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51

"깨달음도 맥거핀"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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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도. 맥.거.핀.이.다.


맥거핀(macguffin)은 히치콕이 고안한 극적 장치의 개념이다.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관객들의 시선을 휘어잡지만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극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으며 철저하게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극을 전개하는 동력이 될 때, 그리고 그 자신은 잊혀질 때, 우리는 그것을 맥거핀이라고 부른다.


깨달음도 분명 이와 같다.


깨달음이라는 언술에는 왠지 모르게 매우 중요한 것이 담겨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어딘지 모르게 사이비 같아 수상해보이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끌림이 있다. 이 효과에 흡인된 이들은 그래서 깨달음에 대해 주장하고, 논쟁하며, 검증하는 방식으로 깨달음에 대한 이미지를 부풀려나간다.


그러다가 깨닫게 되었을 때나, 또는 깨닫지 않기를 선택했을 때, 분명하게 알게 된다.


깨.달.음.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음에는 아무 내용이 없다. 내용없음이 굳이 말하자면 깨달음의 내용이다.


깨달음은 전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다.


이것은 성배 안에 담긴 마법처럼 훌륭한 어떤 내용물이 아니다.


심지어는 성배조차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감각에 가깝다.


늘 일상적으로 위스키를 마시며 취기의 기쁨만큼이나 숙취로 고통받던 이가, 어느 날 자신이 들고 있는 이것이 위스키가 아니라 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위스키가 담겨 있어서 위스키인 줄 알았지만, 이것은 컵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위스키만이 아니라 어떤 내용물이라도 채울 수 있던 바로 그런 컵이었다. 여기에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준다는 성배와도 같았다.


그러다가 다시 또 알게 된다.


이것은 컵도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며 주장하고 있던 그런 자유는 자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컵에 의존해서 생겨난 복지혜택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어떠한 이들은 컵의 내용물뿐만이 아니라 컵 자체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한참을 잘 놀았다. 맥거핀이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 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그러했다. 맥머핀이나 먹으러 간다.


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무아(無我)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금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어떠한 존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무의미성'을 말하는 것이다.


'무의미성'이라는 표현은 일상적인 용법 속에서 '무가치성'과 거의 동일하게 쓰인다.


그러나 두 개념은 엄밀한 차원에서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무가치성은 가치평가에 대한 것이다. '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의미성은 다르다. 이것은 의미탐구에 대한 것이다. 그 엄밀한 뜻은 '의미의 근원'이다.


실존철학에서는 '무의미성'이라고 자주 표현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를 '공(空)'이라고 묘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하는, 건조하고, 냉담하며, 허무하기 짝이 없고, 금욕적이며, 생기없고, 외로움에 찌든 것 같은 인상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가장 일상적인 표현으로는 이것을 '자유'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놀거나, 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논다는 것은, 곧 자.유.를. 운.용.하.는. 일.이다.


우리가 자유를 갖다 쓸 수 있는 가장 멋지고 재미있는 방식은 바로 사랑이다. 갈매기 조나단은 그렇게 얘기하며, 우리는 동의할 수 있다.


사랑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무의미성에서 의미가 잉태된다.


만남은 출산의 양식이다.


나는 전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며, 총체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다. 고로, 나.는. 의.미.의. 근.원.이.다. 이 말은 진실 그 자체인데, 의미라는 것은 애초 나와 결부되어서만이 창출되는 것인 까닭이다.


의미는 "그것이 나에게 의미있는가?"를 물어야만 비로소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물음을 통해 나와 타자를 엮어야만 그 만남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의미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면, 그러한 나는 가치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의미가 필요하지 않다. 의미에 대한 궁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자기가 실현한 가치로 소비될 뿐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만이 의미를 물을 수 있다. '왜'라는 실존을 물을 수 있다.


'그 무엇'인 것은 더욱 높은 가치만을 묻는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어떻게'의 방법론을 묻는다.


그리고 사랑은 '어떻게' 속에 있지 않고 '왜' 속에 있다.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궁리하는 동안 우리는 사실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더욱 증진시켜줄 도구적 소재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왜 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은 신비다.


아무 것도 아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은 살아있는 기적이다.


깨달음이라는 맥거핀은 바로 이 전개를 위해 활용되는 장치다.


히치콕의 영화를 보던 관객이 히치콕이 준비한 맥거핀에 흡인되어 놀다가 그 무의미성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히치콕과 놀고 있던 것이며, 그렇게 히치콕을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발견한다. 맥거핀의 무의미성은 그 둘이 만나기 위한 장치였던 셈이다. 이와 같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흡인되어 노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우리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발견하게 되며, 거기에는 만남으로의 초대가 있었다는 사실 또한 함께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 자신에게도 이 만남에의 여정을 떠날 즐거운 채비가 갖추어졌다는 사실 역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은. 만.나.기. 위.한. 것.이.다.


깨달음도 다만 이 만남을 위한 맥거핀일 뿐이다.


만.남.만.이. 전.부.다.


다른 모든 것은 그저 만나기 위한 어여쁜 핑계들.


단순하고, 명료하며, 사실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멋지고 재미있는 이 영원의 순간들을 향한 비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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