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텔라 - 라떼스
아침을 먹고 알베르게를 정리하고 배낭을 꾸렸다.
빠진 게 없나 꼼꼼하게 확인했다.
알베르게를 나서는 순간 문이 자동으로 잠기므로 다시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문이 열릴 오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비는.. 여전히 가늘지만 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 비라면 그냥 맞아도 괜찮겠지만.. 거미와 바꾼 새 우산을 시험 삼아 써보기로 했다.
엄지손톱이 부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스위치를 눌러 우산을 펼쳤다.
생각보다 우산이 좋다.
묵직하니 튼튼한 느낌이다.
자동이라 접고 펴기도 수월했다.
작은 삼성 간판이 보였다.
사무실인가.. 아무리 보아도 개인주택인데 돌출간판이 달려있었다.
포르투갈에 잘 어울리는 적당히 낡은 기차가 지나갔다.
저 아래 기찻길을 건너 길은 계속 이어졌다.
슬슬 도시의 냄새가 풍겼다.
바르셀로스의 중심부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길도 넓어지고 광고탑도 보이고.. 말도 보였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포르투갈산 종마인가.
검둥이와 흰둥이가 나를 경계한다.
걷다가 무심코 내려다보니 신발이 뭔가 이상했다.
신발끈이 거의 끊어질랑말랑.
하도 신발끈을 자주 풀었다 조였다를 반복해서 그런지 끈이 문제다.
순간 떠오르는 것은 안토넬라.
신발이 똑같다며 소녀처럼 웃던 그녀 덕분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벨기에부터 걸었던 그녀의 것은 발가락이 접히는 부분이 헤져서 테이핑을 했었는데,
테이프로 칭칭 동여맨 것이 까미노의 흔적이 담겨서 그런지 내 것보다 더 멋져 보였었다.
이제 내 신발도 끈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위태했지만 까미노에 잘 어울린다.
하지만 끊어지면 안 되는데.. 언젠간 끊어지겠지.
몰라, 끊어지면 그때 가서 보지 뭐.
이것도 기념이라고 사진 한방.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인연 끊기'였다.
모든 인연을 끊겠다는 것은 아니고 일과 관련된 인연을 끊고 싶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동종의 업계에서 돌고 돌며 지지고 볶는 게 싫었었다.
몇 번 업종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거래처나 업계의 친구들 때문에, 그리고 선택권이 별로 없는 나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그 계통 안에서 돌고 돌았던 것.
그렇다고 한우물을 판 것도 아니어서, 누군가 내게 말했듯 '종합 선물세트' 같았다.
그게 처음에는 칭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다.
이것저것 갖춰놓기는 했는데 딱히 먹을 만한 게 없는 종합 선물세트.
진득하니 한 곳에 눌어붙어있지 못하다 보니 이것저것 어설프게 해본 것은 많은데 깊이가 없다.
사양은 안 좋은데 연식까지 오래되었으니 이직이 쉽지 않은 건 당연한 이치.
한국에 머물렀다면 알음알음 아는 인맥을 통해 다시 '도둑질'을 할게 뻔했다.
그래서 아주 멀리 나를 던져버리듯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깟 50여 일로 그렇게 쉽게 인연을 끊을 수는 없겠지만.. 겸사겸사 그런 의지가 반영된 여행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바꾸고 말 테다'
인연의 끈이 끊어지면.. 그때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산입에 거미줄 치겠어.
바르셀로스의 중심부에 들어섰다.
상가도 많고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소방관과 닭
프랑스도 닭이 상징동물인데 포르투갈도 닭이다.
우리나라에서 닭은 '닭대가리'라고 바보 취급당하기 일쑤지만 시골에서 생활해본 사람은 안다.
장닭이 얼마나 용맹스러운지.
닭은 집도 잘 지키고 뱀도 잡아먹고 개도 꼼짝 못 하게 만들 수 있다.
