또. 충.만.하.게. 살.아.간.다.


이 '자기 안의 우주'를 바로 '마음'이라고 부른다.


노예제는 노예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붕괴되는 것이다.


이 기적적인 순간은 전부 우리가 경험하던 심심함이라는 기적적인 상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심심(心心)하다는 표현에는 마음심 자를 두 번 쓴다.


마음의 두 양상이다. 하나는 텅빔이고, 하나는 충만함이다. 그 둘이 동시에 성립되어 '마음'이다.


이것이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의미다.


공(空)은 space이고, 색(色)은 cosmos다.


우주에 대한 묘사이며, 또 우주가 얼마나 완벽한지에 대한 묘사다.


우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동일하게, 마음이라고 하는 그 우주로 사는 우리에게도 아무 문제가 없다.


개인이 구체적인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전체의 우주를 사는 일과도 같다. 이것은 언제나 동시적이다.


살면 살수록 자기 자신을 완벽한 조화로움으로 계속 발견하게 되고, 충만하게 무르익어가며, 삶이 더 거대한 감동으로 자꾸만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사는 일을 깨달아 사는 일이라고 말한다.


심심함에서 시작된 역사다.


지구의 각종 노예제는 인간에게 끝없이 스토리의 자극을 공급함으로써, 또 나아가 인간이 그 스토리들을 선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통합적 주체라는 환상을 불어넣음으로써 노예제를 지속하고자 하지만, 우주는 희망적이다.


심심함은 반드시 그 산더미 같은 자극들을 무력하게 만들고서는 우리를 마침내 심심하게 하는 일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노예가 아니라는 이 우주의 심심한 사실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없다.


당신이 완벽하게 조화로운 저 밤하늘의 빛나는 별과 같다는 이 심심한 사실이 언제나 반드시 승리한다.


우리의 우주는 이처럼 희망적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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