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쯤 일어나 씻고 주방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굿 필그림'모드.
주방에서는 타냐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 '엔드 오브 더 월드'를 얘기하던 식탁 옆 의자에 크레덴시알 하나가 놓여있어서 들어보니... 내 것이다!?
'내 크레덴시알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분명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두었었는데.. 그러고 보니 재킷이 안보였다.
혹시 재킷을 누가 치웠다면 크레덴시알만 따로 빼놓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도 자주 내렸고, 무엇보다 동생의 생일선물이었기에 재킷을 더욱 찾고 싶었다.
그렇게 1층과 2층을 오르락내리락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재킷을 찾고 있었는데,
사무엘이 멍한 얼굴로 침대 곁에 서서 "내 아이패드가 안 보여"라고 읊조렸다.
침대 주위를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아이패드는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목걸이와 현금 200유로도 없어졌단다.
사무엘은 어젯밤에 지갑이 들어있는 바지와 아이패드, 목걸이를 자기 침대와 페드로 침대 사이의 바닥에 놓고 잠이 들었단다.
그러고 보니 페드로만 보이질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페드로의 침대는 비어있었고 가장 일찍 일어났던 타냐도 그를 보지 못했단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그리고 재킷을 의자에 걸어두었던 게 떠올랐다.
사무엘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다 의자에 걸려있던 내 재킷을 보고 뒤져서 금품이 없으니 재킷만 갖고 가버린 것 같았다.
그나마 크레덴시알은 남겨두었다.
내 재킷도 재킷이지만 까미노의 모든 기록과 소중한 정보가 담긴 아이패드를 잃어버린 사무엘의 심정은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을 맞이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출근한 관리인이 자초지종을 듣고는 바로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금방 도착했고 형식적이지만 배낭을 열어 일일이 소지품들을 확인해야 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 사람씩 차례로 배낭 속 물건들을 몽땅 꺼내보였다.
괜히 사무엘이 미안해한다.
다행(?)스럽게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배낭에서는 사라진 물건들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페드로가 결정적인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프랑스 아줌마 한분이 '엔드 오브 스터프' 라며 서글픈 농담을 던졌다.
출발하려던 타냐가 여벌이 있다며 배낭 속에서 연두색 재킷을 꺼내 주었다.
도둑맞은, 생일선물로 받은 것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선뜻 재킷을 내어준 타냐가 너무 고마웠다.
"쓰바씨바..."
오늘은 까미노 시작 후 처음으로 차를 탔다.
경찰차.
한국에서도 타보지 못했던 경찰차를 머나먼 타국 스페인에서 타보게 되다니..
사무엘과 나는 간단한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차에 올랐다.
통역을 위해 할프와 프랑스 여성 한분이 동행을 했다.
파출소는 한가했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
도무지 할 일이 없어 보이는 분위기.
우리 때문에 그나마 파출소 존재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것 같았다.
아이패드와 현금 200유로, 그리고 목걸이를 도둑맞은 사무엘에 대해서는 꼼꼼히 묻고 기록하는 반면에 달랑 재킷 하나만 도둑맞은 나에 대해서는 경찰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게 어떤 재킷인데.. 벌써부터 동생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경찰은 알베르게마다 페드로의 수배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사무엘의 아이패드만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한바탕 소동으로 아침도 먹지 못한 우리는 가까운 수퍼마켓에 들어가 간단한 먹거리를 구입했다.
다행히 사무엘에겐 신용카드가 남아있었다.
초콜릿과 도넛을 사는 사무엘.
"노 도넛 노 까미노."
'도넛 없는 까미노는 까미노가 아니야' 농담으로 우울한 기분을 달래 본다.
다시 숙소까지 걸어와 까미노를 시작했다.
위크앤드 단체 필그림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려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부엔 까미노-' 하니까
사무엘이 퉁명스럽게 '투어리스트!'라고 내뱉었다.
묵묵히 걷다 보니 아주 친근한 단어가 적혀있는 이정표가 보였다. ‘PORNOS’.
마을 이름이 이리 음란해도 되는건가? 너무 노골적이네.
다가가 보니 누군가 'FORNOS'라는 마을 이름에 살짝 손을 대서 'PORNOS'로 바꿔놓았다.
이 마을의 이름은 언젠가 반드시 바뀔 운명이었겠다. 멀쩡했다면 우리가 그냥 지나치지 않았겠지.
‘포르노들’ 앞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한다.
비록 오늘은 언 럭키가이지만.. 무한 긍정 돌아이 사무엘.
