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알베르게 1

발렌샤 - 폰테 데 리마

by 외투



포르투갈에서의 첫 알베르게, 발렌샤의 알베르게는 난방은 되지 않았지만 침낭 속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오히려 노출된 머리 부위가 시원했고 상쾌하게 잘 잘 수 있었다.

발레리오와 함께 빵과 과일로 아침을 먹었다.

어제 미처 둘러보지 못한 발렌샤를 구경하겠다며 발레리오는 배낭을 싸서 복도에 세워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먼저 숙소를 나선다.

그래서 오늘도 열쇠는 발레리오가.

발레리오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차오, 부엔 까미노"


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고 배낭을 꾸렸다.

문을 나서기 전, 발레리오의 배낭 위에 우리 동전 백 원짜리 하나를 올려놓았다.

작은 감사의 선물로.. 받아들였겠지?


파란 화살표가 좀 더 많이 보였다.

도배 정도는 아니지만 스페인에서보다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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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들도 텃세를 부리나 보다.

스페인에서는 노란 녀석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지만 포르투갈에서는 파란 녀석들이 나름 선방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워낙에 강력한 노란 녀석들이라 어쩔 수가 없다.

여전히 주류는 노란 화살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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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길이 잘 보존되어있다.

하나하나 박아 넣은 돌들이.. 때문에 내 휴대폰을 깨 먹었지만 견고해 보였다.

아직 포르투갈 특유의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냥 스페인과 비슷했다.

사람들과 얘기라도 해보면 언어라도 다르겠거니 하겠지만 길동무도 말동무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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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오의 말대로 산을 넘는다.

그리 높지 않았지만 언덕이 아닌 산이 틀림없었다.

도봉산의 어느 한 부분을 떼어다 놓은 것 같아 친숙했고 중간중간 나오는 이런 산길이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주말 산행같 다.

새삼 평지만 주구장창 걷는다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리막이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정비된 길에 친절한 화살표만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도,

험한 오르막길을 무거운 배낭을 지고 헤매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산 정상을 넘어 나오는 첫 번째 까페로 무조건 들어갔다.

스페인에서는 '바르'를 찾았지만 포르투갈에서는 '까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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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외딴 시골에 가면 라면도 끓여주고 막걸리도 파는 그런 구멍가게 같았는데,

까페 꼰 레체를 시켰더니 에스프레소처럼 아주 작은 찻잔에 담겨 나온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항상 까페 꼰 레체 '그란데'라고 강조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면 쎄르베사(맥주)였을텐데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어차피 맥주도 커피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커피만큼 보까디요도 작았는데 스페인에서 먹던 보까디요의 딱 1/4 수준이다.

냉장고에서 햄을 고르자 차가운 햄을 그냥 썰어 넣어주었다.

햄버거만 한 빵 사이에 원하는 내용물 하나 넣으면 땡.

그래도 아주머니는 따뜻하고 순박한 인상이었다.

왠지 막걸리를 시키면 신김치 한 종지 내어주실 것 같았다.

막걸리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까페를 나와 걸으니 다시 숲길로 접어든다.

아직 산을 벗어나지 못했고 길은 울창한 숲으로 이어졌다.

얼마를 걸었는지.. 우거진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는데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컹컹"

'아마도 사냥을 하는가 보다..'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고 걸었는데.. 개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점점 소리가 커짐에 따라 한 마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소리는 떼로 짖어대는 소리다.

어느 쪽에서 들려오는지 정확하지 않았지만 분명 가까워지고 있었다.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깨갱..' 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뭐지?'

인적 없는 숲 속에서 이런 상황에 닥치다 보니 생각은 자꾸만 나쁜 쪽으로 흘러갔다.

'사냥개에게 쫓기던 사냥감이 맞서 싸우는 거 아냐? 혹 그러다가 내쪽으로 온다면 어쩌지?'

'혹시.. 멧돼지나 늑대라면..'

일단 늑대는 접어두고 멧돼지만 해도 보통 무서운 게 아니다.

아헤스가는날 사냥꾼이 잡은 멧돼지를 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겨울 태백의 어느 산속에서 멧돼지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혼자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내게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달려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영화 '차우'에 나왔던 것처럼 커다란 놈이었는데 녀석의 주위로 아른아른 아지랑이 같은 아우라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 녀석은 나는 안중에도 없이 제 갈길을 달려갔을 뿐인데도 그 기세에 눌려 나의 양발은 땅에 들러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TV나 영화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 그 자체였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약 멧돼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것도 사냥개에 쫓기던 놈이라면 약이 바짝 올랐을 텐데..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인가도 없고 우거진 숲뿐이었다.

걸음을 빨리하며 소리로부터 멀어지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스틱이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덜 무서웠을 것을.. 급한 대로 눈에 띄는 돌을 집어 들고 걸었다.

'아 사무엘이 괜히 개만 보면 원수대하듯 한 게 아니었구나. 2,000km를 걷는 동안 얼마나 많은 개들에게 시달렸을까..' 하는 생각부터 동물과 거리낌 없었던 왕빈대 까를로스마저 그리웠다.

