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알베르게 2

폰테 데 리마 - 포르텔라

by 외투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기다려도 집사는 출근할 생각을 않는다.

얼굴 한번 더 보려고 꾸물거렸는데,

할 수 없이 설거지를 하고 주방정리를 마치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어제 미처 찍지 못했던 알베르게의 모습


IMG_1665.jpg
IMG_1664.jpg
IMG_1666.jpg
IMG_1667.jpg
IMG_1668.jpg




IMG_1669.jpg?type=w740


알베르게의 외경.

색깔도 참..

어제 건넜던 예쁜 다리를 다시 건너 까미노는 이어진다.


IMG_1670.jpg?type=w740


조형물 뒤로 교회가 보인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어젯밤처럼 따뜻한 풍경은 간데없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버렸다.

마을이 아담하고 아기자기하지만 비 내리는 폰테 데 리마의 아침은 밤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IMG_1677.jpg


양 옆으로 멋진 나무들이 서있는 길을 어르신 세분이 우산을 쓰고 지나간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까만 우산, 검정 우산, 시커먼 우산..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나도 우산을 펴 들고 걸었다. 내 우산은 파란 우산.


IMG_1678.jpg?type=w740


새로 지은 다리 뒤로 옛 다리와 마을이 멀어져 갔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 따라서 우산도 폈다 접었다를 반복했다.

뤼노가 '우산은 금방 망가질 거'라며 겁을 줘서 그랬는지 조심해서 사용하고 있다.

약한 비는 맞으며 걸어도 시원하고 좋지만 폭우는 우비도 무용지물로 만든다.

하지만 우산이 있으면 상체는 젖지 않아 좀 낫다.

흠뻑 젖도록 시원하게 비 맞는 것도 좋지만 그 뒤로 몰려오는 추위는 조심해야 한다.

이런 날씨라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겠다.


IMG_1680.jpg



IMG_1681.jpg


노란 화살표와 앙증맞은 야고보상


IMG_1683.jpg?type=w740


대문에 걸린 빵.

크지 않고 동글동글한 빵이 유혹한다. 간간이 걸려 있는 빵 때문인지 빵이 무척 당겼다.

작은 가게가 보이길래 들어가서 동그란 빵을 샀다.

동네 아주머니들 틈에 섞여 구멍가게도 구경.

바게뜨보다는 덜 딱딱하고, 배를 갈라 참치나 햄 등을 넣어먹기에 안성맞춤.


IMG_1682.jpg?type=w740


조가비를 낚싯대에 걸듯 걸어놓았다.


오래된 다리.

무슨 이야기가 담긴 다리 같았는데 움푹 파인 돌들이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게 했다.

다리 근처에서였던가, 'St. James Way'라고 쓰인 푯말이 서있었다.


IMG_1690.jpg



IMG_1692.jpg


포르투갈에 들어와서부터는 종종 영어로 'St. James Way'라고 쓰인 푯말을 볼 수 있었다.

포루투갈길만 따로 그렇게 부르는 것인 줄 알았는데 '성 제임스 길'이 바로 '산티아고 길'이란다.

쎄인트 제임스, 싼티아고가 바로 성 야고보를 일컫는 영어와 스페인어.

이름이 나라별로 각기 다르게 불린다.

그런데 그중 우리나라 것이 가장 촌스럽게 들린다.

'야고보'

이 무슨 구한말톤의 어감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야고보'를 '제이콥'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다.

제이콥은 야곱.

제임스가 야고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이런톤이다.

예수(한문 같다), 야고보, 야곱, 다윗, 누가, 마가, 마태, 요한, 도마(부엌에 있는 그것?), 빌립보(이불보도 아니고..)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지저스, 제임스, 제이콥, 데이비드, 루크, 마크, 매튜, 존, 토마스, 필립.. 등으로 표기하지 않고

하나같이 모두 구닥다리 발음 표기를 하는 이유가 뭔가 했더니,

우리 성경에 나오는 발음들이 원래 성경이 쓰인 그 시대의 발음에 가깝단다.