'포르투갈'에서 '갈(galo)'이 닭을 뜻한단다.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 찍은 교회의 스테인드 글래스
내가 걷던 방향으로 걷다 보니 한 오래된 교회의 옆구리 부분의 문이 열려 있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다.
들어갔더니 스테인드 글래스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만 사진을 찍었는데..
관계자가 나오더니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며 쫓아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정문에 놓인 '사진 촬영 금지'푯말을 가리키며 나가란다.
옆문이 열려있길래 그리로 들어간 것뿐이고, 그래서 푯말을 보지 못했을 뿐이고, 스테인드 글래스가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쫓겨난 것이 조금 억울했다.
정문으로 들어갔으면 그 푯말을 보았을 텐데.. 하긴 푯말을 보았어도 찍었을 만큼 아름다웠다.
스페인에서보다 포르투갈에서 교회를 더 신성시하는 느낌이다.
바르셀로스는 도시이다.
포르투갈에서 처음 만났던 발렌샤보다 조금 큰 듯했다.
관광 안내센터에 가서 길을 묻고 스탬프도 받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강가 언덕 위에 오래된 성인지 교회인지가 부서진채로 있었다.
이런 유적 참 좋다.
일단 관람료나 입장료가 없고 허물어진 대로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그런 유적.
옛 터와 부서져 하늘이 뻥 뚫린 건물(애초에 지붕이 없었나?)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지금의 도시 모습이 허물어진 건물 속의 나와 거리감을 주었다.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 이름이 한 끗 차이다.
바르셀로스가 번화했고 바르셀리뇨스는 한산했다.
이쪽은 '바르셀로스' , 강 건너 저쪽은 '바르셀리뇨스'
강을 건너 바르셀리뇨스를 통과해서 도시를 빠져나왔다.
도시를 벗어나 걷는데 오른발 느낌이 이상해서 내려다보니 드디어(?) 끈이 끊어졌다.
적어도 3년은 신으려고 했는데.. 하긴 3년 걸을걸 이번에 모두 몰아서 걸었으니 신발에 무리가 갔을 것.
어쩌지.. 끊어진 끈을 다른 고리에 넣어 묶으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뭔가 나랑 함께 했다는 흔적이 담긴 것 같아서 신발에 더 정이 간다.
안토넬라의 것과 같은 신발이면서도 나만의 흔적이 담긴 신발이다.
'인연의 끈'도 이렇게 끊어진다면.. 혹 끊기는 커녕 '끈 떨어진 연'신세가 되면 어쩌지..
에이 다시 묶어버리면 되지 뭐.
정 안되면 다시 도둑질을.. 그건 내키지 않네.
신발을 벗고 보니 이번에는 양말의 뒤꿈치에 구멍이 크게 났다.
이것들이 슬슬 티를 내기 시작하는구나..
액정이 깨진 휴대폰과 구멍 난 장갑, 그리고 2단 분리 우산에다가 신발과 양말까지.
그만큼 걸었다.
가로수로 오렌지 나무를 종종 보았는데 그중에 가장 착한 녀석.
잘 익은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렸다. 그냥 지나쳤을까? 보는 사람도 없는데.
하긴 뭐 가로순데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따뜻한 차와 빵으로 간식을 먹었다.
후식으로 먹은 갓 수확한 오렌지가 정말 달콤했다.
작은 도로를 따라 걷는데 인도가 가끔씩 사라지기도 했다.
차들이 많이 다니면 정말 위험하겠다.
그나마 몇 대 안 되는 차들도 그렇게 얌전하지는 않았다.
스페인이 '보행자 우선'의 교통문화라면, 과연 옥타비오의 말대로 포르투갈은 '운전자 우선'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유럽에서 운전이 가장 난폭하다는 포르투갈도 우리에게는 비할바가 못된다.
조금 황량한 느낌의 마을에 도착했다.
서부영화에서나 볼법한 바람개비도 한몫 거들었다.
스타렉스 한대가 휙 지나가길래 순간적으로 착각을 했다. 여긴 어디?
