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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벗 Jul 28. 2018

버럭, 그 다음

밴댕이 같은 내 마음 (밴댕이야 미안해)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런데 그 화를 너무 크게 내고 말았다. 예전 아버지가 보여주던 그 방식. 던지고 때리고 부수고 큰 소리내고.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큰 소리를 냈고 무언가를 던지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예전의 아버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예전에 내가 받은 상처보다는 작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미안함에서 오는 자기 위로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흐느끼고 나는 나대로 괴로웠다. 기대를 한 건 나였고 실망을 한 것도 나였는데 어느새 나는 그 모든 책임을 아이에게 지우고 있었다. 아이는 그냥 아이만큼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나는 내 기대치대로 (내가 이루지도 못한 성과를 상상하며) 대하고 칭찬하고 나무랐다. 분명 그건 아이가 원한 건 아닐거다.


아이는 과연 커서 무엇이 될까?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결국 과도한 기대와 과도한 압박으로 나타나 버리고 말았다. 그 압박을 이기지 못한 건 그래도 착한 부모가 되고 싶었던 알량한 부모의 껍데기였을거다. 나는 참 이기적인 부모이고 어찌보면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일 지도 모른다. 그게 껍데기가 벗겨지고 알량한 속살이 드러나서 창피해서 그렇게 발광을 했나보다.


화해가 참 어렵다


일은 저질렀다. 화해라도 해야할 텐데 그게 참 어렵다. 누가 도와주면 좋겠는데 모두들 방관자같다. 가장 가까이에서 있는 사람마저도 나를 힐란한다. 안다고. 내가 잘못한거. 그래서 머리조아리고 미안하다고 하라고? 아직 남은 나의 자존심이 버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해야 겠지? 어디에서나 숨기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의 괴로운 시간도 늘 그랬듯 아이의 다정한 한마디에 금방 녹아버릴 것을 안다. 내가 먼저 다가서지 못하는 건 그건 부모의 자존심일까 아니면 내 그릇이 원래 작았던 것일까? 이런 작은 그릇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잘 상대했는데. 한 사람을 다 담기에는 내 그릇이 접시만큼 얇은가 보다. 깊어야 정말 소중한 사람을 담을텐데.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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