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종교심리학 #8

"Goo Goo Dolls - Autumn Leaves"

by 깨닫는마음씨
Goo Goo Dolls - Autumn Leaves




구구돌스의 노래 중에는 종교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노래가 많다. 그것은 이들이 정직하게 사랑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는 자신이 이미 아는 것에 대해 "제가 이렇게 다 알고 잘났어요. 이 놀라운 경험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노래보따리 풀어드려요."라며 전시하는 행위가 아니다.


노래하는 이는 자신이 노래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탐구하는 중에 있다.


사랑을 노래하는 이는 사랑을 탐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사랑에 대한 탐구를 우리는 다른 말로 종교적 탐구라고 부른다.


사랑은 언제나 타자를 향한 사랑일 수밖에 없다.


자기사랑이라는 것이 성립될 때는 자기를 정말로 타자로서 경험할 때뿐이다.


타자는 우리가 알아주거나, 돌봐주거나, 구원해줄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타자가 우리에게 한다. 타자는 우리에게 밀려오는 사태와 같다. 우리가 실실 웃으며 어린아이 다루듯 조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욕망을 자극하여 우리가 원하는 결과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중적 소재를 다루면서 그 안에서 대중이 아직 모르는 깊은 차원의 것을 끄집어내 알려주겠다고 하는 이들은, 이 타자에 대한 감각이 흐려져 있거나 또는 마비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는 타자보다 위에 있지만 눈높이를 맞추어 타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먹여준다는 발상은, 사랑의 감수성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다. 이렇게 사는 이들을 살펴보면 늘 지독한 인간무시의 태도를 예의바른 태도 안에 교묘히 은폐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그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우리에게 가장 타자인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이 사실은 분명해진다.


가장 타자인 것, 그것은 바로 삶이다.


타자에 대한 무시는 근본적으로 이 삶에 대한 무시와 직결된다.


삶을 자기 아래로 두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탐구들은 이러한 태도를 기각하고, 타자성을 띤 삶을 자기가 아래에 서서 다시 배워가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삶에 대한 사랑이며, 삶에 대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In the trees

> 나무 위에

> The autumn breeze

> 가을바람이 불고

> The winter's cold

> 추운 겨울이 와도

> But summer's soul is underneath

> 그러나 여름의 영혼은 그 아래 있어

> The sun is low

> 해가 지고

> The heavy sky

> 내려앉는 하늘

> I sometimes watch it

> 난 가끔 그것을 봐

> Til it sinks below the tide

> 물결 아래로 가라앉을 때까지


겨울이 오고 해가 진다. 어떤 중요한 것이 끝났다.


우리가 삶의 타자성을 부정하고 무시하게 되는 때는 바로 이 지점이다. 성대한 여름의 영광은 우리의 연인처럼 경험되었다. 그러나 연인이 우리에게 갑자기 등을 돌렸다. 이제는 더는 상냥한 눈길을 맞추지 않는다. 그는 더는 우리의 연인이 아니라 낯선 이다. 따뜻함이 좋았던 만큼 냉담함을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부정하고 싶고, 무시하고 싶다.


어떻게든 형식적으로나마 연인관계를 유지하며,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싶다. 억지로 마음을 돌리기 위해 주술도 집행한다. 맹렬히 화도 내보다가, 지쳐 쓰러져 우울감에 잠겨든다.


그 모든 행위 앞에서 그러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삶은 자신을 우리의 소유물처럼 대하는 그 모든 시도를 전부 다 기각시킨다.


우리는 반드시 패배할 것이다.


> So I wait

> 그래서 나는 기다려

> So I wait

> 그래서 나는 기다려


패배라고 인식하는 일은 차라리 좋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은 가득 좋다.


삶은 우리가 임의로 조종할 수 없는 타자다.


그리고 우리는 타자를 향한 가장 거룩한 태도를 발현한다.


그것은 '기다림'이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 Life is change

> 삶은 변화하고

> We move on

> 우리도 이동한다


삶이 변화하기를 기다린다.


변화를 낳는 것은 언제나 아주 그윽한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방치나 무관심이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오히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타자를 향한 관심으로 가득하다. 온종일 네 생각뿐이다.


그렇다면 삶은 왜 우리에게 등을 돌려서라도 변화하려고 했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기다려야만 했는가?


삶이 등을 돌린 그 자리는 우리가 삶을 배신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더는 움직일 수 없이 막혔던 그 자리다.


삶이 배신해서 우리가 멈추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배신해 멈추어 있었던 것이다.


기다림은 우리가 그렇게 이미 막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재확인이다. 막혔기에 기다리는 것만이 원래 우리가 할 수 있던 유일한 일이다.


삶은 자신에게 등을 돌려 배신한 우리의 바로 그 모습까지도 끌어안기 위해 더 큰 형상이 필요했다. 형상을 갖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돋아난 날개로 가을낙엽 같은 우리를 휘몰아쳐 수평선을 건넌다.


삶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켰고,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무겁게 닫혀있던 하늘을 가로질러, 이제 이동한다.


> And where you go

> 네가 어디로 가든 간에

> I hope the summer goes along

> 여름이 함께하기를

> So I wait

>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 And I wait

> 나는 기다린다


우리가 어디로 이동해가든 간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삶이 함께한다.


여름은 여름의 영혼과 늘 함께 간다.


그래서 건너간 그 자리에 다시 여름이 올 것이다. 다시 또 영화롭게 이룰 것이다.


삶이 우리를.


이 사실을 신뢰하며, 우리는 기다린다.


우리가 타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타자가 우리에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신뢰하며, 우리는 그윽하게 기다린다. 낙엽빛깔처럼.


그 빛은 분명히 여름햇살을 닮았고, 여름햇살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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