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리 신지 콤플렉스"
코스플레이어에게 결코 악의가 있지 않다.
매우 감사하고 있다. 찾고 있던 바로 그 이미지였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주인공을 에반게리온에 태우면 이카리 신지가 된다.
신지는 엄마의 자궁에 탑승해 보호받으며 여자들을 후리고 세계를 지켜나간다.
말년의 미시마 유키오라면 사내자식이 근육의 갑옷을 입어야지 칠칠맞게 엄마갑옷을 입고 다니냐고 신랄하게 쏘아붙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미시마 유키오의 비난은 동족혐오에 가깝다. 극단적으로 말해, 헬스를 하지 않은 미시마 유키오가 다자이 오사무인 것뿐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할복시 정말로 무슨 말을 했을까?
"헉. 엄마 너무 아파. 이게 아닌데. 폼나야 하는데 왜 이리 아프지. 너무너무 아파요. 엄마 어디 있어. ㅜㅜ"
신지의 얼굴이 자꾸 거기에 겹쳐진다.
안노 히데아키는 자기 자신에 대해 신지를 초월해 무한한 가능성의 평행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직도 잡소리들 하며 칼부림 하고 있냐. 빨리 엄마를 졸업하고 성숙하게 마누라를 얻으라구. 이 마마보이들아."
그러나 그가 그렇게 믿고 싶을지라도, 그는 엄마에서 부인으로 모성의 자리를 이동시키기만 했을 뿐인 여전한 신지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무수한 이가 특히나 신지다.
소년은 정말로 신화가 되는 일에 성공했다.
신화는 스토리의 원형이다.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 그리고 이카리 신지를 관통하는 그 어떤 심리적 소재가 새로운 신화의 복음서를 구성한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신화적 스토리텔링이 담고 있는 그 핵심을 '이카리 신지 콤플렉스'라고 명명해보자.
이것은 분명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변종이다.
아버지를 증오하며, 어머니와 결합하고 싶어한다. 이 역동이 조금 더 입체화되어 있다.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어머니에게 포함되고 싶어하면서도 어머니를 지배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미숙한 소년의 형태로 남성에게는 피해자의 모습이 되어 권위를 빼앗고 싶어하고, 여성에게는 우리 강아지의 모습이 되어 가스라이팅하고 싶어한다.
아재가 되어서도 이렇게 산다.
이 또한 작고 약하고 못난 것에 대한 집착이며, 그러한 탐닉주의다.
작고 약하고 못난 것들, 적어도 과거에 그렇게 인식되었던 것들은 이미 디즈니도 점령한지 오래다.
크고 강하고 멋지기만 하기보다는 뭔가 좀 작고 약하고 못난 부분이 있어야 인기연예인이 된다. "우리가 지켜줄게요!"라는 양육욕을 불러 일으켜 권위를 쟁취하는 일에 더욱 성공적일 수 있다.
지구촌의 대기는 유독하지 않고, 바야흐로 유치하다.
유치함이 숭고한 절대적 이념 같은 것으로 포장되는 것은 미시마 유키오가 행위했던 그대로다.
한 번 더 질책되면 "약해서 그랬어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ㅜㅜ"라는 말을 다자이 오사무가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대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언어적 할복'의 전략이다. 미시마 유키오만큼이나 다자이 오사무도 할복쟁이다
불쌍한듯 원망스럽게, 그러나 그 원망을 잽싸게 자기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져가려는 신지의 눈빛은, 실은 피해자의 것이 아니라 심판자의 것이다. 소년은 지금 세상의 모든 것을 악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서 자기가 제일 악한 존재라고 항변하겠지만, 그것은 미학적 효과의 의도다. 가장 비극적으로 자기를 형상화함으로써 특별함의 이상적인 지위를 얻어내고자 하는 주술이다.
데카당스, 이카리 신지 콤플렉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데카당스의 색채를 입은 것이다.
작고 약하고 못난 것이, 최고의 권위를 얻어 최상의 미학적 알파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비현실적 이상'의 당위적인 강제가 여기에는 있다.
쉽게 말하면,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우리는 이 스토리텔링에 의해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흑어공주가 사랑스럽지 않다.
이것은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타자를 향한 감수성을 촉진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정심을 소비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가장 여유로운 자들이 위에서 안쓰럽게 내려다보며 기꺼이 소비하는 심리적 잉여자원, 그것이 바로 '동정심'이다.
나아가 가장 여유를 가장하고 싶은 이들이 위에서 안쓰럽게 내려다보며 소비하고 싶어하는 것 또한 '동정심'이다.
이 동정심을 촉발하기 위해, 이카리 신지 콤플렉스는 삼위의 위격으로 구성되어 작동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나 좀 알아줘."
