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라떼스 - 포르투

by 외투



너무 히터를 세게 켜놓았나?

아침에 일어났더니 빨래도 신발도 그리고 목도 바싹 말라버렸다.

한대면 충분했을 텐데 두대를 풀가동했으니.. 너무 건조해서 잠도 좀 설쳤다.


아침은 간단하게 오트밀을 먹었다.

음.. 타냐가 꿀을 섞어 먹는 이유를 알겠다.

담백하다 못해 너무 밍밍했다.

주방을 정리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배낭에 담는데, H가 한국 쌀을 가져온 게 있다며 "좀 드릴까요?" 한다.

흑미가 섞인 쌀이었다.

두말하면 잔소리. 냉큼 받았다.

게다가 미역국 블럭까지 덤으로 준다. 이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그러고 보니 며칠 뒤면 내 생일이다.

귀한 선물을 받고 가만있을 수는 없지.

'뭐 줄만 한 게 있을까..'

침낭 커버로 사용하던 작은 배낭 커버가 눈에 들어온다.

스키니진에 아쿠아슈즈 차림이었으니 당연히 배낭 커버도 없는 H.

씌워보니 딱이네.

두 개를 받았으니 나도 두 개를 줘야지.

이번 여행 전에 갔던 지리산에서 비박용으로 준비했던 핫팩이 있었다.

'오케이!' 점점 추워질 테니 요긴하겠다. 따뜻한 남쪽으로 가는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기도 하고..

불필요한 물건들이 하나씩 주인을 찾아가는 것만 같았다.

샌드위치를 싸서 나누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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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열쇠는 가는 방향이므로 H가 가져갔다.

문이 열려 있으면 '칼라' 스탬프를 꼭 받겠다고 했는데 이른 아침이라 열렸을지 의문이다.

내가 준 배낭 커버를 씌우고 스키니진에 작은 아쿠아슈즈를 신고 H는 멀어져 갔다.

"여행 잘 하세요"


알베르게를 뒤로하고 조금 걸으니 오래된 교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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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주머니가 문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어 '잠시 기다릴까..' 하다가 외부만 사진을 찍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신앙심이 참 깊은 것 같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 때문에 구경하러 다가가기가 미안할 정도.

그래서 교회 구경은 패쓰.

간절히 기도하는 아주머니의 모습 구경만으로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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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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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참 예쁘다.

만화나 동화 속에서나 봐왔던 그런 다리이다. 물도 맑고.


라떼스를 출발한 지 4시간, 정오가 다되었을 때 한 마을을 지나는데 돌담이 멋지다.

크기가 다양한 돌들을 쌓아 만든 돌담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는데 돌틈사이로 삐죽삐죽 자라나 온 파란 잎사귀까지 더해져 보기에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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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담 위로 개 한 마리가 따라오며 짖어댔다.

갑자기 담 위에서 나타나 얼마나 놀랐는지..

폰테 데 리마 가는 길에서의 후유증 때문인지 개소리에 과민반응을 하게 된다.

담이 높아서 그런 건지 뛰어내리진 못하고 짖기만 했는데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어서 계속해서 경계를 하며 지나갔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길은 산으로 이어졌다.

군데군데 송전탑 공사를 하는지 산길이 파헤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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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너머 산이라더니 공사 중인 산을 내려와 길은 도시로 이어지나 싶더니 다시 임도를 따라 산으로 오른다.

이게 까미노 경로인지 아니지도 모른 체 그냥 걸었는데 점점 산 정상을 향해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말 그대로 산으로 가버렸다.

정상 부근에는 십자가들이 도열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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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 정상에서는 하프를 켜면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상이 산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동상 하단에 '알레그리아(환희, 기쁨)'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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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리아' 하면 떠오르는 건 죠셉.

물건 둔 곳을 까먹고 애태우다가 나중에 찾으면 하늘 향해 두 팔 벌리며 '알레그리아 델 디아!'를 외치던 죠셉이었다.

죠셉이 알려준 호두까기 비법은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름이 끼었지만 쾌청한 날씨였다.

'저곳이 포르투인가?' 산아래로 도시가 펼쳐져 있었는데 내가 가고 있는 방향으로 미루어 봤을 때 포르투가 아닌 것 같다.

거리상으로도 아직 멀었고 방향으로 봐도 남쪽이 아닌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잠시나마 정상에 올라 산아래 풍광을 바라보며 '환희'를 느꼈다.

그런데 이 동상을 지나면서부터 길을 잃어 전혀 '알레그리아'의 여운을 느낄 수 없었다.

산이라는 게 오르면서는 길 찾기가 쉽고, 내려올 때는 길 잃기가 쉽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외길이 되고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기 때문.

동상에서 멀어져 포르투를 향해서 방향을 잡고 산을 내려오는데, 이정표가 보이질 않았다.

몇 번인가를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겨우 이름 모를 마을로 내려왔다.

포르투에 도착하고 나면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 선지 어서 빨리 포르투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는데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쳐갈 때 도시의 언저리가 나타났다.