그러면서도 총잡이처럼 재빠르게 사진기를 꺼내 한방.
스타렉스 뒤로 보이는 하얀 건물이 알베르게다.
알베르게가 맞긴 맞는데 문이 닫혔다.
'오래되어서 폐쇄된 건 아닌가'하고 좌절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차가 멈춰 서더니 내가 지나온 길 뒤쪽의 가게를 가리킨다.
'아! 여기도 가게 주인이 관리를 하는구나'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앉아계셨다.
이곳의 스탬프는 '2도' 스탬프다.
여태껏 받은 스탬프는 모두 검은색, 혹은 파란색 등의 '1도' 였는데,
크레덴시알을 꺼내니 직각자 같은 틀을 올려놓고 첫 번째 스탬프는 검정 잉크로, 두 번째 스탬프로는 붉은 잉크로 같은 자리에 찍어주었다.
그러면 검은색과 빨간색, '2도'의 칼라 스탬프가 완성된다.
스탬프를 찍는 아주머니에게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특색 있는 스탬프가 재미있다.
이 문양이 프린트된 티셔츠도 팔고 있었다.
마치 흑백 tv를 보다가 컬러 tv를 봤을 때처럼 신선했다.
황량하고 낙후된 느낌의 마을이 새롭게 보였다.
역시 열쇠를 주며 내일 나갈 때 가게의 우편함에 넣으라고 했다.
숙박비도 안 받네.
오늘도 혼자인가.. 더구나 병원 느낌이 나는 허름한 건물에서 혼자 잘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게에 온 김에 먹거리나 사갈까 하다가, '우선 부엌부터 뒤지고'라는 생각에 알베르게로 갔다.
열쇠를 넣고 아무리 돌려도 문이 안 열려 결국 가겟집 주인 딸의 도움으로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오블리가도!"
어설프게나마 스페인어가 익숙해졌었는데, 포르투갈어가 어색하다.
'오블리가도 오블리가도..' 비틀즈 노래같애.
건물 뒤로 나있는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니 숙박비를 넣는 돈통이 책상 위에 덜렁 놓여있다.
'정말 완벽한 기부제로군'
아무도 없는 알베르게에서 정말 시험을 당하는 기분으로 돈통을 잠시 바라보았다.
외면할까 하다가 한번 흔들어 보았다.
비었다. 젠장할!
이렇게 되면 숙박비를 안 낼 수가 없잖아!
그냥 가면 내일 가게 주인이 와서 빈 통을 흔들어보고는 '망할 놈의 꼬레아노, 기부도 안 하고 잠만 처자고 가다니!' 할까 봐.. 어차피 낼 돈이었으니 '내자!' 하고 눈을 질끔감고 기부했다, 가난한 만큼.
숙박부도 직접 작성.
기부도 했으니 당당하게 복도 끝에 있는 도미토리룸의 구석자리 침대를 골라잡고 짐을 풀었다.
건물의 1층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듯했고 2층에 주방과 침실, 화장실이 있다.
전기 히터가 한대 있었는데 콘센트가 구석 침대 옆과 출입문 옆에 있었기에 구석자리를 골랐다.
아무도 없는 병원 느낌 건물의 출입구 쪽은 아무래도 내키지가 않았다.
새로 장만한 우산도 말리기 위해 펼쳐놓고 막 짐을 어지럽게 늘어놓고 샤워를 했다.
주방은 좀 낡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양념류와 올리브기름도 있었다.
저녁거리를 사려고 나가려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구지? 관리인인가..' 하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한 동양 여자이다.
척 보아도 아주 고된 하루를 보냈음이 확실한 그녀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들어오다가 나를 보더니 애써 표정을 숨겼다.
긴가민가해서 조심스럽게
"한국인이세요..?" 했더니
그제서야 표정을 풀며 그렇단다.(40여 일 동안 수염도 깍지 않은 내 몰골에 표정이 더 어두워졌었던가..)
