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すずめの戸締まり, 2022)

너의 시간을 지키며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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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에는 모든 시간이 있다.


'뒷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곳은 마음의 세계일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만의 뒷문이 있다고 영화에서는 말한다.


그렇게 문 안에는 차마 꺼내어 기억할 수 없는 모든 시간이 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차마 꺼내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이 있다.


그것들은 기억해선 안되는 것이며, 말해선 안되는 것이다.


두려운 것이다.


아파서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다만 잊고 싶은 것이다.


무의식이 무의식이 되는 이유다.


혹시라도 문이 열리면 우리의 일상을 붕괴시킬 수 있는 끔찍한 벌레들이 기어나온다. 우리가 서있는 현실의 지반 자체가 흔들리며 위협받는다.


문은 어떤 때 열리게 되는가?


아픔이 낳은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가 문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을 때다. 이것은 역설적이다.


기억을 틀어막고, 감정을 억압하고,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있을 때, 마음이라는 것은 고통의 진원지가 된다. 문 안에 갇혀 요동치는 진동이 부지불식간에 일상의 공기를 변질시킨다. 이것을 불안이라고 말할 것이다.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하지만 늘 불안하다. 언제라도 이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시달린다.


문을 너무나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는 까닭이다.


"너 우리집 아이가 될래?"


상실을 아프게 경험한 이들은 또 다른 상실자들을 찾아 서로 가족이 되고자 한다.


상대를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심리적 족쇄를 서로에게 동여맨다. 이것은 관계라고 불린다.


관계에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 상대를 인내해가며 헌신하려는 이는, 더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절박함만큼이나 관계의 끈은 서로를 더욱 강하게 결박해간다.


표면적으로는 요동없이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보이나, 문은 삐걱거린다.


아마도 문 너머에서 우리가 꼭 만나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문이 열리는 것은 반드시 만나야 할 것이 있을 때다.


만나고 싶어서 문은 열린다.


내 삶을 기억해달라고, 그 시간을 잊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이 있어서 문은 활짝 열린다.


보고 싶어서 문을 열고, 또 문 너머로 뛰어들어가려는 그 운동을 어떠한 봉인도 실은 막을 수가 없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사랑은 무엇을 하는가?


너의 시간을 지키겠다고 한다.


모든 시간이 아니라 너의 시간이며, 사랑하는 너를 위해서만 종은 울리고, 또 문은 열린다.


문 안에는 커다란 아픔과, 또 그만큼 커다란 두려움이 꿈틀거리고 있으며, 그것들을 봉인하기 위해 꾹 눌러놓은 봉인석이 있다.


네가 사랑했던 시간이 얼어붙어 봉인석이 되어 있다.


너의 시간이 작은 얼음이 되어 힘겹고도 애처롭게 두려움과 싸우며 아픔을 참아내고 있다.


문 안으로 뛰어들어간 너는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얼어붙은 너의 시간이 이 세상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네가 바로 그 작은 얼음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이곳에서 얼어죽어가지 말고, 눈물이 되어 다시 삶으로 흘러라.


문으로 뛰어든 지금의 너는 네 마음속으로 갖고 들어간 그 상냥한 온기.


얼음이 눈물이 되어 녹게 만들 바로 그 온기다.


너는 대체 누구냐고, 너의 작은 시간은 묻는다.


너는 대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너의 미래. 사랑받고, 또 사랑하고 있는 따듯한 빛에 감싸여 살아가게 될 너의 미래."


지옥에서 매섭게 요동치던 고통이 그 순간 흩어져 빗물이 되어 내린다.


네 마음속에 눈물이 흐른다.


이해의 눈물이 네 가슴을 가득 적신다.


문으로 들어간 너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만나고 싶었던 것인지를 정말로 이해한다.


바로 너다.


네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네 자신이다.


과거의 네가 아니라, 그 과거의 너의 눈에 미래로 비친 지금의 네 자신이다.


네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들은 네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럼으로써 너는 네가 간절히 소망하던 것들을 이미 다 갖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한다.


사랑을 잃어 두렵고 아팠던 시간을 문 너머에 버리고 왔다. 꺼내면 안될 기억과 꺼내면 안될 말로 만들어 시간을 멈추고 마음을 가두었다.


그러나 이제 사랑 자신이 잃어버린 문 너머로 들어가, 시간을 다시 잇는다.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워진 마음은 자신의 이름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변함없이 사랑이었음을 이해한다.


사랑을 잃어버린 곳에 사랑이 와서 이제 다시 사랑이 된다.


사랑은 언제나 미래로부터 온다.


미래로부터 방문한 사랑이 모든 시간을 사랑으로 다시 회복시킨다.


너의 미래는 사랑이며, 그 사랑이 너의 시간을 지키고 있던 것이다.


사랑은 시간의 파수꾼.


열어야 할 때 열고, 닫아야 할 때 닫는다.


하나의 끝이 하나의 시작이 된다.


기억해선 안되는 모든 시간과, 말해선 안되는 그 심정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너는 다시 또 사랑하고 싶었기에, 미래를 살아가고 싶었기에, 사랑이 자신의 일을 했다.


과거를 사랑으로 다시 찾은 너의 뒤로 문이 닫히며, 사랑은 이제 처음 왔던 자리인 미래를 향해 흘러간다.


사랑을 기억해서 과거를 닫고 사랑을 표현해서 미래를 열어가는 그 경계가 분명하고, 문단속이 확실하다.


너의 시간이 오늘도 아름답게 지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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