사무엘에게 바나나와 사과를 건넸더니 바나나는 놔두고 사과를 집어간다. 애플.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이렇게 비 내리는 날 인적 없는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조금 스릴이 있다.
게다가 떼 지어 들려오는 개소리와 총소리까지 더해진다면 스릴은 배가 된다.
허물을 벗듯 껍질이 벗겨져 늘어진 나무들은 우거졌고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는 게 마치 정글 같다.
사무엘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불안하게 마음을 졸이며 걸었을 것이 분명한 이길.
한 사람의 동행이 아주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숲을 벗어나 한참을 도로 위를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이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는 없었다.
매연과 먼지가 풀풀 날리는 뜨거운 아스팔트라면 질색이었겠지만,
자동차가 없는 비에 젖은 빈 도로를 걷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촉촉한 아스팔트가 부드러운 윤기를 뽐내고 있었다.
아예 도로 한복판으로 걸었다.
지구에 우리만 남은 기분...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역이 아니라 지구에 말이다.
이런 길을 걷노라면 영화 '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 가 떠오른다.
영화에서 '리버 피닉스'는 이런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쓰러져 잠이 들었다.
영화의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고 그런 이미지만 남아있다.
참 멋진 배우였는데..
강과 불사조라니 이름마저 멋지지 않은가.
70년 개띠, 나랑 동갑인데 그의 출연작 중 '스탠바이 미'라는 영화가 있다.
네 명의 소년이 마을 밖 외딴 숲 속에 시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시체를 찾아 떠나는 이틀간의 모험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 말미에 이런 나레이션이 흐른다.
'단지 이틀 동안 나갔다 왔지만 마을이 달라진 것 같았다. 작게 느껴졌다.'
내게 '산티아고'는 소년들의 '시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마을을 벗어나 '시체'를 찾아 떠나는 것이나, 한국을 벗어나 '야고보의 무덤'을 향해 걷는 것이나..
삶 또한 무덤을 향해가는 여정이다.까미노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한국이 더 작게 느껴지려나.
그것도 겨우 이틀이 아닌 50여 일이나 나갔다 왔으니 아주 많이 작게.
영화가 끝나며 흐르는 노래 ‘Stand By Me’ 가 잠시 추억에 빠져 아련해진 우리를, 현실로 부드럽고 친절하게 이끌어주는 것도 좋았다.
'When the night has come and the land is dark and the moon is the only light we'll see... '
타냐가 준 재킷은 내게 조금 컸다.
내가 마르기는 했어도 작은 편은 아닌데 헐렁하다.
텍을 들여다보니 사이즈가 'S'.
'이게 스몰이란 말이야? 혹시 '슈퍼'아니야?'
러시안 스몰이란 말이지..
낡은 데다 헐렁하기까지 한 외투.
어디 잘 지어야 할 게 이름뿐일까. 아이디도 잘 지었어야 했는데.. 블로그에서나 카페에서도 그랬고 어디든 회원 가입할 때면 아이디는 항상 ‘oldcoat’ 혹은 '낡은 외투'로 기입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 몸에 꼭 맞는 노스페이스' 나 '신상 명품 코트' 정도로 지을걸.
내가 지었으니 누구 탓도 할 수 없다.
그래도 타냐의 낡은 재킷이 좋았다.
가볍고 어느 정도 방수도 되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꺼내 입고 필요 없을 때는 둘둘 말아 배낭 속에 아무렇게나 처박아 두어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얼룩지든, 해지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으며 도둑맞을 염려도 없다.
무엇보다 타냐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그런 사람 어디 없나.
외로움이 몰려올 때 함께 있어주고 슬픔이 쏟아질 때 위로해주는...
그러다가 나몰라라 해도 항상 그 자리에 구겨져 있는 낡은 외투 같은 그런 사람.
이기적이다 못해 정말 못됐다.
싼티아고를 지나면서부터 비가 오는 중에도 빨래를 널어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자주 해서인지, 귀찮아서 그냥 그대로 둔 것도 같은데, 우리는 이것을 '갈리시안 스타일 빨래 말리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빨래 말리기가 아니라 빨래를 하기 위해 널어둔 것이 아닌가 싶기도.
깨끗한 비와 뜨거운 태양을 이용한 친환경 자연 빨래.
날이 개이며 구름이 멀리 언덕 너머로 물러가는 풍경이 상쾌하다.
When the night has come and the land is dark and the moon is the only light we'll see...
