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인가?
전철역에 오는 길까지 오만가지 생각에 젖어서 왔다. 이태원 살인사건이한 연관검색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이태원 프리덤이 흥얼거려지기도 하고. 가까이 올 수록 점점 흥분은 더해간다. 그리고 전철역사에서 만난 이슬람 여인들. 온통 꽁꽁 싸맨 모습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 흑인 여인과 아주 뚱뚱한 백인, 그리고 멋을 낸 동남아시아인이 내 옆을 스쳤다. 아, 여기가 이태원이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는 서울 속에 외국!
그런데 밖은 그리 녹녹치 않다. 지금은 3시. 한 낮의 열기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지금, 내가 본 사람들은 아까 그 분들이 다 인가 보다. 어느 지역은 40도를 넘었다는데 과연 사람들이 다닐수나 있을런지. 악세사리 점원은 계속 부채질을 하면서 나를 주시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졌으면 내게 다가왔을까? 그러기엔 너무나 덥다. 결국 나는 커피숍을 찾고 말았다. 이 낯선 거리를 즐기는 건 늦은 오후로 미루고 창문 너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두리번 대었다. 여기까지 와서 프랜차이즈를 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자리 좋은 커다란 카페는 그 곳밖에는 없더라. 그래서 나는 말리 카페라는 곳에 와 있다. 그래도 ‘밥 말리’의 이름을 쓰는데 프랜차이즈보다는 낫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여기는 ‘이태원점’이란다. 카페 구조는 신선하지만 커피값은 비싸다. 이 풍경과 시원함에 그 정도의 투자는 해야 겠다.
한 30분간 달달한 라떼를 빨아대며 휴식을 가졌더니 카페 안 사람들이 보인다. 저 너머 테이블은 주부이신가 보다. 김밥 이야기에 학원 이야기에 아파트 조합원 이야기에 모두 다 삶과 밀접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다. 이 시간에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 집에 가면 또 바쁘게들 사시겠지?
오른쪽으로는 두꺼운 책을 읽으시는 한 분이 계신다. 작게 읊조리고 있어서 슬쩍 훔쳐 봤는데, 헉 영어다. 크고 두꺼운데 계속 메모를 해 가면서 읽으신다. 밑줄도 쳐져 있는 걸 보니 공부하시는 중인 듯 싶다. 레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 곳에서 집중한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공부하시는 분들이 꽤나 많다. 노트북을 가지고 마주 보며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고. 여기엔 나처럼 이태원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하릴없이 풍경을 보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하하. 나만 여유로운 듯 하네.
이크. 약간의 소란스러움 너머로 외국어가 들린다. 혹시 이 거리 지나다니면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거는 거 아냐? 이어폰으로 두 귀를 단단히 방어해야 겠다. 외국어를 글이 아닌 성문종합영어로 배운 내게 토킹어바웃은 공포의 대상일뿐.
밖으로 나온 거리에는 조금씩 사람들이 채워진다. 덥다 해도 젊은 거리인 건 좋은거다. 국제음식 거리인가? 해밀턴 호텔 뒤쪽은 다양한 음식을 파는 거리다. 아주 큰 곳도 있고 작은 곳도 있고. 가격은 제법 나가보이지만 분위기 좋고 술맛도 좋을 듯 싶다. 왠지 나이 먹어서 이런 곳에 오는게 조금 미안해 지는 그런 날이다. 그치만 나도 오늘 술 한 잔 하고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