그렇게 미친 배낭이 무거운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눈앞에 고가도로 기둥이 나타났다.

인가도 아니고 단지 고가도로를 떠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콘크리트 기둥을 부여잡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껏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사람 마음을 그렇게 안정시켜주다니.

그때의 그 기둥은 내게 '사람의 흔적'이었다.

그 기둥 위로 들리는 자동차 소리에 묻혀 개소리도 점점 잦아들어갔다.

정말 숨 막히는 개소리와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개소리가 멀어지면서 긴장도 풀렸다.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보니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요런 돌멩이 두 개로 무얼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개소리 숲을 무사히 빠져나와 잠깐 마을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길은 다시 숲으로 접어들었다.

발레리오가 말하던 '폰테 데 리마'를 앞에 둔 숲이었다.

날은 이미 저물어 헤드랜턴을 쓰고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까 그 개소리 상황까지 더해진다면 아마 더 이상 걷기를 포기했을 텐데,

다행히 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인적 없는 컴컴한 숲길을 홀로 걷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화살표도 잘 안보였고 사람도 없다.

까미노 노체를 함께 했던 까를로스가 유난히 그립던 하루였다.

멀리 불빛이 보였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두운 숲 속이고 불빛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발레리오의 말을 새겨듣고 좀 서두를 걸' 하는 생각은 이미 소용없다.

오늘따라 길도 엉망진창.

물웅덩이를 피해 길옆의 수풀 속을 헤치면서 정신없이 걸었다.

배는 고프고 어깨는 아프고 어둠은 무섭고..

두려움 속에 한참을 걸었더니 드디어 눈앞에 도로가 나타났다.

까미노는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편 숲길로 계속 이어져 있었다.

길 건너 까미노가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칠흑 같은 숲길은 더 이상 혼자서 자신이 없어 결국 도로를 택했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얼마나 반갑고 따뜻하고 환하던지..

도로는 마을로 이어질 것이고 마을엔 알베르게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도로를 따라 걸어 폰테 데 리마에 도착했다.

그리고 알베르게.

아 얼마나 반갑던지.

발레리오의 말마따나 얼마나 대단한 알베르겐지 한번 봐주겠어, 하고 들어가니..

과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예쁜 호스피탈레라가 앉아 있었다.

이 알베르게, 정말 좋은 알베르게다.

등록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가 안내를 받았다.

깨끗하고 정갈한 인테리어의 주방과 샤워실과 화장실, 게다가 거실에는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PC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3층의 침실은 마치 넓은 다락방을 연상케 하는 공간에 낮은 침대가 여러 개 놓여있다.

난방이 되지 않았지만 휴대용 온풍기 두대를 가져와 전기를 꽂아준다.

예쁜 데다 친절하기까지, 정말 좋은 알베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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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오가 극찬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던가?

무지 예쁜 호스피탈레라가 있고 시설도 훌륭한데 가격은 단돈 3유로!(지금은 5유로)

막판에 계 탔네.

개소리의 숲과 어둠을 뚫고 폰테 데 리마에 온 보람이 있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3층짜리 대저택에 예쁜 집사를 두고 산다면 이런 기분이겠다.

폰테베드라 4명, 모스 3명, 발렌 샤 2명.. 하루에 한 명씩 줄더니 오늘은 정말 나 혼자다.


예쁜 집사에게 집을 맡기고 저녁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마을로 나섰다.

물론 장 보기 전에 주방 탐색은 필수.

각종 주방기구와 전자레인지, 식기도 잘 갖춰져 있다.

소금과 설탕, 올리브유가 있네.

알베르게를 나와 다리를 건너면 마을인데..

강 건너 불구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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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쏘 매니 라이츠!'

다리 건너 마을이 마치 놀이동산 야간개장의 그것과 같았다.

가로등에서 은은한 음악도 흘러나온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마을 전체가 따뜻한 불빛으로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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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한적함을 누릴 수 있었다.

마을 전체에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상점들은 모두 동화 속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배고픔도 잊을 만큼 예쁜 마을을 둘러보며 구경했다.

정말 야경의 '본떼를 보여주마' 하고 '폰테 데 리마'가 온몸으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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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큰 마트로 저녁거리를 사러 들어갔다.

어차피 오늘은 '나 홀로 알베르게'이므로 먹고 싶은 걸 남의 눈치 안 보고 실컷 해먹을 수 있다.

오늘 저녁은 쌀밥과 생선구이다.

어제 발렌샤의 '크리스티나' 표 생선 스테이크가 아쉬웠기에 스테이크용 생선 한토막을 샀다.

스페인보다 싼 느낌이 들어 마구마구 먹을 것을 샀다.

백포도주는 사지 않았다.

100유로짜리를 깼다. 큰 마트가 아니면 잔돈으로 바꾸기가 어려우니 이럴 때 깨야한다.

마트에서 나와 돌아오는 길에 예쁜 빵집이 있길래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이 잘 어울릴 듯한 예쁜 집사 생각이 나서 작은 빵 몇 개도 샀다.

그러고 보니 집사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네.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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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건너 교회 뒤에 알베르게가 있다.