다섯 시가 넘어 포르토 외곽의 '이스마이(ismai)'에 도착했다.

H에게 듣기로 이곳에 전철역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메트로(전철)'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 그래도 다 왔다는 안도감에 마지막 힘을 내어 전철역으로 향했다.

전철역은 개찰구도 없어 바로 승강장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승차권은 자판기를 이용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대자 한 청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는 티켓팅까지 해주었다.

역시 듣던 대로 포르투갈 사람들은 친절하다.

전철 안은 그리 혼잡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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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은 마주 보게 되어 있는데 앉아 있으려니 시선처리가 영 불편했다.

앞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생각했던 것보다 포르투는 컸다.

중심부인 '트린다데'까지는 20 정거장 정도.

전철문은 자동으로 모두 열리는 게 아니라 문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방식이었다.

잘 보고 내릴 때 나도 눌러보았다.

트린다데 역에서는 젊은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귀에 익은 팝송들이 나오길래 사람들 틈에 끼어 서서 잠시 구경.


포르투에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저녁의 포르투 시내 거리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북 적거 릴 정도는 아니어서 이방인의 눈에도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는 게 보일 정도였다.

날이 금방 저물었다.

우선 숙소부터 찾아야겠기에 사람들에게 '엘로우 하우스'호스텔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럴 만도 하겠지.

유명한 호텔도 아니고 작은 모텔 정도인 숙소를 아는 사람이 있을라고.

H의 약도만으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갓 상경한 시골 촌놈처럼 약도를 보면서 두리번거리며 도심의 밤거리를 기웃거렸다.

몇 번의 헛걸음 끝에 '옐로하우스'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름처럼 노랗지는 않다.

우중충한 아이보리색이라고 해야 하나.. 회색빛이 감도는 누런색이었다.

알베르게가 아닌 일반 숙소에서 처음 묵는 것이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알베르게에 익숙해 있었는데..


호스텔은 비수기라 그런지 예약 없이 묵을 수가 있었다.

도미토리 6인실이 아침 포함 12.9유로였다.

시설도 나쁘지 않았고 관리인인 '엘리아'도 친절했다.

동행도 없는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도시에서 괜찮은 숙소를 구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H에게 고마웠다.

며칠 치를 한꺼번에 계산하면 조금 할인도 되는 것 같았는데, 빈 침대도 많았고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하루치만 계산을 했다.

현관문의 비밀번호와 와이파이 패스워드를 알려주고 체크인, 체크아웃 방법 및 시설 이용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안내를 받고 보니 알베르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룸메이트는 '마끼'. 일본 사람이다.

나를 보더니 일본 사람이냐고 묻는다.

한국에서도 가끔 듣던 소리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그다음부터는 별 말이 없다.

호스텔은 주방시설도 잘 갖추고 있었다.

냉장고에는 개개인의 이름이 적힌 비닐봉지가 있었고 그 옆에는 남은 식재료들이 있다.

식당을 추천받아 거리로 나왔다.


엘리아가 추천해준 식당은 '닭집'.

우리의 전기구이 통닭 비슷한 요리인데 식당이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말 맛있어 보였는데..'

하는 수 없이 대형마트에 가서 닭고기를 조금 사고 스파게티면을 샀다.

오늘 저녁은 '닭칼국수'.. 가 아닌 '닭파게티(?)'이다.

닭고기를 마늘과 함께 삶고.. 따로 익힌 스파게티면을 넣어 닭칼국수처럼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엄마가 끓여준 삼계탕만큼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가벼운 차림과 마음으로 다시 거리로 나왔으나 피곤해서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다.

낯선 도시의 밤거리라 무섭기도 해서 전철역을 중심으로 조금 걷다가 내일 하루 더 머물고 모레 떠나기로 마음먹고 '누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

물론 포르투갈길은 리스보아까지 계속되지만 일정상 나의 걷기는 여기까지이다.

혹 일정에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리스보아까지 걸어갈 자신은 선뜻 생기지 않았다.

꼬임브라를 거쳐 파티마까지 가는 길은 버스를 탈 것이다.

처음 생장을 출발해 걷기 시작할 때는 귀국 날짜가 천천히 다가오기를 바랐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한국에서는 까미노를 동경하고 프랑스길에서는 포루투갈길을 동경하더니 여정이 끝나가는 마당에는 다시 한국을 그리워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또 까미노를 동경하려나..


포르토에 들어서면서부터 배낭에서 조가비를 떼었다.

더 이상 순례자로 위장할 필요가 없었다.

까미노에서는 배낭에 달린 조가비가 자연스러웠지만 도시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부담이 되었다.

또 누군가로부터 호스텔이나 민박집에서 베드벅때문에 순례자는 받아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던 터라 조가비는 떼어서 배낭 속에 넣었다.

조가비가 참 단단하다.

여기까지 잘 버텨주었다.

배낭을 이리저리 막 굴리고 다녔는데도 떨어지거나 부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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