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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벗 Feb 04. 2019

멈추고 싶은 순간들

행복한 기억


내겐 참, 가슴떨리고 멈췄으면 좋았을 그 순간들이 누군가에겐 하지 말았어야 할 사과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내가 바라보는 그 사람과 그가 바라보는 내가 다르니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입장의 차이. 나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매 번 힘들었나 보다. 아니 부담스러웠나 보다. 부담을 갖지 말라는 말도 소용이 없었나 보다. 도대체 왜?

모처럼 먼저 연락을 받았다. 사과한다는. 내가 그 날 한 일은 단지 집에 바래다 준 일 밖엔 없었다. 딱히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 기억 속으로는. 비틀대는 그 사람이 안 스러웠고 밤이 정말 늦었기에 집이라도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사과. 뭐라고 답을 써야 할 지 몰라서 한참을 망설였다. 여전히 정답은 모르겠다. 정답 같은게 있을리가 없지.

부담된다는 말이겠지? 다시는 안 보겠다는 말일까? 수없이 머리를 굴려봐도 - 실은 최악의 상황은 늘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기에 - ‘내가 어쩌라고. 어땠다고’로 끝이 났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이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늘 술 마신 그 날, 가끔 만났던 날, 그대를 생각하는 날, 기다리는 날, 꿈꾸는 날들이 참 행복했으니까. 이렇게라도 생각해 주는게 어딘가? 나를 신경써 주는게 어딘가? 비록 그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진 못하지만 나 혼자라도 가지고 키울 수 있을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지.

그래서 나는 정신승리 하기로 했다. 고맙다. 걱정해주고 생각해줘서. 때로는 의지하고 이용하고 즐겨줘서. 뭐 실은 나를 이용할만큼 약삭빠르지도 않지만, 나 또한 그대를 이용하지 않았다고도 말 못하므로.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잘 숨겨야 할 마음을 두서없이 매번 외치고 다니니깐. 받고 싶지도 않은데 받는 사람은 무슨 봉변인가? 그래도 그런 말 할때마다 좋았다. 큰일이다. 일방통행에서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가 난다.


일방적인, 너무나 일방적인 이 관계. 끝내야지 하면서도 못내 아쉬움으로 부여잡고 있다. 이러다 딱 한 번이라도 뒤 돌아 봐 줄 것 같아서 계속 쳐다보고 있다. 한 점이 되어 멀리 보이지 않을때까지 쳐다볼 것 같다. 어쩌면 계속 쫒아가고 있을지도. 소리치면서 뒤돌아 보게 하려고 노력하는지도. 그래도, 내가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걸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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