시원한 공기를 맘껏 마시고 느긋하게 걸어 알베르게로 향했다.

알베르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사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빵 봉지를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 사무실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가는데 뒤에서 집사가 불렀다.

전화를 받느라 고맙다는 말을 못 하여서 미안했다고.. 예쁜 데다 친절하고 상냥하기까지..

정말 최고의 알베르게다.

집사 '크리스티나'를 일찍 퇴근시키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독방을 넘어 독채다.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쌀을 씻어 앉히고 양파와 마늘을 까서 볶았다.

생선을 해동시키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넣었는데.. 막 뭐가 튀는 소리가 났다.

너무 세게 맞췄나 보다. 얼었던 생선이 높은 온도에서 그만..

레인지 내부가 생선 냄새로 가득했다. 서둘러 휴지로 닦아내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대충 해동시킨 생선을 팬에 양파와 마늘을 넣고 구웠다. 소금도 치고.

그럭저럭 생선구이를 해서 밥과 함께 먹었는데 어제 '크리스티나' 표 생선 스테이크보다 내 입맛에 맞는다.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정리한 후 거실로 가서 PC를 이용해 거의 꽉 차가는 사진기의 메모리를 비웠다.

많이 느렸지만 공짜니까 뭐.. 사진기의 메모리를 비우니 마치 막힌 속을 비운 것처럼 시원하고 안심이 되었다.

메모리를 넉넉하게 가져올 것을.. 사진보다는 여행에 더 집중하자는 핑계와 귀차니즘으로 자처한 일이니 할 수 없다.

이렇게 가끔 메모리를 비우면 되니까.

대강 정리를 하고 씻고, 밀린 빨래도 해서 온풍기 앞에 널고, 신발도 깔창을 빼서 함께 널고, 우산도 활짝 펴놓고..

온풍기만 켜놓고 자는 것보다 덜 건조해서 좋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저택의 넓은 방에 혼자 있자니 무료하다.

'뭘 하고 놀까' 하다가 엉뚱하게 '누드사진 찍기 놀이'가 떠올랐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자신의 누드사진을 찍어보라고 했었는데..

한번 찍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었다.

백일 이후로는 처음이니 40여 년 만이네.

그런데 이게 되게 이상하다.

아무도 없는데 꼭 누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샤워할 때나 사람들이 많은 대중목욕탕에서도 괜찮았는데, 아무도 없는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고 은근 스릴도 있었다.

카메라 타이머를 맞춰놓고 찍었다.

혼자서 왔다 갔다 찍고, 또 찍고.. 괜히 웃음도 나왔다.

이 정도면 혼자 놀기의 '갑'까지는 아니라도 '을'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찍은 내 사진을 보는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수많은 야동으로 단련된 나였지만 정작 '나'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망설여진다.

그렇게 힘들여 보았는데..

또 이상하다.

내가 늘 목욕탕에서 보던 내 모습과 사진으로 찍어서 보는 내 모습이 다르다?!

꼭 다른 사람의 몸을 보는 것 같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얼굴을 가리고 보았다면 내가 '나'를 못 알아볼 정도.

'내 몸이 이랬어? 음..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군'

오른쪽 어깨가 왼쪽에 비해 처져있다.

고등학교까지 무거운 책가방 때문에 고생한 내 오른쪽 어깨,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가방만 무겁게 해가지고..

그리고 왼쪽 다리가 오른쪽에 비해 살짝 두껍다. 오른발 잡인데..

팔은 오른쪽이 더 두껍다. 이건 쉽게 수긍이 간다. 오른손 잡이니까..

비대칭도 이런 비대칭이 없다.

여지껏 나는 내가 좌우대칭에 가깝다고 여겼었는데..

베드벅흔적도 아직 조금 남아 있다.

40여 년을 거울에 비친, 내 생각에 보기 좋을 대로 보아오던 '나'와, 사진으로 보는 내가 많이 달라 꽤 당황스러웠다.

거울을 통해보는 내가 나인지, 사진 속의 내가 나인지 헷갈린다.

얼굴이야 쎌카뿐만이 아니라 종종 찍는 사진으로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면서

'나'의 8할 이상을 구성하고 있는 몸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는 왜 그렇게 무심했을까.

까미노를 걷게 해 준 수고한 '나'인데..

눈으로 볼 수 있는 겉모습이 이럴진대 나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마음이나 생각 같은 내면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가 있다면 과연 나는 내면의 누드를 위한 셔터를 누를 용기가 있을까.

설혹 사진을 찍더라도 아마 그걸 보는 순간 돌아버릴 걸.

내 속엔 내가 몰랐던 내가 너무도 많을 것 같다. 개떼보다 많고 무서운 내가..

물론 크리스티나처럼 예쁜 나도 있을 테고.


침대에 짐들을 널브러뜨려놓고.. 한없이 낯선 내 몸도 침대 위에 널브러뜨렸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혼자인데 자꾸 누가 보는 것 같고..

정말 이상하지.. 아무래도 누가 훔쳐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구냐 넌?

혼자였는데도 부산한 저녁이었다.

불이 꺼진 어두운 방안에 따뜻한 온풍기 소리만 작게 웅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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