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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Oct 02. 2019

실존과 마음

"마음은 문제가 아니라 신비다"



  동시대적 실존상담의 대가인 커크 슈나이더(Kirk Schneider)는 경외감(awe)에 대해 말한다.


  이는 기존에는 종교성 내지 영성 등으로 불리며, 실존주의가 태생부터 내포하고 있던 종교적 지향 속에서 체험하게 되는 정동을 일컫는 표현이다.


  종교학자인 루돌프 오토(Rudolf Otto)가 말하는 것처럼, 이 경외감은 일견 상반되는 두 가지의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하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감동이다. 미지(未知)를 조우했을 때 우리에게서 유발되는 역설적인 정동이라고 할 수 있다.


  슈나이더는 일상적으로 쓰이곤 하는 'awesome'이라는 표현 속에는 이 경외감의 함의가 이미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경외감의 실제는 우리의 일상 속에 이미 심층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잘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멋지게 느껴지는 것을 표현하는 유사한 영단어로는 또한 'vibe'라는 표현이 있다. '떨린다' '전율한다' 등의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감정은 에너지고, 파동이고, 진동이다. 소리굽쇠가 떨리듯이 감정은 우리를 떨리게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리를 떨리게 하는 감정을 바로 경외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로, '느낌있다' '감온다' '멋스럽다' 등의 표현 또한 이러한 경외감을 함축하는 표현들이다. 소위 시쳇말로 '간지난다'라는 표현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표현들은 전부 다, 말로 잘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어떠한 새로운 떨림으로 우리에게 체험되는 강렬한 느낌을 묘사하고자 하는 표현들이다.


  이 경외감을, 우리가 그 전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차마 우리에게 이러한 현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도 못했던 미지가 들이닥쳤을 때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충격이라고 정의하면, 아마도 가장 정확할 것이다.


  이른바, 경외감은 첫키스의 놀람이다.


  그리고 실존은 바로 이러한 경외감에 개방된 상태다.


  곧, 실존은 미지 앞에 놀랄 준비가 된 상태다. 아니 이미 놀라고 있는 상태다.


  실존주의에서 이 어안이 벙벙한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부조리라는 용어는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답이라고 의심치 않으며 믿어왔던 것이 사실적으로 붕괴될 때, 우리는 이 부조리를 체험한다. 곧, 부조리를 체험한다는 것은 거짓된 정답이 해체되고, 그 무너진 벽 앞에 새롭게 다가온 미지를 조우하고 있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실존은 깜짝 놀란 상태다. 전율 속에서, 두렵지만 결코 싫지만은 않은 새로운 바람을 맞이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실존이 조우하게 된 가장 큰 미지가, 가장 큰 경외감의 촉발자가 바로 마음이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마음이란 것이 개인의 것이 되었다.


  이를 비유하자면, 어느날 컴퓨터를 켰는데 늘 익숙하게 뜨던 MS-DOS 화면이 아니라 윈도우 화면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또는 어느날 잠에서 깼더니 피처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깨톡깨톡 소리 앞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갑작스럽게 우리의 것이 되어버린 마음을 문제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 갑작스러워 놀라게 되었던 그 까닭이다. 단지 그 이유다.


  이는 마치, 차마 내 연인이 될 것이라고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이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첫키스를 선물한 현실과도 같다. 너무나 생소한 이 현실 앞에 우리는 그 연인을 무심코 밀어내고 두둠칫 어색한 품새만 취하게 될 뿐이었다. 마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이와 같다.


  마음은 의도고, 꿈이고, 소망이다. 더 원색적인 표현으로는 욕망이라고 해도 좋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 마음은 처음부터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만이 가진 것이었고, 우리는 그저 신의 욕망이 시키는 바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피동자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는 왕이나 제사장 같은 최상위 지배층이 이 마음이란 것의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었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귀족들이 또한 마음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이 미천한 우리도 마음이란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은 비로소 현대의 문이 열리면서부터다. 집단주의적 사고에서 탈피를 시작하고 자기동일성의 폭력에 저항하면서부터, 곧 실존주의가 개인의 중요성을 부르짖으면서부터 이와 궤를 함께해 마음은 우리 모두의 것이, 즉 개개인의 것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니체와 프로이트의 공은 혁혁하다.