그래서 '야고보의 길'.

등장인물들의 이름 표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핑계로 읽기가 싫었는데 알고 나니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

사실 이름이야 어떻게 불리든 상관없다.

나부터도 '상한'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해주겠도 좋지만 '핫산'이니'산후안'이니 '한'이니 하면서 편한대로 부르던 이름에 오히려 친근감을 더 느끼지 않았었나.


IMG_1688.jpg


예쁜 꽃들.. 이름은 모르겠다.


IMG_1689.jpg
IMG_1685.jpg?type=w740


사람도 없고.. 썰렁한 크리스마스트리.

정말 사람이 없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된 이곳에서도 잠시, 아주 잠시지만 길을 헤맸다.

그래도 스페인에서처럼 밥 먹듯 길을 잃지는 않았다.

천칭이 기울어지듯 포르투갈로 넘어오면서부터 파티마를 향한 파란 화살표가 조금씩 많아진다.


IMG_1687.jpg?type=w740


토실토실한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나를 구경한다.

'이름 붙여줄까?'

이날은 싼티아고를 향하는 사람을 한 명 만났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을 사람을 제외하면 길 위에서는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다시 비가 오길래 우산을 펼치려고 우산대를 쭉 밀었더니 그만 우산 몸통이 '푱'하고 날아가 버렸다.

우산대와 우산 몸통이 2단 분리가 된 것.

간신히 상단의 우산을 펴서 우산대에 끼워서 쓰고 다녔지만 접고 펼 때마다 불편했다.

여태껏 잘 버텨준 고마운 우산이었는데..


4시 30분경 포르텔라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는 나의 방향에서 보면 마을 초입에 있다.

싼티아고를 향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을의 끝무렵이 되겠다.

알베르게의 전면이 커다란 통유리로 되어있다.

우산을 분리되지 않게 조심해서 접어들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오늘은 사람이 없을 줄 알고 방심했던 사람들의 허를 찔렀나,

비에 쫄딱 젖은 내가 들어서자 반가워하기보다는 어째 의외라는 듯한 표정들이다.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곧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

알베르게에는 정규직으로 보이는 고참 호스피탈레로와 계약직 인턴으로 보이는 어린 숙녀, 그리고 그녀의 남자 친구인듯한 청년, 이렇게 세 사람이 있었다.

3:1

직원대 고객의 비율이 정말 착하다.

그렇다고 세배의 서비스까지는 아니었다.

고참 호스피탈레로가 실습을 시키듯 인턴 호스피탈레라에게 접수를 받게 하고, 스탬프를 찍게 하고, 안내를 하게 하면서 웃는다. 나도 웃음이 나오고 어린 숙녀 인턴도 수줍어하면서 시키는 대로 한다.

왠지 내가 '실습용'이 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이곳 알베르게의 진가는 주방에 있었다.

그렇다고 시설이 최신식이라는 건 아니고 씽크대와 냉장고에 먹을게 잔뜩 들어있었다.

앞사람이 남기고 간 부식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다.

각종 양념류와 스파게티 국수는 물론 포도주와 우유, 어륀쥐쥬스까지 갖춰놓고 있었다.

과자나 꿀 같은 것들을 무인판매도 하고 있었는데 굳이 '판매용'까지 손댈 필요도 없겠다.

근처의 식당은 문을 닫았다고 했고, 500m쯤 떨어진 곳에 가게가 있단다.

참치캔 하나만 사다가 스파게티를 해 먹기로 했다.

빗속을 걸어 가게로 갔다.

내리막 도로 곁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인데 주인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꼬레아노?'라고 묻는다.

포루투갈길도 한국인이 많이 다녀가긴 했나 보다.

과일 몇 개와 참치캔을 샀다.


숙소로 돌아와 바로 저녁을 해 먹었다.

참치 스파게티와 비에 젖은 몸을 데우려 포도주 한잔.

정규직 호스피탈레로와 인턴 호스피탈레라, 그리고 그의 남친으로 보이는 청년이 모두 돌아가고 홀로 남았다.

