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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Apr 15. 2023

음악이 있는 종교심리학 #3

"스위트피 - 지금 부르고 있는 나의 노래도"

스위트피 - 지금 부르고 있는 나의 노래도




  붓다가 했던 일이 이 노래와 같다.


  붓다는 '지금 여기'를 살았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지금 여기'는 포착될 수 없다. 어떤 것의 안에서 그것을 포착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붓다가 한 멋진 일은 '끝'을 '지금 여기'로 끌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여기'의 바깥으로 나가 '끝'에 서서 보았다.


  그러니 보였다. '지금 여기'라는 것이.


  또한 보였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그 자취가.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 몰랐어

  > 누가 내게 가르쳐 줄 수 있다면

  > 아마 당신은 지금 날 위해

  > 따뜻한 아침을 준비할 수 있겠지


  삶에 대해서는 늘 몰랐고, 그래서 삶은 언제나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 듯도 싶었다. 사랑했던 것들이 우리를 떠나간 것은 우리가 삶을 잘 몰랐기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를 떠난 모든 대상은 따듯함으로 기억된다. '끝'에서 알게 된 것은 그 사실이다. 떠올리면 '지금 여기'가 따듯하다. 마치 그 대상이 있는 것처럼. 어쩌면 있을 때보다도 더 선명하게 온기어리다. 떠나간 것들의 모든 온기가 '지금 날 위해' 존재하고 있다.


  > 돌이켜 보면 후회가 더 많은 날들

  > 어쩔줄 몰라 정말 난 바보처럼

  > 그치지 않던 슬픈 눈물들

  > 세상이 미워지던 순간도 있었지


  잘 못했던 자신을 후회하고 자신에게 잘못했던 세상도 미워했다. 그리고 후회와 미움은 눈물 속에서 흘러갔다.


  눈물의 총량은 그만큼 자신이 소중했던 정도와 또 세상이 소중했던 정도와 일치할 것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이해했을 때 눈물은 멎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눈물이 우리를 데리고 가고 싶었던 그 정확한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란 언제나 이처럼 가장 소중한 것들로만 가득했다. 가득하게 사랑하던 순간들이었다.


  > 하루가 가고 또 몇년이 지나면

  > 우린 여기 다시 모이지 않겠지

  > 당신의 꿈도 나의 아픔도

  > 지금 부르고 있는 노래도

  > 그렇게

  > 그렇게


  그렇게 사랑했던 순간들이 다 흩어질 것이다.


  살아진 것은 사라진 것이다.


  '끝'에서 보니 그러했다. 색즉시공이었다.


  그리고 붓다의 진실된 위대함은 바로 다음 순간에 펼쳐진다.


  '끝'이라고 하는 바깥에서 보고 있던 그는 이제 보는 일을 멈춘다. 그리고는 '끝'을 알면서도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다. '끝'의 존재로서 '지금 여기'로 귀환한다.


  붓다는 최종의 선언을 한다. 완성의 선언을 한다.


  "사라질 것은 살아질 것이다."


  공즉시색이었고, 단 한 번뿐인 이 삶은 통째로 긍정되었다.


  그렇게 흩어질 것들을 나는 다 사랑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를 가장 완벽한 최종의 것으로서 자신을 다 바쳐서 이 삶의 완성을 알리고 있었다. 영원히도.


  지금 부르고 있는 나의 노래도.


  그렇게 영원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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