땅거미가 진 저녁이 되었을 때(달빛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지만) 올베이로아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의 관리인은 저녁을 먹으러 갔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아 배낭을 내려놓고 식료품을 구입하러 나섰다.
식당 종업원에게 빵을 사고 다시 길을 물어 가게를 찾아 쌀과 홍합, 참치 통조림과 토마토를 샀다.
역시 사무엘은 식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캔맥주도 6개짜리 묶음으로 집어 들었다.
식당에서 산 빵은 갈리시아 지역만의 특산 빵이라고 했는데 이전까지의 빵보다는 좀 더 찰졌다.
숙소로 돌아오니 관리인이 와있었다.
스탬프를 받고 맞은편 건물의 도미토리룸으로 안내받았다.
이곳 알베르게는 주방과 관리실이 있는 건물과 도미토리룸이 있는 건물, 이렇게 둘로 나뉘어있다.
도미토리룸 1층에는 서너 명의 순례자가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프란시스코와 타냐의 배낭도 보였다.
우리는 한적한 2층으로 올라갔다.
불이 꺼진 2층의 숙소 구석에 한 사람이 누워있었는데 한국인이었다.
B와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만들 테니 함께 먹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한다.
가끔 거절당할까 봐 청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반갑게 응해주니 좋다.
사무엘도 그랬다.
까미노에서 여러 번 한국인을 만났고 그때마다 식사를 청하거나 와인을 권하면 대부분이 처음에는 '노 땡큐'라고 했다가 잠시 후에 '저스트 리틀.. '이라고 했다는 것.
우리 문화가 그러니 어쩌겠나.
처음에는 예의상 정중히 거절하고 두 번 세 번 더 청해야 응하지 않나.
그런데 서양사람들은 '노 땡큐' 이후 다시 청하지 않으니 우리 쪽에서 다시 '그럼 조금만..'이라고 할 밖에.
함께 주방으로 건너가 나는 밥을 짓고 사무엘과 B는 덮밥소스를 만들었다.
홍합 통조림 때문인지 조금 시큼한 맛이 났지만 먹을만하다.
맥주가 시원했다.
B는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피스테라와 무시아에 다녀왔다는데 무시아가 너무나 좋았단다.
'그렇다면 피스테라에 먼저 들렸다가 무시아를 마지막으로 할까..'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는 B가.
언뜻 표정이 밝기만 한 게 아닌 것 같아 '뭐 힘든 점은 없어요?' 했더니 B가 망설이다가 어렵게 얘기를 꺼낸다.
유로화가 다 떨어져 가는데 이곳에 은행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그럼 아까 '노땡큐.. 저스트 리틀..' 하지 않은 것도 혹시 저녁을 부실하게 먹어서였나.
내 몰골을 보아하니 넉넉한 것 같진 않은데 혹시나 여유가 된다면 환전해 줄 수 있느냐는 것.
안되면 내일 네그레이라에 가서 현금을 인출해야 하는데 만에 하나라도 인출이 안된다면 곤경에 처할 것 같았다.
50유로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했는데 뤼노 덕분에 경비를 많이 아꼈으므로 그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가장 많은 지출이 기껏해야 하루 22유로였고, 어떤 날은 채 5유로도 지출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주셨던 비상금이 들어있는 카드도 있었지만
나는 최대한 생색을 내면서, 나도 빠듯하지만 동포애를 발휘해서 큰 맘먹고 선행을 베푼다는 뉘앙스를 가득 풍기면서 지갑을 열었다.
그동안 많은 한국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만 했었는데 나도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왠지 빚을 갚은 기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B는 또 다른 인연이 있었다.
케빈 베이컨이라는 아주 매력 적는 배우가 있는데 출연작도 많았고,
무엇보다 인맥이 대단해 케빈 베이컨의 인맥을 통하면 6명 안에 모든 사람과 연결이 된다는 법칙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으로부터 수만 km 나 떨어진 유럽 대륙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B는
까미노를 떠나기 전 그만두었던 회사에 내 후임으로 들어왔던 길 대리의 친구였던 것.
나는 한 명만으로도 바로 B와 바로 연결이 된다.
케빈 베이컨 나오라 그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한국이 작게 느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 걸 체험할 수 있었다.
사무엘에게 고마운 것이 우울한 하루가 되기에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툭툭 털어버려서 덩달아 나도 도둑맞은 재킷을 거의 까맣게 잊은 듯했다.
타냐의 낡은 외투도 한몫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