오늘도 알베르게는 내가 접수해버렸다.

알베르게를 혼자 차지하고 있으면 홀가분하고 좋을 것 같은데, 어제 하루 겪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이 없다' 고 '나 홀로 알베르게 씨즌 2'는 그리 재밌지 않았다.

어제는 처음이라 그냥 좋았는데.. 발레리오처럼 상냥한 룸메이트가 특별출연이라도 해줬으면..

혼자서 고스톱도 치는 김봉두 선생 정도라면 모를까.. 조금은 썰렁하고 잘 때 무섭기까지 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편한대로 있는 건 좋지만, 딱 거기까지만이다.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 책 읽기에도 좋은 환경이었지만 '성경을 읽어보자'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프랑스길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잠자리에서나마 조금 읽는 척이라도 했었는데,

한적한 포르투갈길이었음에도 아예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름 때문'이라는 핑계는 이제 안 통하는데.. 다음에는 문체를 걸고넘어졌다.

너무 극존칭에다가 사극톤의 구시대적인 문장이 거슬린다.

'쉬운 성경'이라 해놓고 일상의 문체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결국 이 핑계 저 핑계로 '까미노에서 성경을 한번 읽어보자'는 계획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알베르게는 2층도 있었는데 그냥 안내받은 1층에서만 머물렀다.

아무도 없을 2층엔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다. 뭔가 나올 것만 같아...

1층은 나의 독방과 화장실 및 샤워장, 그리고 거실과 주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일 떠날 때는 정문을 안쪽에서 잠그고 뒷문으로 나가면 된다.

뒷문은 자동으로 잠긴다.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빗줄기가 시원했다.

비가 점점 더 거세지는데.. 내일이 걱정이다.

우산도 망가졌는데..

그런데 출입문 쪽에 놓여있는 빈 화분에 우산 하나가 놓여있네.

'뭐지? 누가 두고 간 건가..?'

살펴보니 검은색 접이식 우산인데 스위치가 망가진채로 먼지와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있다.

'누가 망가진 우산을 두고 간 게로군..'

보면 이렇게 망가지거나 필요 없는 물건들을 모아 두고 필요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했었다.

우산도 있었고 스틱이나 신발을 모아둔 알베르게도 있었다.

앞서간 사람이 남기고 간 음식처럼 사용하면 된다.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물건이나 음식은 기부를 하면 된다.

나는 여태껏 내 물건을 기부한 적은 없었다.

쌀이나 스파게티 국수를 남겨놓은 적은 있었지만, 혹시 언젠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녔다.

심지어 입지도 않는 '비니루 몸빼'마저도 배낭 속에 고이 모셔두고 있지 않은가.

엄지손톱으로 겨우겨우 힘주어 깨진 스위치를 눌러 우산을 펼쳤다.

다행히 우산은 멀쩡하게 '촥'펴졌다.

우산은 멀쩡하게 잘 펴졌는데.. 뭔가가 툭 튀어나오더니 '다다다닥..' 움직여 벽 쪽으로 붙는다.

'엄마야!'

100원짜리 동전만 한 거미다.

간 떨어질 뻔했다.

아무리 스파이더맨을 좋아하고, 또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다지만 저런 녀석이라면 물리고 싶지 않다.

스위치가 고장 난 검정 우산은 녀석의 알베르게였던 것.

산뜻한 파란색 내 우산을 녀석의 새 알베르게로 주고 검정 우산은 내가 챙기기로 했다.


이곳도 더운물은 나오지만 난방이 안된다.

방엔 2층 침대 하나와 아주 큰 사이즈의 일반 침대 하나, 이렇게 2개의 침대가 있다.

2층 침대 여기저기에 젖은 옷가지를 말리기 위해 널어놓고 넓은 침대 위에 침낭을 펼쳐놓고 들어갔다.

어느덧 여행도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벌써 집 떠난 지 40여 일이 지난 것.

언제부터인가..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ㄹㅏㄸㅔㅅㅡ.PNG


우산.PN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