한국인 H다.
오늘 포르투에서 까미노 걷기를 시작했다는데 복장이 참 낯설다.
스키니진에 아쿠아슈즈..
어쨌든 반가웠다.
H는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라고 했는데 성격이 털털했다.
하긴 스키니진에다가 친구에게 빌린 잘 맞지도 않는 아쿠아슈즈를 신고, 그것도 겨울이 다가오는 이 계절에 포르투갈길을 걸을 정도면..
꼭 완주하겠다는 목표 같은 것은 없었고, 걷다가 힘들면 버스를 탈것이라며 이 길에서 좀 쉬고 싶단다.
유학생활이 만만치 않았나 보다.
1대의 히터로는 좀 추울 것 같아 뒤져보았더니 사무실에 1대가 더 있어 방으로 옮겼다.
저녁을 함께 해 먹기로 하고 가게로 장을 보러 갔다.
메뉴는 참치 파스타.
H가 국수를 삶고 내가 토마토를 잘게 썰어 소스를 만들었다.
국수를 삶는데 올리브유를 넣네. 국수끼리 들러붙지 않게 하려 함인가.
맛은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후식으로는 '얼그레이 홍차'.
H가 꺼낸 홍차였는데, 영국 것이라고 했나.. 향이 아주 진했다.
공장에서 일하던 스리랑카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는 홍차의 고향은 스리랑카이다.
'실론티'의 '실론'이 바로 스리랑카의 옛 이름인데 영국도 홍차가 유명한가 보다.
H는 포르투갈 친구가 있는 리스보아에서 며칠 머물다가 포루토에서 또 며칠을 보내고 오늘부터 걷기 시작했단다.
포루투에서의 숙소 걱정을 하니 '옐로우 하우스'라는 호스텔이 괜찮다며 약도를 그려준다.
그리고 포르투갈에 왔으니 바깔라우라는 생선을 먹어봐야 하며,
기념품을 사려면 리스보아보다는 포르투가 더 저렴할 것이란다.
포루투도 좋고 리스보아도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리스보아에서도 좀 머물러볼까?
벨렘에서 파는 에그타르트가 한 번에 5개나 먹을 정도로 맛이 죽여준다며 꼭 먹어보라고.
'파스텔 드 나타'라고 하는데 먹어봐야만 할 것 같았다.
리스보아에 가면 신트라에 가서 페나성과 무어 성을 보고 '진자'라는 버찌 술을 먹고, 유렵 대륙의 끝이라는 로까곶도 반드시 가보란다.
그래, 그러면 무시아와 피스테라에서 보지 못한 일몰을 로까곶에서 봐야겠다.
'대서양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반드시 보고 말리라.'
그래서 포르투에 도착해서 하루 자고, 다음 날 포르투를 한 바퀴 돌아보고, 다음날 오전에 버스로 꼬임브라로 출발, 꼬임브라에서 하루, 다음날 파티마 도착, 파티마 출발 리스보아 도착, 리스보아에서 이틀을 머물고 마드리드로 넘어가 이틀 쉰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략의 일정을 그려보았다.
나도 H에게 포르투갈길에 대한 정보를 나눠주었다.
물론 '폰테 데 리마'를 강력 추천했다.
포르투갈의 경제사정이 바닥을 치고 있어 취업난이 말이 아니란다.
리스보아에 있다는 포르투갈 친구가 '삼성'에서 일하고 싶다는데, H의 경험에 의하면 이들의 느긋한 생활패턴으로는 도저히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두대의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행이다.
룸메이트가 있어서, 혼자서는 조금 무서웠는데.
3일 만에 알베르게에서 독수공방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더구나 허름한 병원 느낌의 알베르게에서 혼자가 아니어서 한시름 덜었다.
한밤중에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복도를 지나가야 했는데 병원이나 학교 느낌 때문에
'나 홀로 알베르게'가 3부작으로 마무리되었다면, 3부는 호러가 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