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한가운데 선 주변인의 아픔

택시운전사 (2017)

군함도를 보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택시운전사를 볼까 말까 무지 고민했었다. 왠지 비슷한 애국영화를 보는 기시감도 있었고, 그런 영화들의 뻔함이 조금은 식상했고, 게다가 너무 현대사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그 뻔함을 아주 잘 비켜가더라. 이 영화는 굉장히 영리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화려한 휴가와 같은 비장미가 없어서 좋다. 그래 군함도는 너무 뻔했다. 광주가 갖는 희생도 결코 작지 않을텐데 가벼우나 진중하게 마지막에는 묵직함로 다가오다니. 아마도 광주의 그들을 본 관찰자의 시선이라 그랬던 것 같다. 나 또한 그 역사의 관찰자이기에 택시운전사의 생각에 너무나 공감했다. 나라면 과연 나라면 돌아갈 수 있었을까?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어땠을까?

물론 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리고 나는 그 뻔함을 참 즐기는 것 같다. 가벼운 그의 농담속에 유쾌하고 악착같지만 아이에겐 끔찍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그건 뻔함이 아니라 매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변호인에서의 모습, 뒷부분의 피를 토하는 열변보다는 앞부분에서 그의 털털하고 소시민적인 모습을 좋아한다. 택시운전사의 모습도 딱 닮았다.

통 넓은 저 바지들, 왜 이리 친근한지.

배우들은 더할나위 없었다. 럭키에서 봤던 유해진은 없었고 광주에 있는 택시운전사 유해진만 있었다. 어쩜 그리 자연스러웠던지. 게다가 류준열. 천진난만한 미소로 대학가요제에 나가려고 대학갔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그리 웃음이 나던지. 그냥 옆집에 살던 사람들 같은데 역사 한복판에 내팽겨져 버렸다는데에 가슴이 아팠다. 딱히 투사가 전사가 되고 싶지 않났던 이웃들.

누군가는 마지막 차량 추격신을 사족이라 하더라. 그러던 말든. 끝났다 싶을 때 한 번 더 휘몰아친 그 부분도 나쁘지 않았다. 택시의 마음은 오히려 택시가 알아주는 걸까? 숨막히게 긴장감을 주던 검문소를 지날 때의 상황도 좋았고 그것을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풀지 않아 좋았다.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것. 섣부르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기에 의미있었다.

군인이라 해도 모두가 다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겠지

악역전문 배우가 되시려나? 이 분이 뛸 때면 터미네이터가 생각나더라. 우리 편말고 나쁜 편. 악역이 독해야 상대역도 빛나는 법!

영화를 보다보면 인상깊은 배우를 찾는 즐거움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악역으로 나온 최귀화씨. 올해의 악역으로 뽑히셨다는 데 (변두리통신) 선굵은 인상때문이 아니었을까. 부산행 노숙자에 이어 연속하여 천만영화의 배우가 되셨다. 그리고, 주먹밥 아가씨로 나온 단역배우. 이새별이라는 배우인데 당췌 확인할 수가 없다. 영화사 제공 스틸에 없으니 나중에 IPTV로 나오면 다시 확인해 봐야지. 겨우 일상의 모습을 찾았다. 맞는지 가물가물.

택시운전사 주먹밥 아가씨로 알려진 이새별

관찰자의 시선으로 공감을 이끌어 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이 부분이 아닐까? 화려한 휴가처럼 정공법을 가미할 법도 한데 택시운전사는 시위에서 한발 비켜나가 있다. 카메라로 그 현장을 받아들이는 외신 기자보다도 늦게 반응하지만, 그 울림은 투박하고 올곶다. 순천에서 다시 광주로 돌아가는 그 여정은 백미가 아니었을런지. 울먹임으로 변해가는 노래소리는 어느 독백 못지 않게 가슴을 울린다.

보통 이런 영화들에게선 감정의 선을 따라가다 보면 예측되는 사건,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런 것들을 제법 잘 맞춘다고 자부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초반부터 허탕이다 보니 중반부부터는 포기해 버렸다. 그러다보니 검문소에서 쫄깃했으며 추격신에서는 놀랐고 조력자들이 나올 때에는 뭉클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그 끝의 여운을 진하게 느낀 영화는 모처럼이었던 것 같다. (이제 마블 영화 편식은 그만 해야..) 간만에 정말 좋은 영화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