  니체는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것이, 하늘의 도덕이 아닌 대지의 삶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말하며, 도덕주의적 금수저 엘리트들이 마음을 독점하고 있던 현실을 박살내고 마음의 생명력을 모든 인간에게 개방했으며, 프로이트는 아예 이 사실을 공고화하기 위해 개인무의식이라는 이름의 구조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신들만이 독점적으로 쓰고 있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한 프로메테우스와도 같은 업적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문제라고 느끼는 상황은, 그것이 실제로 곤란한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좋은 것을 감히 우리가 자유롭게 향유해도 되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에 야기된다.


  그렇게 근거없는 자신감의 부족으로 다소간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를 위해 또 니체의 후예들인 후기구조주의, 소위 포스트모던의 사조가 출현해 우리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마음에는 진정한 정답 같은 것이 없으니, 눈치보지 말고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마음을 느낌껏 표현하라고, 그게 삶이라고, 과감한 선언을 내지르고, 또 내질렀다.


  다시 한 번, 실존은 바로 이러한 상태다.


  실존은 곧 자기의 마음이라는 것을 처음 갖게 된 인간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인간은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기의 실존하는 몸이라는 것이 단순한 짐덩어리가 아니라, 마음을 누릴 수 있는 터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몸으로 살아가는 대지의 삶이라는 것이, 우리가 마음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더는, 몸은 저 멀리 하늘의 도덕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기만적으로 주장되는 마음에 대해, 늘 어찌할지 몰라 치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은 몸에 근거한 기억에 의해, 그렇게 생겨난 정체성의 고집에 의해, 그 자유로움을 잃고 억압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게 된 것이다.


  곧, 마음은 이제 더는 문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마음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제(problem)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에게 경외감을 제공하는 문제(question)다. 이 물음(question)으로서의 마음을 우리는 바로 신비(mystery)라고 부른다.


  이처럼 마음이 신비로 알려지는 까닭에, 마음을 체험할 수 있는 근거인 우리의 몸 또한 신비의 터가 된다.


  그래서 실존은 신비다. 사실적인 몸의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은 신비다.


  은폐된 것(occult)으로서의 신비가 아니라, 더 많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개방해가는 신비다.


  신만이 가장 고귀한 마음의 담지자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가장 고귀한 우리 자신이 된다. 귀족만이 가장 풍요로운 마음의 담지자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가장 풍요로운 우리 자신이 된다. 도덕적 엘리트만이 가장 선한 마음의 담지자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가장 선한 우리 자신이 된다.


  마음으로 인해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우리가 꿈꿨던 우리 자신이 기꺼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현실은 우리에게 가능한 현실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우리 자신보다, 곧 우리가 스스로 제한했던 우리 자신보다, 더욱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이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 앞에서 이 물음은 반드시 요청된다.


  "정말로?"


  이 물음이 떠오른 이는 지금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굽쇠로 울고 있는 것이다. 잘 모르겠지만 왠지 멋진 그것을 '어우(awe)' 하며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신비가 그의 앞에 이미 다가와있다.






아이유 - 마음
툭 웃음이 터지면 그건 너
쿵 내려앉으면은 그건 너
축 머금고 있다면 그건 너
둥 울림이 생긴다면 그건 너
그대를 보며
나는 더운 숨을 쉬어요
아픈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이겠죠
나를 알아주지 않으셔도 돼요
찾아오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눈을 떼지 못해
하루종일 눈이 시려요
슬픈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이겠죠
제게 대답하지 않으셔도 돼요
달래주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세상 모든 게 죽고 새로 태어나
다시 늙어갈 때에도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 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Goo Goo Dolls - Without You Here
You're changing everything
당신은 모든 것을 바꾸고 있어요
You're changing everything in me
당신은 내 안에서 모든 것을 바꾸고 있죠
And now, now that you're near
그리고 지금, 당신이 가까이 있는 이 순간
There's nothing more without you
당신이 없으면 더는 아무 것도 없어요
Without you here
당신이 여기에 없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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