이렇게 말하는 '고백자'가 있다. 그러면 뒤이어 '연결자'가 출현한다.
"그래. 혼자 얼마나 열심히 했나. 구구절절. 이제 당신들이 좀 도와야 한다."
그러면 그 설명을 듣고는 이제 '지지자'가 등장한다.
"어머 신지야 몰랐어. ㅜㅜ 이제 괜찮아. 이제 내가 왔다구. 여기 내가 있잖아. 다 안아줄거야. 다 알아줄거야. 넌 혼자가 아니야. 하고 싶은 거 다해.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야. 네 이야기를 시작해. 이제 펜을 들어 멋지게 네 자신을 그려봐. 우리가 다 지켜보고 있어."
이 '고백자' '연결자' '지지자'는 고전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
'주인공' '작가(나레이터)' '독자'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이카리 신지 콤플렉스는 스토리텔링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바로 그 내용의 스토리텔링이 낳은 역동인 셈이다.
이처럼 이 새로운 신화는 사람들이 더 많이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는 이념을 보급하는 스토리텔링으로 기능한다.
목적은 무엇인가?
동정심을 쥐어짜내기 위해서다.
잉여자원을 쥐어짜내기 위해서다.
더 쉽게 말해보자.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가진 이에게서 그 힘과 자원을 취하고자 할 때 활용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다.
이 방식은 자기를 잘난 듯이 묘사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병신같은' 허술함을 남긴다. 그리고 바로 그 구멍이 동정심이 유입될 창구다.
누군가는 자기의 권태를 잠깐 잊게 해준 광대의 촌극에 대한 공연비처럼 지불하고, 다른 누군가는 자기보다 못나게 보이는 이를 지원해줌으로써 그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을 얻을 수 있었던 그 대가로 지불한다.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동정심을 자극해서 힘과 자원을 얻어내는 그 스토리텔링의 방법을 배우고자 지불한다.
결국 이 콤플렉스는 오늘날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의 방법론으로 정립되기에 이른다.
"작고 약하고 못난 것이 되면 성공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똑똑하고 멋지며 성공한 사람인 척해야 하는 기술을 수반한다. 그래야 "어이구 저 굼벵이녀석 구르는 것 좀 봐. 기특하기도 하지 원."이라며 더 작고 약하고 못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니체가 그토록 혐오한 '병든 것에 대한 예찬'이다.
일부러 병든 척하는 것이 진짜 병이다.
순정만화를 보고는 엄마에게 자기도 백혈병에 걸려 왕자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면 과거에는 밥주걱으로 맞았다. 아마도 그게 이러한 종류의 병에 특효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정신병은 오히려 예찬된다.
병든 것이 예찬되는 것은 그 사회가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이 그렇다면, 지구는 지금 중2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인류보완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현재 신지 엄마의 자궁 속일지도 모른다.
동정심을 자주 쉽게 제공하는 것은 모성의 세력이다. 때문에 이카리 신지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은 엄마들을 주요 독자로 삼는다. 그리고 자신은 작가로서 자기를 소설속 주인공처럼 대상화해 스토리텔링을 한 뒤, 그 스토리를 엄마독자들에게 공급한다.
그래서 이카리 신지 콤플렉스는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 그리고 안노 히데아키가 그러했듯이 마마보이의 역동을 묘사하고 있다.
오이디푸스처럼 아빠를 죽일 힘은 없으니 대신 엄마의 동정심을 자극해 움직여서 아빠를 무력하게 만들고 자신이 대신 그 왕좌에 오르고자 하는 것이다.
부성으로 상징되는 제도권에 대해 오늘날 자주 취해지는 숏컷의 방식이다.
엄마들에게 낫과 호미를 들려 전선에 내보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 마마보이들의 혁명의 방식은 한층 노골적이 되었다. 모성에 대한 가스라이팅은 본격적이다.
자신이 열심히 목을 조르다가 오히려 피해자인 척 울며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던 신지에게 "기분 나빠."라고 내뱉은 아스카는 옳았지만 이제는 없다. 그녀도 성공적으로 가스라이팅되어 모든 마음이 온전한 이상적인 세계로 날아갔다.
어떻든 엄마 같은 마누라를 얻은 소년이 이겼고, 소년은 성공신화가 되었다.
이 성공신화의 스토리텔링을 쫓아 무수한 아재들도 작고 약하고 못난 소년을 가슴 깊이 꿈꾸며 동정심을 자극할 그윽한 눈빛을 보낸다.
이카리 신지 콤플렉스는 아마도 지구촌의 재앙이다.
사도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도를 기다리며> 이것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부조리극의 이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